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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22. 2023

46. 프란다스의 개와 종규

소설


 '프란다스의 개'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그 충격의 총량을 견디지 못했을 때가 중학생 때였다. 기철이를 만나기 전 중학교를 다닐 때에는 친구가 전혀 없었다.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늘 들으며 하루를 죽였다. 그렇게 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딱히 집에서 보살핌이 덜 한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도 아닌데 중학생의 시절은 그저 견디다 보면 하루가 지나갈 뿐이었다. 반에서는 존재 자체가 없었다. 나는 먼지처럼 지냈다.   


 손을 뻗어서 펼친 책들은 온통 남녀관계에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감정의 이야기들이나 세계관의 이야기, 어렵거나 나를 무시하는 듯한 활자만 가득한 책뿐이었다.           


 어릴 때부터 읽던 '프란다스의 개'를 읽고 또 읽었다. 노랗게 변색된 어린이 명작동화집이 있었지만 나는 '프란다스의 개'에 집착을 보였다. 하지만 '프란다스의 개'는 좋은 내용이 아니라고 읽을 때마다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만난 대부분의 동네 어른들은 착한 사람이 되라고 말했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 사람들이 좋아한단다. 그 말에 호응이라도 하듯 나는 착한 어린이의 표상 같은 모습으로 지냈다. 인사도 잘했고, 여자아이의 치마도 들어 올리지 않았으며 타인에게 욕은 하지 않고 지냈다.        

   

 그런데 '프란다스의 개'를 읽으면서 뭔가 잘못된 것을 느꼈다. 그것은 배신 같은 것이고 나는 친구도 가족도 마당을 지키는 깜순이도 아닌 '프란다스의 개'에게서 그 배신을 느꼈다.        

  

 네로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착한 아이다. 할아버지와 우유를 배달하며 지낸다. 고아에다가 몹시 가난하다. 하지만 네로에게는 네로만큼 착한 아로아가 있고 친하게 지낸다. 하지만 그런 둘의 교제를 아로아의 아빠는 허락하지 않는다. 고아인 네로에게 버려진 개, 파트라슈가 품으로 들어온다. 품으로 들어온 파트라슈와 네로는 행복하게 지내지만 그야말로 순간이다. 병신같이 착한 네로는 눈이 오는 겨울의 크리스마스이브, 그렇게 착한 파트라슈를 끌어안고, 그렇게 좋아하는 아로아를 두고, 그렇게 동경하던 루벤스의 그림이 있는 미술관 앞에서 고요하게 얼어 죽고 만다.          


 충격이 아니고 무엇일까.  착한 네로는 아로아도 만나지 못했고, 좋아하는 그림도 마음껏 그릴 수 없었다. 착하기만 한 할아버지는 생활고로 죽는다. 결국 착하던 네로도 억울하게 도둑으로 몰려 가장 아름답고 차가운 겨울의 날에 시리게 죽는다.  


 책에서는 행복하게 죽는 것처럼 나오지만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이 책에서는 착한 사람은 다 죽여 버린다. 심지어는 착한 개도 죽여 버린다. 어릴 때는 몰랐다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프란다스의 개에게 배신 같은 것을 느꼈다. 가끔 뉴스에서 동반자살이라는 기사를 봤다. 동반자살이라는 말은 어딘가 모가 나고 이상한 말이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동반자살을 하려고 했다는데, 도대체 아이들이 자살을 하고 싶었을까.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세상은 온통 엉망이다.          


 “루벤스는 어떤 놈이지?” 나는 미술부인 종규에게 물었다. 그때 종규는 그저 웃기만 하다가 “사강이 한 말 중에 이런 문구가 있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말이야.”     


 “그게 왜?” 내 말에 종규는 “그렇게 그림을 그렸던 사람이야.”         

 

 전학을 와서 어느 날 우리에게 스며든 종규는 책 속의 대사처럼 말을 했다. 목소리가 크지 않아서 종규가 말을 할 때는 늘 집중을 해야 했다. 그것이 종규가 노리는 바일지도 모른다. 소아마비 때문에 다리가 불편했지만 종규는 그림을 잘 그렸다. 어떤 한 분야를 잘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붓 그림도 잘 그렸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할 때 종규는 한편에 앉아서 운동장 바닥에 무엇을 그렸는데 그것마저 작품이었다. 종규는 늘 카펜터즈의 노래를 들었다.          


 “착하게 살다가 불이익을 당하고 빨리 죽을지언정 그 속에서 바라보는 세계관은 세상을 온통 물질로 보는 게 아니야. 정신과 마음으로 보는 거야. 나쁜 마음을 먹고 생활을 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보다 훨씬 값지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야.” 이렇게 노인처럼 종규가 말했다. 아직 무슨 의미인지 와닿지 않았지만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Carpenters - Superstar https://youtu.be/SJmmaIGiGBg?si=Qz_GkbysJxh43dqi

Carpen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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