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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08. 2023

우린 밤새도록 휠을 돌렸다 3

소설


3.


채팅방에는 여러 대학교의 밴드부도 있었다. 나는 오직 듣는 쪽이었지만 인풋과 아웃풋이 다 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연주를 하고 노래까지 부르는 보컬도 있었다. 몇 달을 그렇게 모여 늦은 밤 록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방장이 되었다. 방장이 되면 이상한 사람들을 퇴장시킬 수 있고 게시판을 운영할 수 있었다. 디아블로와 다르게 나는 이쪽으로도 꽤나 재미를 느꼈지만 다른 멤버들은 전혀 관심 밖이었다. 방장인 만큼 사람들은 나의 말을 잘 따라 주었고 몇 달 만에 서로 얼굴을 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결국 그들은 전국 곳곳에서 내가 일하는 피시방으로 오게 되었다.


그때는 정말 시끌시끌했다. 슬슬 추워져 피시방에 밤을 지새우는 손님들이 별로 없을 때라 전국에서 온 밴드를 하는 친구들은 피시방에서 밤은 지새웠다. 새벽이 되기 전에 내가 자주 가는 고깃집에서 1차로 한 잔씩 했다. 새벽에 손님들이 거의 다 빠지고 나서 술에 취한 한 밴드가 피시방 안에서 연주를 했고 스트레스를 푼다며 노래를 불렀다. 꽤 신났고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즐거웠지만 주민신고가 들어가는 바람에 모두가 경찰서에 가게 되었다. 보통은 그 자리에서 훈계로 끝나지만 모습도 무시한 한 밴드가 술에 취해서 순찰 나온 경찰에게 대들었다가 모두가 연행이 되었다. 나는 친구 덕분에 피시방을 맡길 수 있었다. 아무튼 엄청난 밤이었다.


그들이 돌아가고 멤버들은 그 날밤을 재미 삼아 이야기하면서 깊어가는 가을밤에도 디아블로를 했다. 가을의 어느 날부터는 요리사 형님이 그날 요리하고 남은 짜장을 들고 와서 나와 친구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중국집 짜장은 정말 맛있었다. 주방에서 전기밥솥에 밥을 해서 바로 짜장을 부어 먹으면 끝내주는 맛이었다. 새벽에 출출할 때, 그 시간이 보통 새벽 4시였다. 멤버들은 우리가 그렇게 짜장밥을 해 먹으니 자신들도 먹기를 바랐다. 그래서 멤버들의 짜장밥도 만들어 주었다. 기묘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거의 매일 밤 4시쯤에 짜장밥을 해서 먹었다. 짜장은 큰 케첩통에 담아서 들고 왔다. 큰 케첩통이라 함은 아가들 분유통처럼 동그란 통인데 크기가 아주 큰 통을 말한다. 거기에 가득 짜장을 담아왔다. 짜장이 질릴 법도 한데 새벽에 먹는 짜장밥은 질리지 않았다. 짜장은 식빵에도 잘 어울렸고, 삼겹살을 구워서 찍어 먹어도 맛있었다. 아예 짜장과 같이 구워 먹는 고기의 맛도 좋았다.


새벽 4시는 기묘한 시간으로 밤을 지새우던 손님들 중에서도 새벽 4시를 기점으로 꾸벅꾸벅 조는 사람이나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벽 4시가 디아블로에서 바바리안의 훨을 돌리기에는 최적의 시간이었다. 디아블로의 세계관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그야말로 판타지 세계 그것이었다. 이런 판타지 세계에서 같이 휠을 돌리며 사냥을 하고 퀘스트를 깨는 동맹을 이루는 친구들은 학벌이나 집안, 재산 유무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간에 같이 모이는 사람들이면 그 사람이 누구인가 보다 그 사람이 같이 휠을 돌리며 밤새 사냥을 같이 할 수 있는 가가 중요했다. 요리사, 배달부, 교수 그리고 친구와 나는 매일 밤 전사가 되어 다가오는 밀레니엄을 맞이하려고 했다.


록밴드 음악과는 다르게 우타다 히카루의 퍼스트 러브를 자주 틀었다. 이 노래가 너무 좋았다. 어쩐지 겨울과 잘 어울렸다. 언젠가 이 노래로 영화가 나올 것만 같았다. 디아블로를 하면서 우타다 히카루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니 정말 좋아 라며 혼자 생각했다. 디아블로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게임이었다. 당시에는 화면에 전체 맵이 나타나지 않아서 일일이 다 돌아다녀 봐야 했다. 캐릭터가 가는 그 언저리만 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돌아가니다가 클릭할 것이 있으면 클릭을 해서 내게 필요한지 아닌지 선택을 해야 했다. 우리 멤버는 소서리스나 아마존, 팔라딘은 하지 않았다. 오로지 바바리안이었다.


초반에는 다른 캐릭터도 키워봤지만 우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바바리안은 여러 버전의 캐릭터를 골고루 키웠어도 재미있었지만 다른 캐릭터는 아니었다. 어째서 멤버 모두가 그렇게 바바리안에게 매달렸는지 알 수 없었지만 렌스를 들고 휠을 한 번 돌릴 때마다 몹들이 찢어지고 상대방이 쓰러질 때 느끼는 쾌감이 강했다. 바바리안 네 명이 몰려다니며 사람들에게 결투를 걸어서 끝장 내버리는 것이다. 밀레니엄이 다가올수록 우리는 더욱 강력하게 사람들을 죽이며 디아블로 세계를 휩쓸고 다녔다. 레벨이 높다는 놈들이 덤벼 들어도 다 이겨 버렸다. 그룹전으로 해도 우리 멤버를 이긴 다른 그룹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바바리안의 휠을 밤새 돌렸다.


깊어가는 가을의 어느 날 아마존 캐릭터가 우리에게 결투를 걸어왔다. 아마존은 친구에게 결투를 걸었다. 우리는 늘 그렇듯이 결투를 받아들이고 바바리안을 가장 잘 다루는 친구가 달려 나갔다. 친구의 바바리안은 파워를 키운 바바리안이라 레벨이 더 높은 캐릭터가 몇 대 맞지 않아도 에너지 마나가 확 줄어들었다. 그런데 친구가 결투에서 진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시폭을 당해서 아이템을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 이럴 수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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