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소설 - 독립기관

여자 없는 남자들

by 교관

하루키 소설 – 독립기관


자기 자신을 스스로 파멸시킨 남자 도카이의 이야기.


“물론 자기모순이죠. 자기 분열이에요. 나는 정반대의 것을 동시에 원하고 있어요. 아무리 노력해 봤자 잘될 리가 없죠.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어쨌거나 그녀를 잃을 수는 없으니까요. 만일 그렇게 된다면 나 자신까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거예요.”


곡기를 끊고 굶주림에 허덕이며 죽어간다는 것은 상당한 각오가 따르는 일이었으리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통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 독립기관


헤어질 결심을 보면서 서래가 도카이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지만 그 사랑을 가지지 못해서 그 사람을 잊지 못해 자기 자신을 파멸의 길로 이끈다. 그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이지만 결국에는 이 마음을 끌어안고 자신을 파멸시킨다.


이 소설에 대해서, 도카이라는 남자에 대해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블로그의 글도 발견했다. 블로그 주인장의 말처럼 서래의 대사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다”처럼 도카이는 자신이 만나고 있던 유부녀가 자신을 떠나려고 할 때 도카이의 싶은 사랑은 시작되었지 싶다. 다른 여자들에게서는 가질 수 없었던 그 감정, 그 알 수 없는 – 미칠 것만 같은 그 감정, 바로 '사랑'이었다.


사랑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랑을 하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용기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용감한 용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사랑을 쟁취하려면 용기 있게 다가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랑을 하는 것에 필요한 용기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고통이 뒤따른다. 뱅크의 노래 '가질 수 없는 너'의 가사에 '사랑의 다른 이름은 아픔이라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라는 부분이 있다. 사랑을 하면 아픔이 오고 고통이 뒤따른다. 그걸 견딜 수 있는 용기를 말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위해 나 자신을 버리거나 나를 깎아내리거나 기다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작은 고통이 오고 작은 고통이 차곡차곡 쌓여 큰 고통이 된다. 이 고통을 이겨낼 때 필요한 것이 '용기'다.


도카이는 결국 용기를 내지 못했다. 도카이는 원죄적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고독으로의 회귀를 택했다. 사랑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요즘 넷플의 플루토를 보고 있다. 단연 올해 최고의 시리즈가 아닐까. 거기서 완벽한 인공지능을 만들어 낸다. 완벽한 인공지능은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인간을 위협하지 않는다. 하지만 완벽하다는 말은 인간과 같다는 말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위협적이지 않다. 그러나 틀린 말이다.


인간은 인간을 미워한다. 인공지능은 서로 미워하지 않는데 인간은 서로를 미워한다. 인간은 인간에게 때로 위협적이다. 인간은 수많은 감정을 가진다. 기쁘고, 슬프고, 분노하고, 아파하고, 미워하고, 화내고, 울고, 짜고, 이상하고, 무료하고, 좋아하고, 짜증 낸다.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완벽하면 이런 수많은 감정을 가진다. 즉 인간이란 불완전한 모습이기에 삶에 있어서 오류를 범한다. 누군가를 헤치고, 성폭행을 저지르고, 테러를 저지른다.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완벽하면 완전히 불완전한 모습이 된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인공지능의 오류가 여기에서 시작한다. 가장 이상한 감정이 ‘사랑’이다. 사랑하게 되면 세상에 보이는 것이 없고 미쳐버린다. 그래서 불륜을 하면 가정과 가족을 버리고 도피를 하기도 한다. 두려움, 분노, 공포, 질투, 희생 이 모든 단어의 뜻은 사랑으로 통한다.


연애시대에도 이런 내레이션이 있다. '사랑은 사람을 아프게 한다. 시작할 때는 두려움과 희망이 뒤엉켜 아프고, 시작한 후에는 그 사람의 마음을 모두 알고 싶어서 부대끼고, 사랑이 끝날 땐 그 끝이 같지 않아서 상처받는다. 사랑 때문에 달콤한 것은 언제일까'


사랑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도카이는 그 용기를 놓쳐 버린 것이다.



오늘의 선곡은 디온 워윅의 I'll never fall in love again https://youtu.be/FzQBOBoPg04?si=ye2ASO87U1rGUXgO

Moondust

이 곡도 버트 바카락의 곡이며, 디온 워윅은 휫니 휴스튼의 이모 이기도 하다.




여자 없는 남자들. 하루키. 독립기관.


122. 하지만 도카이는 수량 쪽에는 큰 흥미가 없는 사람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질이었다. 또한 상대의 외모에는 그다지 연연하지 않았다. 직업적 관심을 자극할 정도로 큰 결점만 없다면, 혹은 보기만 해도 하품이 날 만큼 따분한 표정만 아니라면 그걸로 충분했다. 외모 같은 건 마음만 먹으면, 그리고 필요한 만큼의 돈만 있으면 거의 누구나 어떻게든 바꿀 수 있다. 그보다도 그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머리 회전이 빠르고 타고난 유머감각을 지녔으며 뛰어난 지적 센스를 갖춘 여자들이었다. 화제가 부족하고 자기 의견이라는 게 없는 여자들은 외모가 뛰어날수록 오히려 도카이에게 좌절감을 안겼다.


재치 있고 스마트한 여자들과 식사하면서 대화를 즐기고, 혹은 침대에서 살을 맞대고 두서없이 즐거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 시간을 도카이는 인생의 보물처럼 소중히 여겼다.


130. 재치라고 하니 말인데, 프랑수아 트뤼포의 옛날 영화에 이런 장면이 있어요. 여자가 남자에게 말합니다. '세상에는 예의 바른 사람과 재치 있는 사람이 있어. 물론 둘 다 훌륭한 자질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예의보다 재치가 이기지.'


이를 테면 남자가 문을 열었는데 안에서 여자가 알몸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에요. 그때 '실례했습니다. 마담'이라고 말하고 얼른 문을 닫는 게 예의 바른 사람입니다. 반면 '실례합니다, 무슈'라고 말하고 얼른 문을 닫는 게 재치 있는 사람이죠.


132. 누군가를 너무 좋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습니다. 바로 지금, 그런 노력을 하는 중이에요.


무슨 이유로요?


지극히 단순한 이유예요. 너무 좋아하면 마음이 힘들기 때문이죠. 못 견딜 만큼 힘들어요.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가능한 그녀를 좋아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떠한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어요. 다양하게 시도하는 중이죠. 하지만 기본은 최대한 네거티브한 걸 떠올리는 겁니다. 그녀의 단점을, 아니 별로 좋지 않은 점을 생각나는 대로 뽑아내서 쭉 나열해 봅니다. 그리고 만투라를 외듯이 머릿속으로 수없이 반복하면서, 이런 여자를 필요 이상으로 좋아해서는 안 된다고 나 자신을 타이르죠.


우선 그녀의 네거티브한 면이 잘 떠오르지 않아요. 실은 그런 네거티브한 부분에마저 내 마음이 끌렸던 거니까요. 또 한 가지는, 무엇이 필요 이상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도 잘 분간이 안 간다는 겁니다. 그 경계를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분별없는 마음은 난생처음입니다.


당신은 그녀를 너무 좋아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동시에, 그녀를 잃고 싶지 않다고 간절히 바라는 것 같군요.


166. 모든 여자는 거짓말을 하기 위한 특별한 독립기관을 태생적으로 갖추고 있다, 는 것이 도카이의 개인적인 의견이었다. 어떤 거짓말을 언제 어떻게 하느냐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모든 여자는 어느 시점에 반드시, 그것도 중요한 일로 그건 제쳐두고, 아무튼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때 대부분의 여자들은 얼굴빛 하나, 목소리 하나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 몸의 독립기관이 제멋대로 저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그녀들의 아름다운 양심이 상처받거나, 그녀들의 평안한 잠이 방해받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곡기를 끊고 굶주림에 허덕이며 죽어간다는 것은 상당한 각오가 따르는 일이었으리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 고통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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