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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14. 2023

우린 밤새도록 휠을 돌렸다 9

소설


9.


피시방 안에는 커피 자판기도 있었는데 커피는 금세 동이 났다. 그래서 자주 커피를 채워 넣어야 했고, 종이컵도 마찬가지였다. 동전은 금방 쌓였다. 자판기의 문을 열고 커피와 물을 채워 넣고 청소를 해주었는데 적어도 4일에 한 번은 그렇게 해야 했다. 자주 청소를 했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부분을 잘 닦아야 했고 깨끗하게 했다. 그런데 그날 새벽에 자판기에서 리듬감이 느껴졌다. 뭔가 다다닥 다다닥 하는 작은 리듬감이 들렸다. 정확하게 규칙적이지는 않았지만 규칙에 가까운 리듬감이었다.


나는 디아블로를 하다가 그 소리가 신경이 쓰여 자판기를 열어 보았다. 그러자 자판기 바닥에 바퀴벌레 100마리 정도가 붙어 있다가 문을 열자마자 다다닥 다다다 다닥하며 기어 나왔다. 그 장면은 충격이었다. 나는 멤버들에게 바퀴벌레를 잡아야 한다고 했지만 그들은 바바리안의 휠을 돌리느라 바퀴벌레 따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제는 나도 잠이 쏟아졌다. 보통은 오전 10시에 나와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면 정오가 못 된다. 씻고 밥 먹고 그대로 잠들어서 오후 8시 정도에 일어난다. 그리고 챙겨서 피시방에 도착하는 시간은 늘 일정했다. 오전에 피시방을 나올 때 친구와 함께 대학교 앞에 있는, 오래된 명물 고깃집이 문이 열려 있으면 고기를 구워 먹으며 소주도 한 잔 했다. 오전에 소주를 마시다 보면 밤에 비해 취하지 않아서 주량을 넘기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 집으로 가는 한 시간 동안 버스에서 세상모르고 잠들었다. 그 시간에 집으로 가는 버스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전부 출근을 하거나 방학이 아니면 학교에 갔을 시간이니까.


꾸벅꾸벅 졸다가도 내려야 할 정류장이 다가오면 이상하지만 눈이 떠졌다. 소주와 고기로 잠식된 나의 몸이라도 내려야 할 때가 되면 눈이 떠져 내릴 준비를 했다. 아마 눈이 충혈이 되어 있고 입에서는 술 냄새가 나고 엉망일 것이다. 버스가 멈추고 내리려는데 저 앞,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도깨비 같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여자의 뒷모습만 보였지만 흰머리가 섞인 포니테일이 분명 도깨비 같은 여자였다. 도깨비 같은 여자가 오전 10시에 피시방을 나갔다. 나는 친구와 아침 겸 고기와 소주를 마셨다. 여자가 언제 버스를 탔는지 그리고 여자는 도대체 어디에서 버스를 탔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나는 잠들었지만 여자가 중간에서 타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리고 왜 이곳으로 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저 여자가 도깨비 같은 여자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내가 내리고 버스는 떠나고 말았다. 나는 달려가서 도깨비 같은 여자인지 확인하려고 했다. 그러나 술과 부른 배 때문인지, 피곤 때문인지 버스를 따라잡지 못했다. 밤에 도깨비 같은 여자가 오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그 여자 근처에 가면 이상하지만 암흑이 되고 뿌연 막이 가로막고 있어서 무슨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았다.


밀레니엄이 4일 남은 시점. 새벽 4시에 잠도 깰 겸 주방에서 멤버들의 짜장밥을 준비했다. 분명 네 그릇이다. 나는 만들면서도 확인을 했다. 양도 많다. 짜장을 전부 사용했다. 남은 짜장이 없었다. 중국집 요리사 형님은 짜장이 보기 싫을 법도 한데 바바리안의 휠을 열심히 밤새도록 돌리다 보면 그런 것 따위 잊게 된다. 요리사 형님에게 들은 이야기로 배달부 형은 다리가 그 상태로 배달을 계속하다가 더 나빠져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고 다른 배달부를 구한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병문안을 가려고 했지만 배달부 형은 이 지역이 아니라 집이 대구라 대구에 있는 병원에 입원했다.


배달부가 구해지지 않으면 어떡해요?라는 우리의 물음에 요리사 형님은 느긋했다. 배달부 구할 동안 배달만 못하는 거지 뭐, 홀에는 사람들이 늘 있으니까. 게다가 나도 좀 편할 수 있고, 홀 손님만 받으면 되니까 말이야. 같은 월급이라면 노동을 조금이라도 적게 하는 편이 요리사 입장에서는 나은 것이다. 요리사 형님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였다. 마치 배달부 형의 다리를 아프게 만드는 것이 자신에게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래야 디아블로에 더 빠져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모두가 교요해질 시간 새벽 4시를 지나면서 우리는 짜장밥 한 그릇씩 먹고 나는 5시에 목욕탕에 갔다. 새벽에 갓 받은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살아있는 기분이었다. 고개를 뒤로 젖혀 천장을 봤다. 천장에 수증기가 올라가 수천 개의 물방울이 되어 붙어 있었다. 그런데 물방의 색이 검은색으로 보였다.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물방울이 마치 검은빛으로 물든 수천 개의 눈알처럼 보였다. 그렇게 보이는 물방울에 천장에 가득 붙어 있었다. 나는 두 손으로 탕의 물을 떠서 천장에 확 뿌렸다. 그러자 바퀴벌레 100마리가 흩어지듯 물방울이 바닥으로 후두두둑 떨어졌다. 팔을 들어 나는 얼굴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막았다. 팔뚝에 떨어진 검은 물방울은 나의 팔을 따갑게 했다. 나는 얼른 탕에서 나와 팔을 씻었다. 조금 지나니 팔도 괜찮아졌고 검은 물방울도 투명하게 보였다.


목욕탕까지 오는 동안 차가운 겨울 새벽의 한기를 느끼며 왔다. 목욕탕의 첫 개시가 내가 되었다. 고요해야 할 목욕탕이 검은 물방울 때문에 시끄럽게 목욕을 했다. 6시 정도가 되니 아저씨들이 들어왔다. 후우. 나는 깊은숨을 쉬었다. 때 같은 건 밀지 않고 나는 씻고 나왔다. 겨울에 피시방에서 밤새 아르바이트를 하면 자주 목욕탕에서 때를 밀어도 때가 나왔다. 마치 한 달 만에 목욕탕에 온 것처럼 때가 나왔다. 그러나 나는 때를 밀지 않고 씻고 나왔다. 차가운 겨울 아침의 냉기가 다시 얼굴에 와닿았다. 그때 기침이 났다. 콜록콜록.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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