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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Oct 07.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32

소설




32.


 무. 엇. 보. 다 나카타 씨는 일각수 뼈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일어나는 일은 이미 정해진 일이다. 얼굴 없는 사나이가 따라오는 것도, 리틀피플이 나타난 것도, 두 개의 달이 뜬 세계로 들어와 버린 것도, 입구의 돌도, 모든 것이 이미 그렇게 정해진 일이라는 것이다. 노력을 하고 발버둥을 친다고 해서 두 개의 달이 있는 세계가 원래의 세계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카티 씨는 그 말을 하고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이내 잊어버렸다. 제가 무슨 말을 했나요?


 망양 휴게소에서 성류굴까지는 빨리 도착했다. 아침에 출발했는데 오후가 되었다. 나카타 씨에게 배가 고프지 않으냐고 물었다. 나카타 씨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우리는 성류굴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나카타 씨는 왕성하게 잘 먹었다. 성류굴 입구 근처에는 식당이 많았고 강에서 잡은 은어튀김도 팔았다. 산채비빔밥과 은어튀김을 주문했다. 다슬기파전도 주문해서 먹었다. 나카타 씨는 이가 튼튼하다고 했다. 그래서 딱딱한 음식도 곧잘 씹어 먹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일어난 일이라면, 그것은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옳은 일이든 옳지 않은 일이든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지금의 나카타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얼굴 없는 사나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을 때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카타 씨가 한 말이었다. 나카타 씨는 대체로 일어난 일은 일어나야 한다는 의미의 말을 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받아들이면 된다고 했다. 역시 나카타 씨는 그 말을 하고 난 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특별히 죽으려고 하는 건 아닙니다. 나카타는 여기에서 죽음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역의 벤치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듯이 말입니다]


 나카타 씨가 입으로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일국수 뼈에서 소리가 들리더나 나카타 씨의 목소리가 허공에 떠 다니며 이렇게 말을 했다. 나카타 씨는 어쩌면 생명이 다 하는 자리를 찾으러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카타 씨는 실컷 먹었다고 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아주 어린 시절에 먹어 본 것 같은데 나카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배부르게 먹고 나니 졸음이 쏟아집니다.


 나는 나카타 씨와 식당에서 나와서 불영계곡 쪽으로 차를 몰아 숙소가 될 만한 곳을 찾았다. 불영계곡은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웠다. 맑은 물이었지만 가재들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개울에 내려가서 돌을 들추고 가재가 있나 보고 싶었고 맑은 물에 발이라도 담그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불영계곡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더 올라가면 불영사가 나온다. 불영사는 비구니들이 있는 사찰이다. 이란이와 한 번 왔었고 그전에 어린 시절에 몇 번 와본 기억이 있다. 불영사로 들어가는 입구가 좋았다. 아주 오래된, 마치 몇 백 년이나 됨 직한 고목이 있다. 나무의 중간은 뻥 뚫려 있어서 그 안에 들어가서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이란이의 사진을 그렇게 담았던 기억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사진첩에 그 사진은 없었다. 나의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고목에 들어가서 얼굴만 내밀고 찍은 이란의 사진은 휴대전화 사진첩에는 없었다. 사진으로 출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진첩 안에는 있어야 했지만 사진이 없었다.


 죄송하지만 나카타는 지금부터 잠을 좀 자야겠습니다. 지금 잠들면 아주 오랫동안 잠이 들 것 같습니다. 얼마간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식당에서 밥을 많이 먹어뒀습니다. 잠을 자고 나면 배가 고프기 때문입니다.


 나카타 씨는 적극적으로 잠을 원하며 참고 있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저기 보이는 새로 지은 모텔 같은 건물로 차를 몰았다. 나카타 씨는 빨리 잠들기를 바랐다. 꾸벅꾸벅 졸기도 했지만 졸음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모텔은 아니었다. 소규모 호텔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 같았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로운 건물이었고 호텔 이름은 돌고래 호텔이었다. 돌고래 호텔,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았다. 하지만 생각을 해도 기억은 나지 않았다. 호텔의 이름이 돌고래 호텔이라니, 세상에는 이름이 있는 것이 있고 이름 없이 불리는 것들이 있다. 숙박시설은 다 이름이 있다. 바다 위의 배도 이름이 다 있다. 그러나 버스나 택시는 이름이 없다. 그래서 파명적이다. 돌고래 호텔 카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옆에서 나카타 씨가 선 채로 꾸벅꾸벅 졸았다. 나는 나카타 씨에게 조금만 참으라고 했다.


 예, 알겠습니다. 저는 오늘 잠들면 아주 길게 잠을 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잠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이 날지도 모릅니다.


 나는 나카타 씨에게 알았다고 했다. 2분쯤 지나자 카운터에 누가 나타났다. 복장을 갖춰 입었지만 평범해 보이지는 않았다. 일단 방을 하나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50대 후반으로 보였고 한쪽 귀가 없었다. 단면을 보니 찢겨 나간 것처럼 보였다. 남자는 며칠 묵을 거냐고 물었고 나는 일단은 이틀 분의 방값을 지불했다. 한 방에 침대가 두 개 있는 방으로 달라고 했다.


 일단 나카타 씨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 그는 신발을 벗고 그대로 침대로 올라가 잠이 들었다. 자겠습니다, 라든가 먼저 씻겠습니다. 같은 말은 전혀 하지 않고 그대로 침대로 들어가서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나카타 씨가 잠든 모습은 마치 아이처럼 보였다. 나는 가방을 올려놓고 욕실에서 손을 씻었다. 나와서 보니 나카타 씨가 거의 죽은 것처럼 잠을 자고 있었다. 나카타 씨가 잠든 모습을 보고 방을 나왔다. 그녀가 묻힌 곳으로 가려면 아직 한참 차를 몰고 불영계곡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여기서 하룻밤을 묵어야 했다. 카운터로 가니 50대 후반의 남자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검은 조끼를 입었지만 어쩐지 호텔에서 일을 할 만한 모습은 아니었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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