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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29. 2023

입술이 두터운 그녀 1

소설


1.


그녀의 얼굴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녀(들)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만났던 여자가 입은 옷, 손톱모양, 매니큐어 색깔, 구두의 브랜드까지 낱낱이 기억이 났지만 그녀들의 얼굴은 전혀 기억해 낼 수 없었다. 어쩐 일인지 그녀의 다리에 난 작은 점의 위치 까지도 너무나 정확하고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정말이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게 중에는 입술이 무척이나 두터운 여자가 기억이 났다. 물론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이 없다. 오로지 그녀의 입술이 아주 두터웠다는 것이다. 마치 쿤타킨테의 여성처럼, 부시맨의 여성처럼.      


그녀는 초이스 하우스에서 알게 된 아가씨였다. 나는 친구와 소주를 한 잔 마시고 있었다. 친구는 더 이상 아내와의 결혼생활은 힘이 든다는 주제로 두 시간 이상 얼굴이 터질 것 같은 모습으로 나의 얼굴에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아내를 흉보는 것이 그렇게 열변을 토할만한 일인가.


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줄곧 소주만 마셔서 그런지 술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내 마누라는 말이야 한마디로 짐승이야 짐승. 나에게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내 팔을 물어뜯었던 말이네. 이봐, 정말이지 난 이혼을 해야겠다고 신중하게 생각을 하고 있다네. 이봐, 친구라고 불리는 자네. 친구의 고민거리를 그런 식으로 흘려듣지 말아 주게나. 소주는 좀 그만 마시고 내 말을 들어 달란 말이네”라고 친구가 말했고 나는 하품을 하고는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섰다.      


친구는 양손을 옆으로 한 번 들어 보이고는 입으로 소주를 털어 넣고 내가 일어서는 것을 보면서 머릴 감싸며 탁자를 향해 허망함을 드러냈다. 나는 친구가 아내의 험담을 하는 것을 오늘 하루만 들은 것이 아니다. 들어보면 친구의 이야기는 하나의 종착점으로 이어지는데 그것이 아내와의 이혼이다.      


방뇨를 하면서 나는 이제 들어가서 친구에게 집으로 가자고 할 요량이었다. 늘 그래왔으니까. 친구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다 보면 새벽을 지나 아침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러기 전에 집으로 가고 싶었다. 테이블로 가니 친구는 언제나처럼 세상의 시름을 잔뜩 짊어진 채 테이블을 향해 레이저를 쏘아대고 있었다. 내가 테이블에 가서 앉으니 친구는 계산을 했다며 다른 곳으로 가서 한 잔 더 하기를 바랐다.     


친구는 결혼을 잘했다. 생활력이 강하고 현명한 여자다. 친구의 아내는 친구보다 나이가 세 살 위인 연상이었다. 친구의 아내는 결혼하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단지 친구가 어느 날 “나 결혼하게 됐어.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거든. 더 이상은 아무 말 말아줘”라고 하고서는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지금 5년 정도가 지났다. 나는 그 이후에 친구의 아내에 대해서 궁금해하거나 친구의 아내에 대해서 말을 꺼내본 적은 없었다.      


작년부터 친구는 부쩍 나에게 술을 한잔하고 싶다고 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친구의 이혼 직전까지의 푸념을 들어야 했다. 나는 친구가 이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부부가 살다 보면, 이라는 생각이 결혼을 하지 않은 내 머릿속에는 가득했다.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도 싸움을 하고 마음이 맞지 않아서 서로 물고 죽이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하물며 20년 이상 동떨어진 생활을 하다가 만나서 함께 생활을 하다 보면 으레 부딪히는 게 인지상정이다. 내 생각은 그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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