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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an 05. 2024

48. 슈바빙 누나의 스무 살 시절의 이야기

소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있었다. 대기는 온통 잿빛이었고 하늘의 구멍에서 나타샤가 하얀 당나귀를 타고 날아다닐 것만 같은, 푹푹 쌓이는 눈이 곧 내릴 것만 같은 날이었다. 거리의 레코드점에서는 온통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오고 있고 촌스러운 장식으로 시장의 상점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냈다. 밖이 훤하게 뚫린 전통시장의 내복 가게 앞에서 내복을 구입하는 사람들의 몸은 추워 보였지만 마음은 따뜻한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산 내복을 입힌다는 생각에 얼굴들이 환했다.       

   

 우리는 일찍부터 슈바빙으로 향했다. 슈바빙 주인 누나는 트리를 만들 테니 오라고 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너도나도 일찍부터 슈바빙 문을 두드렸다. 종규와 기철이와 득재 그리고 개구리와 상후가 함께 했다. 효상은 고물상 일을 도와주고 오후에나 온다고 했고 진만이는 양궁부 훈련을 갔다. 종규는 늘 스케치북을 들고 다녔는데 어느새 보면 무엇인가 스케치가 되어 있었다. 대부분 우리의 모습인데 초현실적인 그림이라 슈바빙 주인 누나가 종규의 그림을 좋아했다. 생각이 있다면 외국으로 나가서 그림을 그려보라고 주인 누나는 종규에게 말했다. 초현실 그림은 현실을 비틀어서 그 속에서 진실을 볼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외국에는 초현실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많고 그것을 인정을 해주는 일반인도 많다고 했다. 종규는 깊게 새겨듣는 표정이었다.    


 슈바빙 주인 누나는 자유스러운 사람이었다. 여타 카페를 하는 사람이나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과는 달랐다. 커피숍을 하고 있었지만 문을 여는 시간과 문을 닫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열고 싶을 때 열고 닫고 싶을 때 닫았다. 정해진 날짜에 쉬지도 않았다. 슈바빙에 손님이라고는 우리 밖에 없다고 해도 할 만큼 손님이 없었지만 슈바빙 주인 누나에게 불안함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슈바빙에는 페치카가 있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페치카 근처에 만들었고 만드는 내내 캐럴이 흘렀다. 어쩐지 행복한 기분이었다. 슈바빙에 와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내내 우리는 아이가 된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 당일이 되어서도 입으로 말하지 않았던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서로 하면서 웃었다. 웸의 라스트 크리스마스가 나오는가 싶더니 넷 킹 콜의 캐럴이 흐르고 앤디 윌리암스의 캐럴이 또 흘렀다.   


 슈바빙 주인 누나는 자신이 미국에서 있었던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독일로 가기 전 스무 살 시절 미국에서 잠시 살았다고 했다.    


 70년대 후반 브루클린의 한 잡화점에서 메리(슈바빙 주인 누나의 미국 이름)는 일을 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흑인 여자애가 물건을 훔쳐 달아났다. 메리는 소리를 치며 따라갔다. 하지만 흑인 여자애는 그대로 달아나 버렸고 그 자리에 지갑이 떨어져 있었다.     


 그 지갑을 열어보니 돈은 하나도 없고 낡은 사진 두 장이 있었다. 경찰에 신고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좀도둑 여자애가 애처롭기만 했다. 신분증이 있어서 여자애의 주소를 알았고 이름이 스테파니 굿윈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가 다가왔고 아무런 약속도 없이 무료하기만 했던 메리는 좋은 일을 한 번 해보자며 스테파니의 지갑을 돌려주려고 집 주소를 찾아갔다. 스테파니의 집에서 나온 사람은 스테파니의 할머니였고 90세쯤 되어 보였다. 할머니는 메리를 보면서도 스테파니냐, 이 애슬 할미에게 네가 크리스마스라고 와주었구나. 하며 메리를 안으려고 했다.     


 메리는 대번에 할머니가 장님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순간 메리는 자신도 모르게 “네, 스테파니예요 할머니.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왔어요”라고 하면서 할머니를 꼭 안아 주었다. 메리는 애슬 할머니의 초라한 식탁을 보고 밖으로 나가 가게에서 닭 요리와 야채수프, 감자 샐러드 한 바가지, 초콜릿 케이크를 사들고 와서 할머니와 식사를 했다. 애슬 할머니는 메리에게 질문을 하고 메리는 대답을 했다. 메리의 이야기를 듣고 할머니는 크게 웃으며 기뻐했다. 애슬 할머니는 메리가 스테파니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메리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메리는 할머니의 접시에 닭 요리를 덜어 주었고 와인도 할머니와 함께 마셨다.    

 

 “어쩌면 애슬 할머니는 그때 크리스마스가 생의 마지막 크리스마스였을 거야. 그때에도 앤디 윌리암스 캐럴이 어딘가에서 흐르고 있었거든. 어쩐지 어울리지 않았지만 말이야.”     


 슈바빙의 주인 누나는 그렇게 오래전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우리는 눈을 반짝이며 주인 누나의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알았지만 그 이야기는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다. 참 알 수 없는 주인 누나였다. 하지만 그 뒤로 크리스마스가 되면 애슬 할머니의 행복해하는 모습이 늘 오버랩되곤 했다.



https://youtu.be/AN_R4pR1hck?si=Ib6U3qhewgz_KYPO

Andy Willi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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