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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07. 2023

우린 밤새도록 휠을 돌렸다 2

소설


2.


여름밤은 빈자리가 없이 손님들이 꽉꽉 들어차서 컴퓨터가 돌아갔다. 이상하지만 사람들이 꽉 들어차면 덜 바빴다. 디아블로 멤버 중 교수님이 처음에 교수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직장인이라고 소개를 받았지만 피시방에서 교수님 안녕하세요,라며 인사하는 학생들 때문에 교수인지 알았다. 학생들이 화학과 학생들이라 교수가 화학과 교수라는 걸 알았다. 직접적으로 화학과교수님인지 묻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그를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배달원은 오토바이 하나는 끝내주게 탔다. 키도 컸고 퇴근 후에는 멋지게 차려입고 다니는 젊은 이었다. 지브라 무늬의 스키니 바지를 입을 때도 있고, 레오파드 무늬의 바지를 입고 올 때도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멋지게 와서 새벽까지 디아블로를 하다가 돌아갔다. 그 배달원이 데리고 온 사람이 같이 중국집에서 요리를 하는 요리사였다. 배달원은 삼십 대 초반으로 보였고, 요리사는 사십대로 보였다. 단지 그렇게 보였을 뿐 우리는 나이 같은 건 묻지 않았고 두 사람에게 형이라고 불렀다. 배달원 형과 요리사 형님 역시 디아블로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 둘 다 미혼이라 신나게 밤마다 디아블로를 했다.


친구와 나는 우리의 귀한 아이템을 배달원 형과 요리사 형님에게 나눠 주었다. 형들은 더 신이 났다. 이렇게 우리는 멤버가 되어서 매일 밤새도록 디아블로를 즐겼다. 일주일 내내 오다가 5일째 되는 밤에는 중간중간 요리사 형님은 꾸벅꾸벅 졸았다. 밤새도록 디아블로를 하고 집으로 가서 한두 시간 잠을 자고 출근해서 중국집에서 퇴근할 때까지 일을 하니까 5일 정도 되면 피곤이 덮쳤다. 요리사 형님이 하루 오지 않은 날은 몰아서 잠을 자는 날이었다. 건강한 사람인지 하루 잠을 자고 나면 팔팔한 눈으로 밤새도록 디아블로를 했다.


교수는 분명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젊었다. 그는 대학교 근처에서 홀로 지낸다고 했다. 아내와 자식들은 전부 다른 지역에 있었다. 겨울방학이 되면 아내가 있는 집으로 가야 하는데 디아블로에 빠져서 어떡하지 같은 말을 웃으며 하곤 했다. 친구와 나는 밀레니엄이 되면 복학을 앞두고 있었다. 친구는 토목과로 복학해서 졸업하고 나면 공무원 시험을 봐서 구청의 치수계 같은 곳에 들어가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거칠기는 했지만 어머니의 돈을 낭비하는 것에 대한 자기 멸시가 있었다.


그렇게 모인 멤버들은 바바리안의 휠을 돌리기 매일 매혹적인 밤을 보냈다. 훨을 돌리는데 적합하게 키운 바바리안은 렌스 바바리안이다. 그래서 렌스를 구하고 렌스를 들고 휠을 잘 돌리는 바바리안으로 키웠다. 사람들에게 그저 그렇고 그런 새벽에 우리에게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피시방을 나가서 일상으로 돌아가도 눈앞에 디아블로의 바바리안이 계속 떠올랐다. 매일 밤 약속을 하지 않았지만 모여서 포털을 열고 디아블로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때 우리는 바바리안이 되어서 포털 속으로 지잉 하며 들어가는 착각이 들었다. 우리는 멤버들의 연락처는 몰랐지만 연락을 해야 하는데 못 한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름에는 밤새도록 에어컨을 강하게 매일 틀어놔서 한 달에 전기료만 100만 원이 넘게 나왔다. 그럼에도 사장님은 나무라지 않았다. 매일 밤 꽉 찬 손님들이 있었고 그 손님들이 컵라면과 과자나 빵을 많이 사 먹어서 여름에는 많은 돈을 벌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피시방에서 맛있는 요리 같은 건 없었다. 몇 종류의 컵라면과 주전부리와 빵이 있었고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실 수 있었다.


여름이 지나고 시월이 오고 11월이 다가왔을 때 슬슬 추워졌다. 그동안 멤버들의 바바리안 캐릭터는 굉장한 힘과 스피드를 갖게 되었다. 나는 손님들 시중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멤버들에 비해 많은 바바리안 캐릭터를 키울 수 없었고 레벨도 천천히 올라갔다. 그 당시 인터넷의 확장으로 인해 나는 밤에 피시방에서 듣고 싶은 재팬 록을 틀었다. 일본의 록 밴드 음악을 좋아해서 주로 틀었다. 비즈, 글레이, 엑스재팬, 주디앤마리, 자드, 라르크 엔 씨엘, 각기 등 많은 재팬 록 밴드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전에는 듣고 싶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레코드 가게에서 재팬 록 밴드 음악은 팔지도 않았고 주로 음악 감상실에서 듣거나 해외에서 사들여야 했다. 만만찮은 일이었다. 인터넷은 그런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당시에는 유튜브가 없었지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다양한 사이트가 많았다. 리얼타임으로 클릭을 하면 바로 들을 수 있었다. 가장 듣고 싶었던 히데의 음악을 실컷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멤버들이 디아블로를 하는 자리는 정해져 있었다. 내가 일을 하느라 거기서 렌스바바(리안)의 휠을 돌리지 못할 때에는 카운터에 앉아 있어야 했는데 카운터에서는 지오피아에서 채팅을 주로 했다. 내가 들어가는 채팅방은 전국에서 모여든 록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방이었다. 그 안에서도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있었고(그들은 화면상에서 지하에서 단 둘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단체 채팅방에서 떠들다가 두 사람의 아이디는 방에 있는데 조용하면 두 사람만 지하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한 여자와 지하에서 단 둘이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들은 전부 좋아하는 록 밴드에 대해서 이야기를 풍부하게 늘어놓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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