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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an 08. 2024

49.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소설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는 우리가 넘어설 수 없는 영화였다. 1952년도의 브루클린은 탈출구가 없다. 도무지 발버둥을 쳐도 헤어나갈 구멍이 없다. 희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폭력은 정당화를 넘어섰고 이반은 불이익을 당하고, 한 집에 같이 사는 아버지도 모르는 새, 딸은 이미 만삭이 되어가고 범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지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출구라는 것은 없다. 차이보다 차별이 뚜렷하고 지하세계처럼 임금보다는 구걸이나 갈취의 형태를 띠는 돈이 더 많았다.           


 마지막 비상구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워터 덕에서 넋을 놓고 바라보았던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는 우리가 닿을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었다.      


 트랄라의 웃음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헤리 블랙의 시선 속에서,

 아무것도 그 무엇도 찾을 수 없었다.      


 영화는 욕이 나올 만큼 탈출구가 없었다.


 효상은 어딘가를 향해 계속 욕을 했다.    


 결락이 가득한 영상 속에 첼로곡 ‘어 러브 아이디어’가 어울리지 않게 흐른다. 이건 뭔가 어울리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어 러브 아이디어’는 마치 마지막 비상구가 the end가 아니라 the and의 출구 같은 기분을 자꾸 전해주었다.      

    

 주먹을 꽉 쥐게 만들다가도 ‘어 러브 아이디어’가 흐르면 어딘가 있는 몹쓸 희망 따위의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마지막 비상구는 끝이 아니었다. 열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아 열지 못하는 비상구가 아닐지도 모른다.


 언젠가 똑똑한 소설가가 비상구에 대한 글을 적을 것이다.     


 트랄라와 그들에게서 보이는 알 수 없는 조급함, 그리고 불안함 열등의식은 우리도 늘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결핍을 느껴야, 결핍이 있어야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 지금 불행하다는 건 결핍하다는 말이다. 결핍하다는 건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피떡이 된 채 일어나서 안아주는 트랄라를 보면서, 우리 모두는 마지막에 트랄라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https://youtu.be/5UJR-22_vKo?si=vgsDB3HKhqNANC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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