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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12. 2023

우린 밤새도록 휠을 돌렸다 7

소설


7.


12월이 되고 나서 밀레니엄 때문인지 대학 가는 떠들썩했다. 그 떠들썩함이 이전의 해와는 달랐다. 길거리는 길거리대로, 판타지의 세계는 그 세계대로, 피시방은 그것대로 떠들썩했다. 12월의 겨울은 12월 만의 색채가 있었다. 그러나 피곤에 찌든 요리사 형님과 배달부 형과 교수님과 친구는 아마존이 나타나면 눈에 불을 켜고 바바리안의 휠을 돌렸다. 마우스를 조종하고 키보드를 타닥타닥 힘 있게 눌렀다. 교수님은 아내에게 가야 했지만 거짓말로 학교에 남아야 하는 구실을 만들어서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정액권을 끊고 밤새도록 디아블로를 했다.


친구와 나는 아마존을 잡기 위해, 멤버들을 위해 버스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피시방까지 갔다. 그곳에서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디아블로 고수였다. 무엇보다 희귀 아이템을 구비하고 있었다. 그걸 구입하러 거기까지 가게 되었다. 일단 다른 멤버들은 낮에는 일을 해야 하니 나와 친구가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다녀왔다. 새로운 렌스를 착용한 바바리안을 보니 흐뭇했다. 오늘 밤이 기대가 되었다. 이 정도면 스피드 바바리안에게 장착을 하고 아마존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날은 점점 추워졌고 난로의 불은 타올랐다. 우리는 디아블로를 하는 동안 현실의 소식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어느 날은 유튜의 ‘원’을 피시방에 틀었다. 오늘은 왜 일본 록 음악을 틀지 않느냐고 친구가 물었다. 별거 아니었지만 나는 루나 씨의 음악을 틀었다고 틀었는데 유투가 나왔나 보다 생각했다.


밤에 손님들이 줄어들었지만 도깨비 같은 여자는 매일 밤 나타나서 바람의 나라를 했다. 가까이 다가가면 괴이한 냄새는 여자 주위에 머물러 있었다. 몸에서 나는 체취 같은 냄새일 것인데 안개처럼 희미하고 은은했다. 그 냄새가 피부를 파고들었다. 도깨비 같은 여자가 앉았던 의자는 아무리 탈취제를 뿌려도 냄새가 빠지지 않았는데 이상하지만 여자가 나가고 난 후 낮에 그 자리에는 늘 사람이 앉아서 게임을 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더욱 이상한 일은 언젠가부터 도깨비 같은 여자는 외상으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사장님은 그렇게 해주라고 했다. 그래서 도깨비 같은 여자가 나타나면 컴퓨터를 열어 주었다. 12월이 되어서 잘 설명은 할 수 없지만 어쩐지 조금씩 우리 주위의 일들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도깨비 같은 여자도 늘 같은 자리에 앉아서 바람의 나라를 했다.


12월 6일인가. 배달부 형이 그 멋진 지브라 무늬의 스키니 바지가 아닌 펑퍼짐 체육복 차림으로 다리를 절룩거리며 나타났다. 졸음 때문에 배달을 하다가 오토바이에서 넘어졌다는 것이다. 배달부 형은 아마존이 한 말 때문에 그날 밤 아주 분노하고 있었다. 우리는 원정 가서 구해온 굉장한 렌스를 배달부 형의 바바리안에게 주었다. 배달부 형의 눈빛은 그야말로 짐승 같았다. 크아크아 하며 배달부 형의 바바리안이 함성을 외칠 때 배달부 형의 다리도 순간적으로 다 나은 것처럼 느껴졌다. 기세등등하게 디아블로의 세계에 들어갔지만 아마존을 잡지 못했을뿐더러 시폭을 당해서 그 비싸게 구매해 온 렌스를 아마존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배달부 형과 요리사 형님, 그리고 교수님과 친구는 불같이 화를 냈다. 나는 멤버들에게 잠시 디아블로를 중단하고 다른 게임을 마음을 추스르자고 했지만 나에게 날아든 건 욕이었다.


새벽 4시에 멤버들의 분노를 삭일 겸 짜장밥을 만들어 와서 먹었다. 디아블로에 빠지면 다른 건 눈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멤버들 중에서 내가 제일 정신이 멀쩡한 편이었다. 나는 새벽 내내 온전히 디아블로에만 빠져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바리안의 휠을 돌리다가 멤버들의 짜장밥을 준비하러 주방에 가야 했고, 다른 자리에 앉아있는 손님들을 챙겨야 했고, 도깨비 같은 여자의 재떨이를 갈아줘야 했다. 또 지오피아 채팅 방에서 쪽지가 오면 답장을 보내야 했다. 그녀가 다녀간 후 나는 지오피아를 예전만큼 열정적으로 하지 않았다. 지오피아에서는 왜 채팅하러 들어오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다 보면 디아블로에만 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난방에도 신경을 써야 했고 화재도 신경이 쓰였다. 지난번에 짜장을 태워 먹은 뒤로는 난로를 관리하는 일에 신경을 더 쏟아야 했다. 간판의 불도 신경 써야 했고 오전에는 계단의 물청소도 해야 했다. 그래서 청소가 끝나면 몸은 항상 고되고 힘들었다. 밀레니엄이 다가오면서 y2k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피시방마다 불안을 잔뜩 짊어지게 되었다. 대비를 한다지만 어떤 대비를 해야 할지 아는 피시방은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비상식량을 구입한다던가, 휴거에 대비해야 한다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상의 대비를 하는 반면에 사회의 소식에 거의 무지했던 우리는 디아블로가 끊기면 어떡하지? 같은 고민과 불안에 노심초사했다.


밀레니엄을 7일 앞두고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이했다. 사장님 아내의 요청으로 인해 피시방에 작게나마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다. 피시방을 벗어나면 방학이지만 대학로의 활기가 가득했다. 피시방 밑으로 고기 집과 오래된 분식집 그리고 이상하지만 걸스 Bar가 많았다. 바는 대부분 크지 않고 작은 공간에 술을 마실 수 있게 해 놓고 여성 두세 명 정도가 같이 대화를 해주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피시방 건물의 지하에도 바가 있어서 거기서 일하는 여성이 게임을 하러 올라오기도 했다. 우리는 가끔 지하에 내려가서 맥주를 마시며 디아블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이브 밤에는 밤새도록 캐럴을 틀어놓고 바바리안의 휠을 돌렸다. 이브의 밤에는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았다. 집중을 해서 모두가 아마존을 사냥하러 다녔다. 그러나 아마존은 우리를 가지고 놀았고 우리는 열을 올렸다. 분노하지 말자는 다짐과는 다르게 멤버들은 화를 냈다. 아마존과 우리의 결투를 보던 다른 사람들은 채팅으로 친구에게 비난의 욕을 퍼부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디아블로 세계관에서 했던 저질렀던 일은 생각지 못하고 우리가 왜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더 분노했다. 교수님 역시 5일만 있으면 아내가 있는 집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잠을 줄여 가며 바바리안의 휠을 돌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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