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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04. 2023

47.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던

소설


 기철이가 또 아이들을 모아놓고 한창 이야기 중이었다. “조신시대 때 말이야. 동물한테도 형벌을 내린 적이 있거든. 그 동물은 우리나라에 쭉 있었던 동물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동물이었어. 어떤 동물인지 알아?”  

   

 모여있던 아이들은 모른다고 했다.      

    

 “그럼 보기를 주마, 1 낙타, 2 호랑이, 3 코끼리, 4 수달.”     


 아이들은 전혀 모르는 이야기라 너도나도 막 찍었다. 기철이는 마치 공포영화를 이야기해 주는 듯 아이들을 좀 더 가까이 오라고 하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조선시대 태종 때 여러 나라에서 선물이 들어왔는데 옆 나라 일본에서 코끼리를 보낸 거야. 그런데 그만 코끼리를 처음 본 조선인들 중에 재수가 없는 사람이 코끼리에 깔려 죽어 버렸지 뭐냐. 세상에 재수 없게 죽는 여러 방법 중에 최고다.”          


 그래서, 그래서, 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기철이는 목소리를 높였다 줄였다 하며 이야기를 했다.    

 

 “그 지방의 이조판서가 코끼리를 피의자로 지목해서 유배를 보낸 사건이 있었지. 그런데 말이야 유배를 보낸 곳에서는 난리가 난 거야.”     


 “왜? 왜? 어째서?”      

    

 기철이는 뜸을 들였다. 이미 아이들은 기철이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고 기철이는 목이 마르다고 했다. 누군가 욕을 하더니 매점으로 가서 맥콜을 사 와서 기철이에게 따 주었다. 어쩐지 매점 옆의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나 싶었다.     


 “그 당시 조선인들이 봤을 때 코끼리라는 이 거대한 동물이 너무 먹어치우는 거야. 이런 동물은 그동안 보지 못했거든. 대단한 충격이었지. 그랬겠지.”     


 기철이는 후렴구를 넣어가면서 이야기를 했고 볕 좋은 점심시간에 매점 옆 벤치에 아이들이 우르르 모여 앉아 기철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실은 기철이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는 녀석이다. 오늘처럼 이렇게 아이들을 모아놓고 시간만 나면 계속 떠드는 이유는 아버지와의 내적 마찰 때문이었다.      

     

 과묵한 기철이도 가끔 엄마가 보고 싶었다. 도시락을 아버지가 싸주지만 맛이 없어서 싫은 게 아니라 엄마가 한 번이라도 싸주는 도시락을 먹고 싶었다. 엄마가 집을 나간 후 기철이는 더욱 현실에서 탈피해서 책 속이나 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아버지의 손톱 밑에 때처럼 낀 검은 연탄재를 볼 때마다 기철이는 알 수 없는 무력감과 싸워야 했다. 너무 오랫동안 관념처럼 쌓여버린 연탄의 검은 때, 이것이 꼭 자신의 모습을 결정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퇴근을 하면 매일 칫솔로 손톱의 검은 때를 박박 문질렀지만 쉽게 씻기지 않았다. 아버지와 같이 밥을 먹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름을 더 좋아해. 연탄도 안 팔리는데 겨울보다 여름이 더 낫데.”     


 겨울에는 장갑 때문에 연탄의 때가 손톱 밑으로 더 깊게 박혀 버린다고 했다. 기철이 아버지에게 연탄은 기철이 같은 것이었다.     


 가장 소중한 것.


 잘못 간수하면 자칫 깨져버리기 쉬운 것.           


 연탄에서 나오는 일산화탄소 가스는 우리를 매년 병원으로 몰고 가게 만들었다. 기철이는 연탄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는 언제쯤 연탄에서 벗어날까.          


 하지만 연탄에서 벗어나게 되면 기철이 아버지는 실업자가 되는 모순이 따라온다. 삶이 모순이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다. 좀 기다렸다가 같이 즐길만해지면 이미 늙어버리고, 돈을 모아서 효도를 하려고 하면 늙어 죽어 버린다.      


 나와는 가장 친한 사람이 죽고 없어졌는데도 세상은 아무렇지 않은 듯 돌아가고 사람들은 행복에 겨워 좋은 식당에서 요리를 시켜 먹는다. 인간은 혼자 태어날 수는 없다. 사람은 엄마가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당연함에서 기철이는 배제되어 있었다.          


 삶이 모순이라 기철이는 허구 속으로 들어가 모순을 모순으로 비틀어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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