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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14. 2024

50. 카스텔라

소설



 상후가 카스텔라를 먹자고 하면서 들고 왔다. 뭐야 카스텔라 같은 걸 새삼. 하면서 먹었는데 카스텔라는 내가 알고 있는 카스텔라와는 좀 달랐다. 촉촉하고 부드러워 맛은 월등히 좋았는데 내가 먹던 맛이 아니었다. 꼭 내가 먹던 맛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카스텔라가 있다.       

   

 그날이 확실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대단한 일이었다고 기억한다. 촉촉한 감촉이라든가 입천장에 달라붙는 느낌이라든가.     

     

 처음에는 텁텁해서 목이 막힐 것 같지만 먹다 보면 빠져들어 버리고 만다. 카스텔라 이전의 빵에서 봐왔던 모양에서 벗어난 사각형의 모양은 그것을 들고 있는 나를 좀 더 우쭐하게 만들었다. 어린 나에게는 대단한 경험이었다.          


 아아, 그동안 카스텔라를 모르고 잘도 어린 삶을 헤쳐 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처음 카스텔라를 맛보았을 때 피카소의 그림이 머리 위에 떠오르고 어린 나의 작은 혼이 뭉크의 그림처럼 빠져나갔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경험을 안겨준 것이 카스텔라였다.   


 카스텔라라는 이름은 생소했지만 입으로 카스텔라, 카스텔라, 카스텔라라고 계속 되뇌다 보면 어느 순간 친숙한 이름처럼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그 이후로 집 앞 구멍가게에 가게 되면 카스텔라를 슬쩍 집어 들고 동전을 내밀고 볕이 드는 따뜻한 대문 밑에 앉아서 그것을 제대로 뜯어먹곤 했다.       

   

 양지에 앉아서 카스텔라를 뜯어서 먹고 있노라면 난방이 잘 되지 않는 겨울일지라도 어쩐지 따뜻했다. 그러면 카스텔라는 ‘겨울은 정말 카스텔라와 함께 보낸다면 따뜻할 거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카스텔라는 기억 속에서 점점 멀어져 버리더니 곁에서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지금은 손만 뻗으면 카스텔라보다 열 배는 맛있는 백배는 예쁜 빵들이 세상을 점령했다. 그 이후로 겨울도 따뜻하게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겨울은 이제 기다리는 계절이 아니게 되었다. 겨울은 싫어한다고 해서, 마음으로 밀어낸다고 해서 뒤늦게 온다든가, 오지 않는다던가 하지 않는다. 가을인가 싶으면 어느샌가 겨울이 와 있었다. 그리고 겨울은 혹독했다.          


 사람은 추위가 싫어 전구에 불을 밝혀 밤을 빛낸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그 반짝거리는 불빛들 앞을 지나칠 때면 전구는 조금 무서운 얼굴을 하고 넌 행복하게 지내고 있니? 네가 있는 곳이 네가 있을 곳이 맞니?라고 자꾸 묻는다. 그 대면이 껄끄러워 깃을 세우고 등을 굽혀 빠르게 걷는다.     

     

 그렇게 좋아하던 카스텔라가 사라지고 난 뒤 내가 계속 좋아하고 좋아한 그 모든 것들이, 그 마음마저 거짓이 될까 봐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카스텔라가 어디에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다시금 카스텔라를 손에 움켜쥐고 겨울의 그 따스함을 느낄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입으로 카스텔라, 카스텔라 하고 말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나서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평범한 일상이 깨져버리고 나면 그 일상이 행복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내내 바쁘게 움직였지만 중환자실로 들어가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중환자실 복도의 의자에서 나는 상후가 준 카스텔라를 들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고 상후도 옆에서 아무런 말없이 내 곁을 지켜주었다.



Heart - Crazy On You (1977) https://youtu.be/yZjEC4WhCvg?si=B3TiYosBwXrxuZ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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