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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10. 2023

우린 밤새도록 휠을 돌렸다 5

소설


5.


다이블로 아시아 채널에서 우리 멤버의 아이디가 피해야 할 아이디로 여러 길드에서 돌고 돌았지만 아마존 캐릭터가 나타난 이후로 디아블로 채팅 창에는 우리에게 조롱과 비아냥의 글들이 늘어났다. 도대체 저 아마존은 누구일까. 아마존이 쏘아대는 활 중에 검은 화살을 맞고 마을로 돌아가지 않으면 피의 마나가 계속 떨어져 죽게 되었고 걸음도 엄청 느려졌다. 그런 아이템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마존은 처음 보는 활을 우리에게 쏘았고 우리는 활을 맞고, 마을로 돌아왔다가 다시 나가고, 나가자마자 다시 화살을 맞고 마을로 돌아와야 했다. 아마존은 우리를 가지고 논다고 검은 활을 자주 사용하지 않았다. 그게 더 우리를 화나게 만들었다.


당최 아마존은 누구일까. 우리를 알고 있다면 우리 근처에 있는 사람이 아닐까.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심각하게 이야기를 했다. 평소에 누군가에게 악한 짓을 했는지, 누가 나에게 복수 같은 걸 할만한 일들에 대해서 떠올리고 이야기를 했지만 전부 자신의 잘못한 점은 밖으로 꺼내 놓지 않으려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복수를 당할 만큼 잘못한 일을 하며 살지는 않았다.


친구는 군대에서 후임들에게 아주 무서운 선임이었다. 그 얘기는 친구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후임들을 때려잡았다. 친구는 그중에 한 녀석일까 하는 말을 했다. 그러나 제대 후에는 그 누구 하고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멤버 중 교수님도 특별한 의견은 없었지만 어쩐지 좀 주저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럴 때가 아니라며 요리사 형님과 배달부 형은 디아블로에 들어가서 사냥을 하는 게 낫다는 의견으로 좁혀져 우리는 그렇게 했다. 그러는 가운데에서도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재떨이를 비우고, 지오피아의 록 밴드 방에서 활동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날이 차가워지면서 바글바글하던 손님들도 조금씩 줄었다. 대학교 기말고사 기간까지는 그래도 바빴다. 새벽에 앉아 있는 손님들도 여름처럼 활기차지 않았다. 겨울로 접어들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겨울은 사람들의 몸을 무겁게 만들었다. 밤에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 이외에 가만히 앉아서 게임을 할 뿐이었다. 피시방에서 가만히 앉아서 게임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새벽 4시가 되면 어김없이 배고픈 멤버들에게 짜장밥을 만들어서 갖다 주었다. 새벽이 되면 늘 재팬 록을 틀었다. 하루는 히데의 노래만 계속 틀었다. 사람들은 모두 헤드셋을 끼고 게임을 했기 때문에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던, 일본 록음악이 나오던, 어떤 음악이 나오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도깨비 같은 여자가 음악 소리를 줄여 달라고 했다. 도깨비 같은 여자는 하루는 바람의 나라를 하면서 스피커로 소리를 틀어 놓고 게임을 했다. 여자는 담배를 아주 많이 피웠다. 고작 몇 시간 안 되는 새벽 시간 동안 담배를 두 갑 정도는 피웠다. 환풍기를 강하게 틀어놔야 해서 난로는 더 강하게 했고, 우리는 외투까지 입고 디아블로를 했다. 그것 때문에 난로 위에 올려놓은 짜장을 담은 케첩통이 달아 올라서 짜장이 타들어갔다. 우리는 짜장이 타는 것도 모르고 아마존을 사냥하러 다녔다. 


피시방 안이 부옇게 되면서 짜장이 타는 냄새가 가득 퍼졌을 때 한 손님이 우리에게 알려 줘서 짜장을 난로 위에서 꺼냈다. 그때 나도 모르게 맨 손으로 달궈진 케첩통을 잡았다가 손바닥이 데고 말았다. 짜장이 바닥에 쏟아졌다. 쏟아진 짜장은 짜장이 아니라 마치 악마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검은 골수 같았다. 아주 이상했다. 큰일 날 뻔한 것이다. 다행히 우리 이외에 손님이 몇 명 밖에 없었다. 그 속에 도깨비 같은 여자도 있었다.


멤버들이 렌스바바를 데리고 분주하게 휠을 돌리는 것과는 다르게 나는 디아블로 세계를 빠져나와 현실에서 일을 했다. 그때 멤버들의 뒷모습이 마치 누군가 조종하는 캐릭터처럼 전부 똑같아 보였다. 나도 슬슬 정신이 잠에 잠식되려 하는 모양이었다. 아마존은 예고 없이 등장했다. 아마존이 나타나면 멤버들은 이제 긴장을 했다. 마을 밖으로 나가서 호기롭게 아마존을 잡으려고 포털을 통해 들어가지만 섣불리 아마존 가까이 가지는 못했다. 나는 멤버들의 뒷모습을 보며 카운터에서 지오피아 록 밴드 방에서 히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히데의 노래를 틀었는데 도깨비 같은 여자가 카운터로 오더니 듣기 싫으니 음악을 꺼달라고 하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갔다. 지난번에는 음악 소리를 줄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끄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도깨비 같은 여자의 눈을 보는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동자가 마치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 나도 몹시 피곤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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