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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17. 2023

우린 밤새도록 휠을 돌렸다 12

소설


12.


틀어 놓은 라르크 엔 씨엘의 ‘드라이버스 하이’가 순간적으로 멈춘 적은 있었지만 그 외에는 밀레니엄이 닥쳐왔다고 해서 문제가 일어난 것은 없었다. 후에 들어보니 밀레니엄이 도래한다고 했을 때 휴거를 믿는 신도들이 대거 자신들은 하늘로 올라갈 수 있을 거라며 양손을 높이 들고 신의 선택 같은 걸 받으려고 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그들은 그저 뒤로 돌아서 집으로 갔다고 했다.


우리는 1월 중순까지 열심히 바바리안의 휠을 돌렸다. 그러다가 도깨비 같은 여자가 오지 않더니 아예 나타나지 않았다. 외상값은 십원도 받지 못했다. 알고 보니 도깨비 같은 여자는 여러 피시방을 돌면서 외상으로 바람의 나라를 했다. 도깨비 같은 여자는 여러 피시방 사장들과 모종의 거래를 하며 바람의 나라를 외상으로 했고 먹고 마시며 그 많은 돈을 갚지 않고 사라진 것이다. 도깨비 같은 여자는 한 지역에서 한 번 그렇게 지내고 나면 자신의 흔적을 전부 지우고 다른 지역으로 가서 또 거기서 외상으로 바람의 나라를 하며 한두 달을 보내는 것으로 유명한 여자였다. 의문스러운 것은 피시방 사장들은 도대체 그 도깨비 같은 여자와 어떤 거래가 있었나 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피시방의 사장님들이 그 도깨비 같은 여자와 모종의 거래를 할 만한 이유가 없음에도 모두가 그 여자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지만 누구 하나 그 여자를 잡아야 한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친구는 기침을 심하게 해서 병원에 갔더니 폐기능이 많이 떨어져서 치료를 받았다. 치료를 받으면서 복학을 하지 않고 일 년을 그대로 백수로 지내다가 용접을 배워서 중공업 하청에 들어갔다. 용접도 폐에 좋지 않을 텐데 친구는 그것밖에 선택할 수 없다면서 그 세계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붙어 다녔는데 어느 날 친구와 연락이 뜸해지더니 그대로 끊기고 말았다. 디아블로는 여전히 재미있었지만 아마존이 없어지고 난 후 생명력을 느낄 수 없었다. 모든 아이템과 캐릭터를 다음 아르바이트에게 넘겨주었다. 좋아 죽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그 피시방을 나오게 되었다. 밀레니엄은 1999년과 2000년의 차이가 없었지만 우리에게는 전과 후로 나뉠 만큼 차이가 났다. 나도 복학이 코앞이라 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무엇이 중요한지 종종 잊게 되었다.


복학을 하고 나서 과대가 된 나는 교수님이 당장 시키는 중요한 일보다 책상 위의 쓰레기가 보이면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쓰레기통을 들고 밖에 나가서 비워 버리는 일을 먼저 했다. 기침을 많이 한 탓인지 조금만 달리면 숨이 찼다. 몇 개월 뒤 피시방 근처에 갈 일이 있어서 지나갔는데 피시방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학교 앞 그 일대의 골목은 여전했지만 피시방 자리에는 걸스 바 타운이 들어섰다. 지하부터 전부 술집으로 바뀌었다. 후에 사장님 아내를 우연히 만나서 들은 얘기지만 사장님은 아내와 이혼을 했다. 아내는 남편이 왜 그런 이상한 여자와 바람을 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혹시 그 여자가 포니테일이었냐고 물었지만 아내는 생각하기 싫다는 듯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열심히 디아블로를 하던 교수님은 아내가 있는 집으로 가지 않았는지 차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성과 함께 다니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그게 2000년까지의 일이다.




얼마 전에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 예전의 피시방이 있는 곳으로 가봤다. 한 시간은 더 달려야 그곳으로 갈 수 있었다. 대학교 앞은 예전 같은 떠들썩한 분위기는 없었다. 번잡하고 분주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활기차지 만은 않았다. 코로나를 막 지나쳤는지 어딜 가나 전부 지쳐 보였다. 피시방도 예전만큼 많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피시방은 예전에 비해서 좀 더 막강하고 화려하고 멋진 모습으로 곳곳에서 집에서 쉽게 할 수 없는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예전이 떠올랐다. 디아블로를 열심히 하던 그때 1999년 연말이.


그때를 떠올리며 돌아오는데 한 피시방 안으로 도깨비 같은 여자가 들어갔다. 그 여자가 맞다면 지금쯤 나이가 엄청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잠깐 스친 모습은 예전 그 모습이었다. 20년이나 넘게 흘러 이런 곳에서 게임이나 하고 있지는 않을 텐데 라는 생각으로 이번에는 뒤 따라 피시방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였고 예전과는 다르게 전부 파티션이 있고 몇몇 사람들이 앉아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도깨비 같은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컴퓨터가 총 다섯 대가 켜져 있었는데 네 명은 자리에 앉아 있었고 한 자리에는 컴퓨터 화면이 커져 있었다. 화면에는 바람의 나라가 보였다. 그리고 짜장이 묻은 빈 그릇이 앞에 놓여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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