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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06. 2023

우린 밤새도록 휠을 돌렸다 1

소설


1.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그 해가 1999년이었다. 밀레니엄을 앞두고 있었다. 나는 그 해 여름 잠깐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했는데 사장님은 내가 마음에 든다며 겨울까지, 아니 밀레니엄이 도래하고도 1월까지 일을 해주기 바랐다. 나는 썩 내키지는 않았다. 이유는 밤새도록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이다. 낮밤이 뒤바뀐 생활이 길게 이어지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저녁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복학하기에는 시간이 남았지만 매일 밤을 지새우며 일을 한다는 건 힘들었다.


사실, 힘들지는 않았다. 그저 힘들다고 자꾸 생각을 했다. 힘들다, 힘들다, 힘들어야 해.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자꾸 생각을 한 건 오전 10시에 퇴근하고 바로 집으로 오면 괜찮은데, 피시방에 남아서 정오까지 있다가 오기 일쑤였다. 바로 잠들지 못하고, 몇 시간 잠들지 않고 저녁에 일어나서 몽롱한 채 아르바이트하러 왔기 때문에 나는 내가 힘들다고 생각을 했다.


정오까지 피시방에 머물렀다가 오는 이유는 디아블로 때문이었다. 디아블로가 다른 여타 게임보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나 역시 밤에 디아블로를 하게 되었는데 점점 경험치가 쌓이면서 나와 친구의 아이디를 필두로 길드가 형성이 되어서 오전 10시에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땡 하면 바로 집으로 올 수가 없었다. 남아서 디아블로 세계관을 나름대로 정리를 하고 왔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대를 하고 제대를 한 친구 놈 역시 디아블로에 빠져서 밤새도록 정액권을 끊어서 같이 디아블로를 했다. 친구는 디아블로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스타크래프트는 엉망이었는데 디아블로에서는 날아다녔다. 친구 녀석은 원래도 도전적이고 거친 녀석이었는데 디아블로가 잘 맞은 모양이었다. 그러는 동안 친구는 디아블로의 세계관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게 되었다. 책도 좋아하지 않고 영화도 잘 보지 않았지만 디아블로가 시작하는 영상은 몇 번이나 돌려 봤다.


그러나 친구는 정액권이 끝나면 컴퓨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정오까지 내가 디아블로를 하는 것을 옆에서 보며 이런저런 밉지 않은 간섭을 해주었다. 그런 사정을 알고 사장님은 내가 만약 겨울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준다면 친구는 공짜로 마음껏 디아블로를 해도 괜찮다고 했다. 나를 보는 친구의 눈이 반짝였다. 이런 제길.


밤새 정액권을 끊고 디아블로를 한다고 해도 한 달 이면 그 돈이 만만찮았다. 거기에 친구가 먹고 싶은 컵라면까지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 친구는 나에게 아르바이트를 계속하기를 바랐고 밤에 일도 도와준다고 했다. 결국 사장님과 친구의 거래에 넘어가서 겨울까지, 밀레니엄이 도래할 때까지 아르바이틑 하게 되었다.


디아블로는 채널이 몇 개가 있었는데 우리는 아시아 채널에서 활동을 했다. 우리는 악랄했다. 친구는 이미 그때 키우던 바바리안 캐릭터를 가지고 여러 사람들에게 결투를 신청해서 사냥을 하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친구 녀석은 일부러 레벨을 고레벨까지 올리지 않았다. 친구 녀석이 자신보다 훨씬 레벨이 높은 캐릭터에게 결투를 결고 가서 작살을 내버렸다. 말 그대로 아작을 내 버리는 것이다. 상대방은 레벨이 훨씬 낮은데 어떻게? 같은 반응이었다가 나중에는 친구의 캐릭터가 사냥을 방해하니까 욕을 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은 동료를 데리고 와서 2대 1로 친구에게 결투를 걸었는데 친구는 그걸 즐겼다. 친구는 좋은 아이템은 일부로 숨겨 놓고 골든 아이템을 장착한 캐릭터를 찾아서 결투를 걸고 무참히 짓밟았다. 그것에서 오는 쾌감이 아주 높았다.


당시 디아블로는 캐릭터가 오직 4종류뿐이었다. 우리는 다른 캐릭터는 하지 않고 바바리안만 했다. 바바리안만 돌아가면서 여러 캐릭터로 키웠다. 파워가 강력한 바바리안, 수명이 아주 긴 바바리안, 엄청나게 빠른 스피드 바바리안 등 밤새도록 바바리안에 대해서 연구를 하다시피 디아블로를 즐겼다. 하면 할수록 재미를 더 느끼는 세계가 디아블로의 세계였다.


우리 길드에는 총 5명이 있었다. 그리고 친구와 나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각자 디아블로를 하다가 우리가 대학교 앞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말에 그들은 밤에 내가 있는 피시방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전부 직장인으로 대학교에 재직 중인 교수도 한 명 있었다. 화학과 교수로 디아블로의 세계에 매료되어서 빠지긴 했지만 처음에 소서리스로 시작을 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누군가 결투를 걸어오면 바로 죽고 마는 것이다. 도망 다니다가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죽은 시체를 가지러 가는 절묘한 타이밍에 시폭(시체 폭발)을 당해서 그나마 시간을 들여 모아 두었던 아이템이 현장에 그대로 떨어져 상대방에게 다 빼앗기는 일도 당했다.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그러다가 우리와 만나게 됨으로, 그래서 바바리안을 키우게 됨으로 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에서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되었다. 다른 두 명은 같은 중국집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로 한 명은 요리사. 한 명은 배달부였다. 그들은 전부 갓 제대한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형들이었다. 친해지고 난 후에는 우리를 편하게 대했고 우리는 길드를 형성했고 친구와 나는 디아블로 세계에서 구한 좋은 아이템을 멤버들에게 나눠주며 사냥을 하러 다녔다.


매일 밤 디아블로를 하지만 나는 일을 해야 했다. 여름에는 손님들이 밤에도 흘러넘쳤다. 그들은 곧 다가올 밀레니엄에 대해서 시큰둥했으며 아직 여름이라 겨울에 올 밀레니엄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매일 밤 피시방에서 찾을 수 있는 재미를 찾아서 매일 비슷한 시간에 와서 비슷한 시간만큼 게임이나 채팅을 하다가 돌아갔다. 세이클럽, 아이러브스쿨 같은 사이트를 통해서 채팅을 하고 만남도 많이 가졌다. 개인적인 홈페이지도 만들 수 있어서 간단하게 사이트를 하나 만들어 링크를 걸어서 어설펐지만 자신만의 홈페이지도 인터넷에 띄워 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 홈페이지 첫 화면이 촌스럽지만 시커멓거나 분홍색이거나 글자로만 되어 있는 홈페이지 바탕 화면이 유행을 했다.


그 정도로 만들려면 html을 좀 건드리면 되는데 대학교 디자인과 학생들이 오면 나는 이런 것들을 가르쳐 주면서 학생들이 과제를 하기 위해서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피시방으로 여름 내내 몰려들었다. 그리고 디자인과 학생들의 필수는 포토샵이었다. 내가 포토샵을 할 줄 알고 있어서 돌아가면서 하나씩 뭔가를 가르쳐주고 나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전부 돈이었다. 사장님은 아주 좋아했다. 다른 멤버들이 바바리안을 데리고 사냥을 하러 다닐 때 나의 바바리안은 마을에만 있어서 내가 레벨이 오르는 속도가 가장 느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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