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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13. 2023

굿바이 투 로맨스 3

소설


3.


 나는 매일 음악에 빠져 있었고 그 녀석은 매일 책에 빠져 있었다. 우리는 같이 자위행위를 한 적도 있었다. 서로 창피했지만 첫 스타트 후엔 정액이 얼마나 멀리까지 날아가나 시합도 했다. 시간이 훌쩍 지나 그 녀석과 나의 차이점은 그 녀석은 이 시간이 되면 거의 매일이라고 해도 될 만큼 태화강에 나와 고래를 낚으려 낚싯대를 들고 나온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무슨 고기를 잡느냐고 물어봐도 그 녀석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고래를 잡는다고 말을 했다. 사람들은 그 녀석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재미있는 사람 정도로 봐주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에 태화강에 연어를 낚아 올리려는 낚시꾼들이 몰려오면 그 녀석의 낚싯대를 보고 고개를 흔드는 이들이 있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오래전 어느 날 나는 약속을 위해 조개호텔의 커피숍으로 갔다구. 조개호텔이라니! 호텔의 모양이 조개처럼 생긴 것도 아닌데 이름이 조개호텔이라니 어쩐지 묘하지 않아? 하지만 마음에 들어 조개호텔이라는 이름이 말이야."


 그 녀석이 말했다. 나는 그 녀석이 말하는 조개호텔을 알고 있다. 지금 루비호텔로 예전 이름이 조개호텔이었다. 루비호텔 역시 루비처럼 생기지는 않았다. 나는 루비호텔보다는 조개호텔이라는 이름에 한 표 던져주고 싶다. 조개호텔이라 하면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큰 조개에 예쁜 다리를 드러내고 있는 비너스 여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포근하고 누우면 물에 푹 삶긴 행주처럼 되어 열세 시간 이상 잠이 들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름이 조개호텔이었다. 루비호텔은 그저 루비호텔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고 다른 그 무엇도 상상하게 만들지 않는 그런 단순하고 특징 없는 호텔처럼 보였다. 세상에는 수많은 호텔의 이름이 존재한다. 다른 그 어떤 것도 마찬가지지만 호텔에는 반드시 이름이 있어야 한다. 호텔에 이름이 없고 주소만 가지고 있다면 끔찍할 따름이다.


 버스와 택시가 수없이 많지만 이름이 없어서 버스와 택시가 끔찍한 것이다. 그것처럼 이름이 없는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도, 투숙하는 사람도 서로에게 끔찍해하며 하루를 보낸다. 호텔의 이름은 사람의 이름과는 달라서 상징성을 강하게 띠어야 한다. 사람의 이름은 태어나서 이름이 부차적으로 불어버리는 거라면 호텔은 이미 이름이 부여되고 형태가 드러나게 된다.


 그 이름이 결정적인 순간이 되는 것만큼 호텔에 있어서 이름은 중요하다. 호텔 안의 수많은 방에도 특정한 이름이 있으면 좋으련만 호텔에는 십 년에 한 번 정도 투숙할까 말까 한 나는 거기까지 생각은 미치지 않았다. 물론 고급호텔의 고급스위트룸에는 마이클잭슨 룸이니, 메릴린 먼로 룸이니 하는 이름이 있는 곳도 있다. 그건 어디까지나 예외이다. 그렇지만 루비호텔이라니.     


 ‘분명 카페가 아니라 커피숍이었어.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호텔의 커피숍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모습이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그 나름대로의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커피숍의 직원이 와서 물을 내려놓으면서 메뉴를 건네주고 사라졌어. 고요하더군. 거피숍 안에는 알 수 없는 피아노곡이 흐르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깊은 숲이 생각나는 곡이었어. 때마침 흐르는 조용한 곡에, 자리에 앉아 있으니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더군. 그때, 여자의 하이힐 소리가 났지. 두 명의 여자가 걷는 소리 같았는데 어딘지 발자국 소리 같지 않고 춤을 추듯 움직이는 소리였다. 또가닥 거리는 힐이 바닥에 닿는 소리, 그런데 그 소리가 어딘지 묘하게 들리더군. 나는 눈을 뜨고 커피숍 안을 보니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착각이려니 하고 생각했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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