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a Lunghini
얼음공주 엘자가 있기 전 저짝 불란서에도 엘자가 있었다. 엘자 륑기니. 오늘처럼 가을의 흐린 날에 잘 어울리는 불란서 노래, 샹송이라 하기에는 팝적이고, 팝이라 하기에는 불란서의 분위기가 확 나는, 파트리샤 카스와 다른 엘자가 있었다.
파트리샤 카스가 한국에 와서 노래를 부를 때 그 무대의 사회를 배철수가 봤는데 그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네.
엘자 하면 글렌메데이로스가 따라오지만 그녀의 앨범을 들어보면 이야 노래 정말 좋아,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엘자를 검색해 보면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부르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어쩌고 하는 이야기들이 죽 있다.
우리가 엘자를 알게 된 건 글렌메데이로스였다. 중고등학생 때 집만큼 들락거렸던 음악감상실에서 디제이가 글렌메데이로스의 음악을 뮤직비디오로 틀어주면서 엘자의 이야기도 같이 해 주었다. 세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글렌메데이로스를 좋아하던 프랑스 소녀가수가 직접 글렌메데이로스를 몰래카메라 형식으로 만나면서 두 사람은 듀엣 곡을 부르게 되고 그 곡은 우리가 있는 이 도시의 바닷가까지 울려 퍼지게 되었다.
엘자와 글렌메데이로스의 만남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글렌메데이로스의 이야기를 할 때 했으니 여기서는 생략.
https://brunch.co.kr/@drillmasteer/2618
두 사람의 꿀 떨어지는 듀엣곡 Un roman d'amitie https://youtu.be/8dOxNAHMsvw?si=NR6KIU0HCsjQkn4W
두 사람의 듀엣곡은 정말 사랑스럽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곡이 있나 싶을 정도다. 그래서 두 사람은 결국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의 현재 모습도 검색을 하면 다 볼 수 있다.
아무튼 우리에게 불란서 노래를 가장 많이 듣게 해 준 가수가 엘자였다. 추석이 지나고 가을 속으로 흘린 날이 덮치면 그때나 지금이나 알 수 없는 기시감에 시달리고 조금은 우울했다. 그럴 때 그때는 하교하면 졸졸졸 음악감상실에 들어갔다. 학교 뒤에서 음악이나 내내 듣는 그런 놈들끼리 마음이 맞아서 음악 감상실에 앉아서 굉장히 큰 화면으로 보는 뮤직비디오는 재미있기만 했다.
엘자는 현재도 가수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키가 너무 커버려서 목소리가 예전만큼 나오지 않는다. 엘자나 글렌메데이로스의 음악을 들으면 거짓말처럼 그 당시로 확 돌아가는 착각이 든다.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학교에서 나와서 쫄래쫄래 음악감상실에 가곤 했던.
살아보지 못했던 60년대의 음악, 루 리드나 데이빗 보위, 제니스 조플린의 노래를 들어도 이상하지만 그 당시로 가는 착각이 든다. 음악은 그런 알 수 없는 마법을 부린다. 그런데 제이슨 데룰로나,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현실감각이 사라져 버린다. 현재의 음악인데 음악을 듣고 있으면 현재는 바람에 날리는 가루처럼 날아가 버리는 착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김추자의 노래를 들어도 그렇다. 김추자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건물이 막 바뀌면서 예스러운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물론 착각이지만. 함중아의 노래를 들어도 그렇다.
얼마 전에 존윅의 프리퀄, 존윅 이전의 이야기 윈스턴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콘티넨탈을 보는데 영화 속에 데이빗 보위, 루 리드 등을 언급을 한다. 음악이란 아무튼 묘한 힘을 지니고 있다.
엘자 륑기니는 조용한 노래만 부를 것 같지만 90-91년 투어 공연 영상을 보면 무척 섹시한 옷을 입고 댄스곡도 부른다. 댄스곡이라고 하기에는 뭣 하지만 전기기타와 드럼이 뒤를 받쳐주고 격렬하게 몸을 흔들며 무대를 장악해 가며 가냘픈 몸으로 섹시하게 노래를 부른다.
오늘은 날이 무척 흐리다. 이러다가 하늘에서 뭔가가 일어날 것만 같다. 중학생 때에도, 고등학생 때에도 이런 날에는 엘자 같은 음악을 찾아서 들었는데 그럴 때의 기분이 든다. 문득 든 생각이지만 세상에 나와있는 음악은 몇 곡이나 될까. 그리고 인간은 음악에 왜 이렇게 열광을 하고 목을 매다는 것일까.
엘자의 투어 공연 영상 중에는 제니스 이안의 At seventeen를 부르는 영상도 있다. 나의 아저씨 14화에 박동훈이 정희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제니스 이안의 At seventeen이 배경음악으로 나온다. 정희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서,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려고 가게 앞에 앉아서 하루를 여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그때 지안이 옆에서 십 분 동안 같이 있어준다.
그렇게 죽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제니스 이안의 엣 세븐틴이 흘러나온다. 엣 세븐틴은 제니스 이안이 17살에 겪었던 일로 예쁜 소녀들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들로 인해 열일곱 소녀가 겪어야 했던 사랑에 대한 좌절을 이야기하는 노래다. i learned the truth at seventeen로 시작을 한다. 당시 제니스 이안의 목소리에는 쓸쓸함이 가득 묻어있다. 나는 열일곱 살에 진실을 알아 버렸어,라며 제니스 이안은 그 특유의 쓸쓸함으로 그때 받은 사랑의 좌절을 노래한다. 깨끗하고 맑은 얼굴을 가지고 지난 사랑의, 당시에 받은 좌절을 쓸쓸하게 노래한다.
그건 마치 정희를 보는 것 같다. 언제나 자신감에 차 있는 정희는 혼자가 되면 더없이 쓸쓸하고 외롭다. 잠드는 것이 무섭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버겁다. 사랑의 좌절이 정희를 그렇게 만들었다. 누군가 정희를 안아주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려 버릴 것만 같다. 그건 아마도 정희 옆에서 십 분 동안이나 같이 있어줬던 이지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제니스 이안은 14살에 데뷔해서 75년에 엣 세븐틴으로 빌보드 1위에 오르고 75년 전체 히트곡 랭킹에서 19위를 차지한다. 그 쓸쓸함이 묻어나는 제니스 이안의 노래를 엘자가 부른다. 잘 부른다.
제일 많이 들었고, 제일 많이 알려진 노래가 아닌가 싶다 Mon cadeau https://youtu.be/2IhQj4G009M?si=a2a8JmBpBxCQT4iP
사이드 B면의 세 번째 노래 Quelque chose dans mon coeur https://youtu.be/FXvT9ae6Y0c?si=9tztEmzJPAPZqjD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