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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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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01. 2023

입술이 두터운 그녀 4

소설

하지만 사람들은 처음에만 나의 입술이 신기한 듯 쳐다보고 기묘하게 생각하지만 이내 흥미가 떨어져 버리고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을 하던걸요. 그리고 아 그 입술이 두터웠던 여자,라고 기억을 해요. 그렇게 흘러가는가 봐요. 놀림도 당했지만 사람들은 저의 입술 덕분에 기억을 해 주었어요. 아마 시간이 많이 지나면 당신도 저의 입술은 기억을 할걸요. 입술이 두터운 여자의 입술은 하나의 세계를 연상시켰다.

그 세계는 ‘입술 나라’로 주위의 여러 나라의 연결통로 같은 완충지 역할을 했다. 입술 나라의 여왕인 입술 공주는 백성들보다 크고 두터운 입술을 가진 채로 백성들의 추앙을 받으며 주위의 나라와 교류를 이뤄가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입술 나라의 태양은 두 개로 하나의 빛이 약해지면 다른 하나의 도움을 받아서 입술 나라에서는 농작물의 수확이 풍부했다.

두 개의 태양 중에 하나가 없어진 어느 날 ‘거미 나라’에서 대거 침공을 해왔다. 거미 나라의 식량이 다 떨어지는 바람에 입술 나라로 침공을 해 온 것이다. 거미나라에서 온 거미들은 거미줄을 쏘아대며 입술 나라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유린하였다. 거미줄을 맞은 입술나라의 사람들은 전부 공처럼 부풀어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잔인한 그들의 살육은 계속되었고 입술 공주는 거미 나라의 침공을 막아야 했다. 입술 공주는 거미 나라의 거미 국왕과 마주했다.

까지 생각했는데 입술이 두터운 여자가 나의 손을 잡았다. 춤을 추어요. 라며 그녀가 나를 이끌었다. 난 춤을 못 추는데, 몸치거든.라고 나는 거부했다. 괜찮아요, 그저 저의 손을 잡고 몸을 흔들기만 하면 되는걸요.

입술이 두터운 그녀는 나를 일으켜 세워 양손을 부여잡고 왈츠도 아니고 블루스도 아닌 어정쩡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두터운 입술이 보고 싶었다. 얼굴이 서로 엇갈리게 있었지만 나는 그녀의 얼굴을 나와 마주하게 하도는 그녀의 두터운 입술을 보았다. 두터운 입술은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난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녀의 얼굴에 붙어있는 두터운 입술은 그녀가 조그마한 생각을 할 때마다 두터운 입술은 그녀의 생각을 말해주는 듯 움직이며 슬픔과 기쁨 그리고 애틋함을 드러냈다.

입술 공주는 거미 국왕에게 제안을 했다. 당신과 춤을 추겠어요. 그러니 우리 백성들을 괴롭히지 말아 주세요. 입술 공주는 거미 국왕에게 춤을 춤을 권했고 거미 국왕은 무서운 얼굴을 한 채 생각에 잠겼다. 입술 공주는 그 어느 나라의 왕과도 춤을 추지 않았다. 그랬던 그녀가 거미 국왕에게 손을 내밀었다. 거미 국왕은 입술 공주의 얼굴을 보며 여덟 개의 손 중에서 두 개를 벌려 그녀의 손을 잡고 춤을 추었다.

춤을 추었고 또 춤을 추었다. 오랫동안 춤을 추었다. 자연스럽고 소란스럽지 않은 춤을 입술 공주와 거미 국왕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두 개의 태양은 서로 대립했지만 친구이기도 했고 가족이기도 한 관계를 유지했다. 우주가 만들어지고 두 개의 태양은 서로의 성실함에 이끌려 가까이 붙게 되었다. 두 개의 태양은 매일매일 춤을 추었으며 여러 가지 체념과 침묵을 나눠가졌다. 그런데 그 하나가 숨어버리고 남은 하나의 태양은 검게 변하려고 했다.

거미 국왕과 입술 공주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춤을 추었다. 그들이 춤을 추는 동안 숨어있던 하나의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거미 국왕의 얼굴에 노래가 하나하나씩 내려앉아서 그 노래를 읊조리며 춤에 빠져들었다. 입술 공주는 거미 국왕의 손을 잡고 두터운 입술을 움직여 거미 국왕의 절망된 마음을 움직였다.

입술이 두터운 그녀의 손을 잡고 춤을 추는 동안 입술 공주와 거미 국왕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잠시 떠올랐다. 입술이란 건 인류가 생각지도 못한 하나의 분명한 세계였다. 나는 작은방에서 입술이 두터운 그녀와 끝없이 춤을 추었고 그 춤이 언제 끝났는지도 모른 채 시간이 흘렀다.

일 년이나 지나가 버린 지금, 다를 게 하나도 없는 풍경이 이어지고 있다. 친구는 여전히 앞에서 술을 마시고 아내와 헤어질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입술이 두터운 그녀는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물론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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