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982년의 이파네마 아가씨

하루키 소설

by 교관


1963년. 1982년의 이파네마 아가씨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나는 고등학교의 복도를 떠올린다. 어둡고 약간 습기 찬 고등학교의 복도, 천장이 높고, 콘크리트 바닥을 걸어가면 뚜벅뚜벅하는 소리가 메아리친다. 북쪽으로 몇 개의 창문이 나 있지만, 바로 앞까지 산이 다가와 있었기 때문에 복도는 언제나 어둡다. 그리고 대게는 조용하다. 적어도 내 기억 속의 복도는 언제나 조용하다 - 1963년. 1982년의 이파네마 아가씨 중에서


하루키의 이 소설 ‘이파네마 소녀’을 읽고 있으면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든다. 형이상학적인 소녀로 점철되는 하루키의 이파네마 소녀. 형이상학적인 여자이며 형이상학발바닥을 가진 소녀. 형이상학적이란 무엇인가, 형이상학적이란 형이상학적이라는 것이다.


하루키의 소설 이파네마 소녀는 짧은 글인데 묘하지만 그 속을 파헤치면 끝도 없는 세상이 펼쳐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듣고 싶어서 이파네마 소녀에 대한 리뷰를 찾아봐도 이상하지만 이 소설에 대한 리뷰가 별로 없다.


그러다가 어떤 블로그, 정신과의사의 블로그에서 이 소설에 대한 리뷰를 남겼는데 정말 글을 잘 적었다. 그(또는 그녀) 역시 하루키처럼 써보았으면 할 때가 있었다며 시작한다. 블로그의 글을 읽으면 정신과 전문의답게 땅을 파고 들어가지만 너무 깊게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진지한데 읽는 재미도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이 음악을 들으며 형이상학적인 소녀를 떠올린다. 1963년의. 그때의 고등학교 복도를 떠올린다. 습기가 차고 대게는 조용한 복도를. 그 속에 생생하고 파릇한 형이학상적인 소녀가 있다. 형이상학이란 20년이 지난 세월의 흐름, 그동안의 의식의 흐름을 지우개로 삭삭 지우고 연결될 리 없는 메타포를 연결 짓는다. 꿈과 현실, 허구와 진실의 개념을 버무려 하나의 이미지로 만든다.


그 속에 소녀 같은 아스트루드 질베르토가 이파네마의 소녀를 부르고 있다. 이파네마의 소녀는 누군가의 지난날이며, 누군가의 첫사랑이며, 누간가의 이데아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녀는 형이상학적인 여자이니까.


이파네마의 소녀를 부른 아스트루드 질베르토는 올해 유월에 세상을 떠났다. 보사노바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보사노바의 형식을 확립한 주앙 질베르토의 아내로 노래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무겁지 않고 마치 깃털이 하늘하늘거리듯 보사노바 풍의 노래를 부른다.


하루키는 이파네마 아가씨 소설에서 [“옛날 옛적에 물질과 기억이 형이상학적 심연에 의해 분리되었던 시대가 있었다”라고 어느 철학자가 썼다.]라고 했다. 이는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으로 해변의 카프카에서 호시노 청년이 커넬 샌더슨이 소개해준 여성을 만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다.


아스트루드 질베르토가 부르는 이 보사노바는 주앙 질베르토(기타)와 또 한 사람, 하루키의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스탄 게츠(색소폰)가 협연한 [Getz/Giberto] 음반으로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아스트루드는 이파네마로 크게 히트를 친 후 주앙 질베르토와 이혼하고 스탄 게츠의 품에 안겼다. 이 모든 게 1963년에 일어난 일이며 형이상학적이다.


Astrud Gilberto - The girl from Ipanema

https://youtu.be/hkOJ-9_Ng4s?si=gW_CQcj1jLU3YDYz

ᴀᴘʀɪᴄɪᴛʏ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하루키 에세이 -버트 바카락을 좋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