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Oct 08. 2023

45. 부러울 것 없어 보였던 상후

소설

  

 정작 상후는 효상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풍족한 환경 속에서 하기 싫은 것을 하는 것보다 풍족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것이 훨씬 부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상후는 효상이나 친구들 앞에서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학생 치고는 많은 용돈을 아버지에게 받은 상후는 병적으로 그것을 빨리 써버렸다.          


 상후는 인문계를 다니면서 피아노 레슨을 받은, 어찌 보면 이상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피아노를 배우는 것은 순전히 엄마 때문이었다. 상후는 엄마의 편애를 받으며 자랐다. 바이올린을 전공하여 쾰른 음대에 간 형은 어릴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으며 엄마가 원하는 대로 커주었다. 하지만 상후는 아니었다. 엄마의 교육열은 자식이 잘하는 것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하고 싶은 걸 아이에게 시키려고만 한다.       

    

 상후는 엄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엄마의 품에 안겨 잠들어 본 적도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오로지 엄마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 피아노를 쳤지만 형만큼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상후의 엄마는 첫째는 바이올린을 둘째는 피아노로 어머니 자신이 못 이룬 꾼을 대신 이루고 싶었다.   


 하지만 상후는 외국으로 나가서 피아노를 전공할 만큼의 실력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상황에서 어떤 선을 넘지 못하는 것이 자신보다 못한 상황에서 하고 싶은 기타를 치는 효상이 훨씬 부러웠던 것이다.          

 

 상후는 르 코르뷔지에 같은 건축가가 되고 싶었다. 르 코르뷔지에도 음악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엄마에게 편애를 받으며 자랐다. 르 코르뷔지에의 엄마도 형만을 사랑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결국 엄마에게 한 번의 사랑도 느끼지 못하고 건축을 선택했다. 상후는 르 코르뷔지에에게 어떤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상후가 바라보는 그의 건축물은 순수했다. 르 코르뷔지에가 만든 건축물에는 안온 감과 따뜻함이 하얀 순백색으로 덮어 있었다. 상후는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엄마가 못 준 따뜻함을 상후에게 주었다. 하지만 엄마가 벽을 만들어 만나지 못하게 했다. 상후는 노래방에 가면 오래된 노래 ‘슬픔의 심로’를 불렀다. 노래 가사에는 이런 말이 있다.          


 ‘때론 슬픔에 아파 어쩔 줄 모르고, 이룰 수 없는 순간들을 그렸어요. 정다웠고 정다웠던 지난날의 이야기 속에, 우리 이제는 떠나야 하나요. 이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 햇살이 비추면 온 마음을 열고 나그네가 되어요.’          

 과묵했던 상후는 어쩌면 그때부터 나그네가 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후의 고민을 알고 있던 기철이와 아이들은 상후가 손을 내밀면 손을 잡아 주었고, 상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엄마를 대신할 순 없지만 힘이 들면 억지로 일어나 힘을 내라고 하지 않았다.


 우리들은 상후에게 쓰러지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쓰러지고 쓰러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하지만 주저앉지는 말자. 쓰러지면 일어나면 되지만 주저앉으면 일어나기가 너무 힘드니까. 우리는 상후의 손을 잡아 주었다.


김학래.. 슬픔의 심로 https://youtu.be/eWlbp1pOkAA?si=VmiXDCWyXf1l_97_

김현진
매거진의 이전글 44. 배송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