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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29.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75

4장 1일째 저녁


75.

 마동은 그 맛을 잘 알고 있다. 자주 먹지 않는 음식이기 때문에 꽤 맛있게 먹어본 음식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파악하고 있다. 잘 먹지 않는 육류처럼 국물이 많은 음식도 마동은 잘 먹지 않았다. 가끔 생각이 나는 날이 있는데 그날이 오늘 같은 날이다. 따뜻한 국물을 양껏 들이키고 선풍기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회사에서 들고 온 작업을 하고 싶었다. 마동은 장을 다 보고 마트를 나서면서 오늘은 우동 샤부샤부에 육류를 좀 넣어서 먹어볼까 하는 생각에 순간 사로잡혔다. 고기의 날 것의 맛이 떠올랐다. 마동은 육류코너에 잠깐 들렀다가 마지막 세일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접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상했다. 날고기에 대한 강한 끌림은 어젯밤의 끌림과 흡사한 욕망이었다. 집으로 오는 내내 마른번개가 조명을 켜듯 번쩍거렸다. 어제도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안고 있을 때 여러 번의 마른번개가 비가 그친 후 번쩍거렸다.


 마동은 아직도 어제의 일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마동 자신이 만들어낸 허구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벤치에서 정신이 들었을 때 이미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라는 여자는 온데간데없었고 마동 혼자만 벤치에 어설픈 자세로 누워있었다. 아랫도리에 동통이 있는 걸로 보아서는 분명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라고 이름을 밝힌 그녀와 벤치에서 교접을 이루었다. 그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마동은 그저 그것은 허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동통을 제외하고는 그 교접이 현실세계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감각적으로 기억이 자꾸 후퇴해갔다. 마트에서 집으로 오면서 내내 그 생각에 사로 잡혔다. 집에 들어와서 시원한 물로 샤워를 했다.


 마동이 살고 있는 집은 15평의 1 LDK의 독신자 아파트다. 방이 따로 있고 거실과 조리대가 있는 키친이 전부 하나씩인 독신자를 위한 공간이었다. 마동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을 좋아했지만 혼자 살면서 욕조에서 목욕 후 욕조에 낀 때를 제거하는 청소가 귀찮아서 욕조가 없고 샤워만 할 수 있는 구조의 집을 선택했다. 비교적 좁은 욕실인 대신 조리대가 크고 작은 홈 바가 들어서 있는 키친의 공간에 더 마음에 들었었다. 계약을 할 때 마동은 잠시 욕조 때문에 망설였지만 이 집으로 계약을 했다. 그 계약을 지금 후회하고 있다. 오늘같이 파괴적인 피곤과 감기와 무엇인지 모를 얄궂은 상념에 휩싸인 날에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생각 없이 물이 코의 끝선에서 찰랑거리는 느낌을 즐기는 것이 행복일 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끊임없이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고 늘 선택을 해야 한다. 잘못된 선택을 하든, 올바른 선택을 하든 그것이 가져올 결과가 올바르지 않다고 할지라도 본인 자신의 몫이기 때문에 누굴 탓할 수는 없다. 마동이 살고 있는 아파트 동에는 마동이 사는 집보다 생활할 수 있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다. 욕조가 딸린 다른 집의 구조를 생각하며 마동은 샤워기의 물줄기를 몸으로 받았다. 몸살 기운이 아침보다 더해지려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수돗물의 냄새가 이렇게 역하게 났단 말인가.


 머리를 타고 흘러내려오는 수돗물에서 화학약품 냄새가 심하게 났다. 마동은 샤워기의 주둥이를 돌리고 떨어지는 물줄기에서 몸을 비켰다. 샤워기 입구를 들고 수도꼭지를 잠갔다. 쏟아지던 물줄기가 이내 똑똑 물방울로 변했다. 샤워기를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고 손가락으로 샤워기의 입구 부분을 문질러 보기도 했다. 샤워기는 한 번도 교체하지 않았지만 아직 바꾸지 않아도 될 만큼 깨끗했다. 샤워기가 오래되어서 풍기는 냄새는 아니었다. 수돗물에서 나는 냄새가 확실했다.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게 당연했다. 인상을 찌푸렸다. 수도국에서는 수돗물을 정수기에 거를 필요 없이 마셔도 될 만큼 안전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모든 기관이나 집에서 정수기 물을 받아 마시고 있다. 단지 수돗물이 이동하는 수도관의 마모 여부나 세월의 흐름이 관을 통과하는 수돗물을 더럽힌다는 것이다. 수도국에서는 수돗물만 관리를 하지 수도관은 관할이 아닌 모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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