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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13.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60

2장 1일째


60.


 마동은 의사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마동이 대기실로 나오니 바통을 이어받은 학생 하나가 진료실로 초초히 들어갔다. 학생 역시 입을 막고 기침을 했다. 분홍 간호사는 언제 나왔는지 아까의 미소보다 질이 좀 더 좋아진 미소를 한 채 꼿꼿하게 카운터에 서 있다가 처방전의 종이를 건네주었다.


 분홍 매니큐어의 긴 손가락.


 영화 속 복장처럼 보이는 타이트한 분홍색의 간호사복.


 간호사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아. 마동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간호사는 어떻게 입어야 잘 어울리는 복장이지? 반문했다.


 간호사는 엄마 같은 미소와 펑퍼짐하거나 바지를 입고 일을 해야 하는 걸까.


 분홍 간호사처럼 타이트하고 육감적으로 보이는 복장은 안 되는 것일까.


 하지만 분홍 간호사가 입은 복장은 간호사와 아주 잘 어울렸다. 전혀 답답해하지 않아 보였고 보는 마동 역시 답답하지 않았다. 마동은 평소 하지 않던 생각에 고개를 흔들며 간호사가 건네주는 처방전을 받아서 인사를 하고 병원을 나왔다. 간호사는 허리를 굽혀 예의를 갖춰 인사를 했다.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지만 과하지 않는 인사였다.


 간호사와 의사는 무슨 관계일까. 두 사람은 그저 사회적 동료가 아닐 거야. 병원에서 혼자 일하는 간호사가 어디 있을까. 분명 의사와 애인 사이이거나 부부이거나. 그러니 두 사람만으로도 병원은 나름대로 굴러가는 것이 아닐까.


 부부 사이라고 하기에는 두 사람의 나이차가 너무 나 보였다. 간호사는 이제 20대 초반으로 보였고 의사는 멋있고 젊어 보였지만 나이는 40대 중반. 하지만 외모 상으로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걷는다면 이상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마동은 머리가 아팠다. 어째서 이런 생각을 집중해서 하는지 자신도 놀랐다. 병원을 나오니 태양이 너무 뜨겁다는 것을 이제야 느꼈다. 머릿속에서 쓸데없는 생각을 밀어내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 완구 도매점 주인에게도 인사를 하고 왔던 골목을 지나쳤다. 만두가게에 만두 모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들이 나가고 난 뒤에 만두가게는 손님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나 보다. 먹고 간 흔적이 아직 테이블 위에서 치워지지 않고 있었다.


 문득 만두 가게 안의 모습이 1984의 식사 때마다 단체로 줄을 서서 밥을 먹었던 지저분한 식당의 모습과 흡사해 보였다. 지저분한 테이블과 벽과 천장의 오래된 몰딩이 눈에 들어왔다. 약국으로 가서 처방전을 약사에게 내 보였다. 약사는 고객 유치에 필요한 미스코리아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마동의 약을 지으러 파티션 안으로 들어갔다. 그 미소는 안심되지 않는 미소였다. 분홍 간호사의 미소와 질적으로 차이가 났다. 약사라기보다는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이 약사에게 훈련받은 미소 같았다. 마동은 약이 나오기까지 약국 안의 약들을 둘러보았다. 약은 그 이름과 종류를 나열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많았다. 세상에 나와 있는 약의 종류는 대략 5만여 가지. 대한민국의 약국에 비치된 종류는 대체로 200여 가지. 좀 더 비치된 약국도 있겠지만 로테이션이 되어야 해서 대체로 그 정도의 양이다. 없는 약을 처방받으면 약국에서는 비슷한 약을 조제해줄 수밖에 없다.


 인간은 이제 어지간한 병에는 약을 먹거나 바르거나 투여하면 진행을 멈추거나 나을 수 있다. 반면에 그 약발이 듣지 않으면 좀 더 강하고 자극적인 약을 처방받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제약회사(대한민국 땅덩어리보다 더 큰)의 마수가 전 세계 사람들로 하여금 약의 소비를 지속적으로 부추기고 있어서 식품회사와 어두운 거래를 통해 그에 응당 하는 바이러스를 일부러 퍼뜨린다는 음모론의 성립이 정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무지라는 건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알려지지 않아서 사람들은 무지의 세계에서 허덕일 수도 있다. 콜라의 재료가 무엇인지 아직 알려진 것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수많은 제약회사가 약을 끊임없이 만들어서 판매를 하려면 사람들이 소비를 해야 순환이라는 체재에 부합할 수 있다. 그것이 그쪽에서 바라보는 균형이었다. 비타음료도 약국 안의 냉장고 속에 가득했다. 비타민은 빛을 받으면 무용지물이다. 투명한 병의 비타음료는 비타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사람들은 비타민으로 알고 손을 뻗어서 집어 마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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