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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10.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57

2장 1일째



57.

 아토피처럼 감기 바이러스도 마찬가지였다. 면역체계가 약한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면 냉방병의 노출도 심했다. 이 병원에는 대로변의 병원들처럼 환자가 너무 많지 않아서 마동은 안심했다. 캐시 카운터로 가니 간호사가 정말 한 명만 있었다. 그런데 간호사의 복장이 평소 병원에서 보던 그런 간호사 복장과는 많이 달랐다. 오버스럽다고 해야 할까. 간호사는 분홍색의 원피스 복장을 하고 있었고 단추가 많이 달려 있었다. 간호사복은 그녀의 육체에 타이트하게 들러붙어서 섬세하고 야릇한 기분을 자아내게 했다. 요즘은 간호사들이 하지 않는 간호 모자도 하고 있었다. 마치 제5 원소에서 비행선의 승무원을 떠올리게 했다.


 “저희 병원은 처음이시죠?” 간호사의 목소리가 만들어낸 경쾌한 파장이 병원과는 어울리지 않게 들렸다. 간호사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만들어지지 않은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훈련받지 않은, 세심함은 좀 덜하지만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미소였다. 마주 대하면 안심이 안 되는 미소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어디선가 교육기간 중에 대부분 훈련을 받는다. 본인의 얼굴을 가리고 상대방에서 세심함을 전달하려고 하는 미소를 트레이닝을 받고 나서 짓는 미소를 지닌 사람들에게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분홍 간호사 복장의 간호사가 지닌 미소는 업무에 극심하게 시달리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미소라고 마동은 생각했다.


 정말 환자가 몇 명 되지 않아서 얼굴을 보자마자 내가 처음 왔는지 알 수 있는 것일까.


 목소리 또한 병원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간호사는 분홍색의 매니큐어가 정갈하게 칠해진 긴 손가락으로 마동 앞에 있는 키보드를 손짓하며 마동에게 의료보험을 적용시켜야 하니 주민등록 번호의 앞부분을 기입하라고 했다. 분홍색이 칠해진 손톱이 몇 번 마동의 눈앞에서 휘이익 움직이는가 싶더니 홀로그램으로 스크린이 나타났다. 홀로그램 안에 커서가 깜박이며 마동의 기입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종종 보던 모습이다. 아직 상용화가 되기에는 먼 기술인데, 여기, 이 내과에서는 홀로그램으로 고객과 소통을 하고 있다니. 이 작은 병원은 무엇일까.


 마동은 고개를 들어서 간호사를 쳐다보았다. 잃지 않고 간호사는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미소는, 다 알아요, 처음 오셨죠? 처음이면 이곳에 기입을 하셔야 합니다, 하는 미소였다.


 오늘은 다 안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많군.


 마동은 키보드로 자신의 생년월일과 이름과 주소를 기입했다. 홀로그램은 익숙하지만 낯설었다.     

 

 “저희 병원은 처음이시라고요?”

 의사는 젊었다. 사십 대 초반도 안 돼 보였다. 머리카락이 유난히 짙고 검었다. 코가 올곧았고 입술의 색이나 피부가 하얗고 깨끗하고 좋았다. 메이크업 전문가 몇 명이서 들러붙어서 쿵딱쿵딱하며 자연스러운 풀 메이크업을 해 놓은 것처럼 깔끔했다. 얇은 은색 안경 속의 눈이 아주 또렷하게 흰자위가 대단히 하얗다. 어린아이들의 눈동자만큼 맑았다. 이런 사람은 여자들의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결혼을 하지 않았던 결혼을 했든 간에 말이다.


 “네, 처음입니다.” 신뢰감이 묻어나는 의사의 목소리에 비해 마동의 목소리는 종이 사이를 관통하는 바람소리 같아서 듣기 싫었다.


 “감기 증상 때문에 오셨다고요. 자세하게 한 번 들어볼까요.” 차트 같은 종이에서 맑은 눈동자의 시선은 마동에게로 옮겨왔다. 조금 오랫동안 의사는 마동의 눈을 바라보았다. 마동은 어쩐지 살짝 부끄러웠다. 의사의 시선은 부드러운 가시처럼 마동을 찔렀다. 작은 플래시를 들고 마동의 동공을 확인하고 목 안을 들여다보았고 청진기를 가슴에 대고 심박 수를 확인했다. 모든 것이 정교한 손놀림으로 정확하게 이뤄졌다. 청진기를 마동의 가슴에 대고 나서 광고 한 편이 지나갈 만큼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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