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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16. 2023

우린 밤새도록 휠을 돌렸다 11

소설


11.


밀레니엄까지 남은 4일 동안 그릇은 내내 다섯 그릇이 나왔다. 나는 집으로 가지 않고 연말의 며칠을 피시방에서 먹고 자면서 밀레니엄을 맞이하려고 했다. 단 며칠 만에 생활의 리듬이라는 것이 무너져서 내가 누구이며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모호할 때가 있었다. 당연하지만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이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낮 동안에는 피시방에 조성모의 노래를 틀었다. 조성모가 부르는 불멸의 사랑을 따라 부르려고 하면 기침이 심하게 나왔다. 콜록콜록. 친구까지 감기가 옮아서 기침을 했다.


밥그릇에 대해서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신경을 쓰며 지켜봐도 오전에 설거지를 할 때에는 어김없이 빈 그릇은 다섯 그릇이었다. 나는 뒤로 자주 돌아보았다. 마치 해로운 누군가가 나타나서 나의 어깨에 손을 올릴 것만 같았다. 밥그릇에 대해서 생각을 하려고 하면 기침이 일차적으로 가로막았고 멍 한 몸 상태가 생각을 그만 두기를 바랐다. 이 한 그릇은 여귀가 먹는 것일까.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밀레니엄이 되기 직전까지 나타나서 짜장밥을 훔쳐 먹는 것일까. 귀신이 이렇게 대놓고 인간처럼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일까.


위이이이잉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주방에 모기가 한 마리 힘없는 비행을 했다. 이렇게 추운 날 모기라니. 나는 모기를 잡으려고 했다. 힘없이 날아다니다가 어딘가에 앉았다. 살짝만 내리치면 모기는 잡힐 것만 같았다. 그러나 모기는 생각만큼 쉽게 잡히지 않았다. 모기는 몸집이 컸다. 어딘가에서 피를 잘 빨고 다니는지 통통했다. 잡으려 할 때마다 기침이 났다. 콜록콜록. 기침을 할 때 폐가 아픈 것 같았다. 약국에서 좀 더 강한 약을 사 와서 친구와 먹으며 디아블로를 했다.


밀레니엄이 오기 직전 4일 동안 멤버들은 디아블로가 밀레니엄이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밥도, 씻는 것도, 가족도 신경 쓰지 않고 렌스바바를 끌고 휠을 돌리고 또 돌리며 아마존 사냥에 다녔다. 따지고 보면 아마존을 사냥한다고 해도 크게 남는 것이 없다. 그동안 아마존 사냥에 신경을 쏟으며 시간을 보냈지만 아마존 그 하나를 잡는 다해서 우리에게 뭔가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멤버들 모두가 아마존 사냥이 마치 삶의 목적처럼 보였다. 아마존 사냥을 멈추고 퀘스트를 깨며 처음처럼 바바리안을 키우자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았다. 멤버들은 마치 기계처럼 움직이고 마우스를 눌렀다.


모기는 주방에서 나를 따라 나와서 요리사 형님의 어깨에 앉았다가 모니터에 붙었다. 교수님이 담배 연기를 그쪽으로 후 하고 부니 모기가 잠시 날아갔다가 다시 날아와 앉았다. 나와 친구는 기침을 계속했다. 친구는 기침이 심해졌다. 콜록콜록, 콜록. 밀레니엄 때문에 피곤에 절어서 제정신인지, 몸에서 냄새가 나는지, 구분도 할 수 없었다. 모두가 연말 3일 동안 집에도 가지 않고 피시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서 보냈다. 컵라면을 먹고, 커피를 뽑아서 먹고, 빵을 먹어가면서 바바리안의 휠을 돌렸다. 아마존을 밀레니엄이 오기 전에 잡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게 멤버들의 소원이었다. 서로 하는 대화도 전부 아마존을 잡는 것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친구는 마른 몸이었는데 더 말라갔다. 하지만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그 눈빛은 총기보다는 광기에 가까웠다.


드디어 31일. 밀레니엄을 한 시간 남겨 놓은 시간, 우리는 조마조마했다. 컴퓨터가 어떻게 될까 봐. 그래서 디아블로에게 영향이 미치지나 않을까. 그러면 포털을 통과하지 못하고 그대로 시폭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었다. 콜록콜록, 콜록콜록. 기침은 요리사 형님까지 합세했다. 모기는 보이지 않았지만 위이이이잉 하는 비행하는 소리는 크게 들렸다. 사장님도 나와 있었다. 컴퓨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를 해야 했다.


마침내, 뚜 뚜 뚜 뚜! 2000년이 되었다. 밀레니엄인 것이다. 조마조마한 마음에 두근거림이 가세했다. 아마 다른 곳에서는 축제가 열리고 축포가 터지고 환호에 젖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습과는 다르게 우리는 디아블로가 어떻게 될까 불안 불안하며, 가슴 조미며 다시 바바리안의 휠을 돌렸다. 콜록콜록, 콜록콜록. 기침은 모두가 하게 되었다. 전부 기침을 할 때마다 가슴을 움켜쥐며 얼굴을 찡그렸다. 한 시간 동안 너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더 불안했다. 두 시간이 지나 새벽 2시쯤 사장님은 집으로 갔고 우리는 어제와(1999년) 다름없이 디아블로를 했다. 디아블로의 세계에서도 밀레니엄에 대한 채팅이 오고 갔다. 우리는 견뎌냈다며 서로를 축하해 주며 사람들은 퀘스트를 깨러 다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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