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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11. 2023

우린 밤새도록 휠을 돌렸다 6

소설


6.


아마존이 나타나면 졸던 멤버들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아마존 하나의 존재가 우리를 들었다 놨다 했다. 우리는 다섯 명이고 아마존은 한 명이지만 아마존은 현실의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고 우리 캐릭터를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정말 누구일까. 우리는 디아블로를 하지 않은 시간에도 주위의 사람들에게 혹시 디아블로를 하니? 같은 말을 건네 보기도 했고 이 사람 저 사람 의심을 하기도 했다. 아마존이 여자 캐릭터라 여자들을 주로 의심했는데 남자가 아마존 캐릭터를 키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디아블로 자체가 남자들 유저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그걸 알고 있지만 현실 속 여자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걸 멈출 수는 없었다.


밀레니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날이 추워지고 밤이 길어져 나는 새벽 5시에 목욕탕에 다녀왔다. 목욕탕은 5시에 오픈이다. 탕에 몸을 푹 담그고 있으면 도깨비 같은 여자가 피우는 담배 연기에서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도깨비 같은 여자가 피우는 담배연기는 사람을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내가 목욕탕에 가 있는 동안에는 친구가 피시방을 봐주었는데 목욕을 끝내고 피시방에 들어가니 친구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놀라서 왜 그러냐고 물었다. 친구는 아마존에게 또 시폭을 당했고 그것에 너무 화가 났다. 요리사 형님이 화장실로 데리고 갔는데 분노에 그만 화장실 거울을 주먹으로 쳐서 깨진 것이다. 거울의 조각이 손등에 박히면서 찢어졌다. 친구는 그날 새벽 붕대는 감고 더 열심히 바바리안의 휠을 돌렸다.


1999년 12월이 되었을 때 나는 지오피아의 록 밴드 방에서 지하에서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던 여성을 실제로 만났다. 그 여성은 나와 동갑으로 바비 맥퍼린을 좋아하는 여성이었고 내가 채팅 창에 띄워 올리는 록 밴드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그 여성이 내가 학창 시절,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의 딸이었다. 그 사실 덕분에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만나게 되었다. 여성은 부산에서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 영어 선생님은 학교에서 가장 악랄하고 무서운 선생님이었다. 베트남 전에서 총상을 맞았는데 살아남았고 그때 다친 다리로 인해 절뚝거리며 다녔다. 3년 내내 우리의 영어를 도맡았는데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수재였고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다녔다.


그에 맞게 가죽재킷에 항상 가죽부츠를 신고 다녔다.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나온 수재치고는 영어를 잘 가르친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우리가 영어를 못해서 그럴지는 몰라도 그냥 칠판에 단어들을 죽 적어 놓고 무조건 외우라는 식이었다. 우리는 어차피 이 상태로의 영어실력으로 대학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으니 그냥 많이 외워서 가는 게 좋은 것이라고 했다. 목소리가 막에 걸린 듯 껄껄했고 몹시 컸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는데 무서웠다. 키가 작은데 작은 키와 몸집에서 나오는 위엄 때문인지 우리는 영어선생님을 몹시 두려운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그녀를 만났는데 영어 선생님의 여자 버전 같았다. 졸업하고 시간이 꽤 지났는데 영어 선생님의 얼굴이 대번에 떠올랐다. 정말 닮았었다. 그녀도 그런 자신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자신의 얼굴을 그렇게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유전자라는 건 정말 설명할 수 없는 세계다. 그녀를 만나서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녀의 입에서 듣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 완전히 달라서 충격이었다. 모든 게 거짓이었다. 우리는 3년 내내 영어 선생님에게 속아 온 것이다. 아주 많이 들었던 베트남 전에 참전한 이야기는 전부 허구였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이미 절룩거리는 다리 때문에 군대도 가지 않았다고 했다. 영어 선생님은 우리에게 늘 혼자 살고 있으며 혼자인 삶을 즐기며 보낸다고 했다.


[난 가족이 없기 때문에 너희들 전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너희를 조지는 것으로 기쁨을 대신할 것이다] 같은 무서운 말을 자주 했다. 모두 거짓말이었다. 아내도 있고 딸도 두 명이나 있었다. 그녀에게서 듣는 이야기는 내내 충격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에 속으면서 지낼까. 보통 부부가 싸움을 할 때 그런 이야기를 한다. 그동안 속아서 살아왔다,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 같은 말을 하면서 싸운다. 그녀와의 만남은 한 번으로 끝이 났다. 솔직히 그녀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안 듣는 편이 더 나을 뻔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괜히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매일 밤 짧게나마 지오피아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트레이시 채프먼의 이야기를 하거나 비치 보이스의 이야기를 할 때면 디아블로만큼 재미있었다. 그녀가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대학교 근처로 왔다. 카페에서 만나 두 시간 정도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다. 카페에는 이미 크리스마스 분위기였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모든 것들이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 지오피아의 활기도 조금씩 싸 그라 들었다.


디아블로를 하는 요리사 형님과 배달부 형의 체력은 거의 바닥이 날 지경이었다. 밤새도록 렌스바바의 훨을 돌리고 사냥을 하고 잠도 못 자고 출근해서 하루 종일 일을 한다는 건 몸에 엄청난 부하를 준다. 요리사 형님은 마우스를 누르다가 갑자기 마우스를 휙 던지는 일이 있었는데 졸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멤버들은 12월 꼬박 쉬지 않고 디아블로를 위해 밤을 지새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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