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Dec 13. 2023

우린 밤새도록 휠을 돌렸다 8

소설


8.


거의 굶어가며 디아블로를 했다. 그러다가 새벽 4시에 이르러 출출하다는 소리가 나오면 짜장밥을 만들어서 먹었다. 다행히 짜장은 끊어지지 않고 공급이 되었다. 요리사 형님과 교수님은 돌아가면서 쌀값을 주었다. 밥은 안치고 다 되면 짜장밥을 만들어서 우리는 매일 새벽에 먹었다. 크리스마스 당일부터는 배달부 형이 나오지 않았다. 다리가 아파서 며칠 피시방에 못 온다는 소리를 요리사 형님을 통해서 들었다. 요리사 형님의 말에 의하면 넘어진 다리 부분에 물이 차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새벽에 요리사 형님이 들고 온 짜장으로 짜장밥을 만들어서 멤버들에게 나눠 주었다. 새벽에 퍼지는 짜장의 냄새는 매혹적이다. 나는 작은 그릇에 밥과 짜장을 담아서 다른 손님들에게도 나눠 주었다. 12월 중순이 넘어간 피시방 새벽의 손님들 중에 대학생들은 없었다. 대부분 근처에서 혼자 생활하는 직장인들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피시방에 혼자서 게임을 하고 있다는 건 더없이 외롭다는 말이다. 그들도 내가 준 짜장밥을 맛있게 먹었다. 크리스마스 당일 오전에 설거지를 하는데 멤버들의 그릇이 한 그릇 더 나왔다. 배달부 형이 없어서 나, 친구, 교수님, 요리사 형님 네 명의 그릇만 나와야 하는데 설거지를 하려고 보니 그릇이 다섯 그릇이었다. 정말 이상했다.


다른 손님들에게 준 그릇은 작은 그릇이라 우리와 달랐다. 나는 다섯 그릇을 들고 한참을 쳐다보았다. 정신이 없어서 누군가 한 그릇 더 먹었나? 하지만 지금까지 자기 먹던 그릇에 덜어 먹은 적은 있었지만, 그것도 오직 한 번뿐이었다. 내가 양을 2, 3인분으로 짜장밥을 만들어서 들고 온다. 멤버들 모두가 디아블로를 하면서 밥을 먹기 때문에 집에서 식사를 하는 것처럼 먹지는 못한다. 휠을 돌리다가 그릇을 들고 먹고, 잠시 쉴 때 한 숟가락 먹고, 그런 식이었다. 도대체 다섯 번째 그릇은 어디서 나왔을까. 짜장이 묻은 것으로 누군가 먹었다는 말이다.


크리스마스에도 전날과 그 전날과 다르지 않은 밤이었다. 그저 피시방에 나오는 음악이 캐럴이었을 뿐이었다. 도깨비 같은 여자는 정말 도깨비 같았다. 나이가 몇 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이가 많았다. 교수님 정도의 나이이거나 더 나이가 들었을 것이다. 대학가의 피시방에 매일 밤 와서 바람의 나라를 할 정도의 나이 같지는 않았다. 낮에는 뭘 하는지 나타나지 않다가 밤이 되면 늘 같은 옷, 같은 행색으로 나타나서 바람의 나라를 했다. 옷소매 끝이 때로 물들어 색이 짙어 보였다. 재떨이를 갈러 가면 정말 설명할 수 없는 몸에서 나는 냄새, 고약하지만 자꾸 맡으면 중독될 것 같은 냄새가 났다.


도깨비 같은 여자는 이제 컵라면도 외상으로 먹었다. 나는 음식 값은 제때에 지불하라고 했지만 도깨비 같은 여자는 사장님과 통화를 하더니 사장님을 바꿔 주었다. 사장님은 나에게 외상으로 해주라고 했다. 도깨비 같은 여자는 그날부터 라면이나 과자 등 먹기도 많이 먹었다. 덕분에 라면을 자주 주문했다. 여자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신이 이상한 여자도 아니었다. 대화(라고 하기는 뭣 하지만)를 하면 납득이 갔고 가까이 가기가 싫었지만 일단 가까이 가고 나면 이상하지만 도깨비 같은 여자의 말을 듣게 되는 것만 같았다.


크리스마스에는 집에 가지 않았다. 이브를 보내고 크리스마스 당일 날, 낮에도 밤에도 피시방을 봐야 했다. 사장님이 가족과 보내야 하는데 나에게 아르바이트 비를 많이 쳐 줄 테니 좀 봐달라고 했다. 사모님은 임신 중이라 같이 보내야 했지만 잠을 자지 못해서 나는 기진맥진했다. 친구와 번갈아 가면서 피시방의 작은 방에서 한 시간씩 잠을 자면서 25일, 26일을 보냈다. 친구는 낮에도 디아블로에 빠져서 사냥을 했다. 낮에는 아마존이 나타나지 않았다. 도깨비 같은 여자도 낮에는 피시방에 있지 않았다.


교수님이 나타나면 언젠가부터 좋은 향이 감돌았다. 아무래도 그 향은 여자에게서 교수님에 딸려 온 향 같았다. 교수님은 바람을 피우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디아블로를 하면서 교수님과 많이 친하게 되었지만 사생활까지 일일이 캐묻지 않았다. 교수님은 다른 도시에 두고 온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바람을 피우는 건 또 다른 문제일까. 알 수 없다. 모르는 일들이 도처에 일어나고 있다.


크리스마스 당일밤에도 이브처럼 손님은 많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요리사 형님이 들고 온 짜장으로  -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받아서 스프를 넣지 않고 짜장을 부어서 비벼서 먹고, 밥을 해서 짜장밥으로 먹었다. 아무튼 우리는 지치지 않고 짜장을 먹었다. 검고 달달하고 맛있는 짜장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었다. 27일 새벽에도 번갈아 가면서 목욕탕에 다녀오자고 친구와 나는 합의를 봤다. 합의를 보는 게 이전만큼 수월하지는 않았다. 친구는 씻는 건 집에서 대충 씻고 디아블로를 하기를 바랐다. 나에게 왜 디아블로를 열심히 하지 않느냐고 했다. 친구가 그렇게 변한 건 아마존 때문이었다.


도깨비 같은 여자는 밤 10시가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서 외상으로 밤새도록 바람의 나라를 했다. 몸에서 풍기는 기묘하고 독특한 냄새는 밀레니엄으로 다가갈수록 더 짙어지는 것 같았다. 그건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교수님도 요리사 형님도 친구 녀석도 그렇게 느꼈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우린 밤새도록 휠을 돌렸다 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