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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30.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76

4장 1일째 저녁


76.

 수도국이면 수도에 관련된 건 모두 관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위생에 관련이 있는 문제인데 나 몰라라 하고 방치하다니.


 마동은 순간 불쾌한 감정이 확 올라왔다.


 그것이 아니라면 수도관 때문에 물이 점점 더러워져 약품을 이렇게 많이 넣은 걸까.


 가뭄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는 산성이 강해서 점점 약품을 많이 넣어야 했다. 그렇다고는 하나 이렇게 역할 정도로 화학약품 냄새가 많이 나는 수돗물을 가정에 보낸다는 것은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동은 다시 샤워기를 틀어서 코를 막고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비누칠을 하고 비누 타월로 온몸 구석구석 씻어냈다. 발가락 사이도 비누칠을 진지하게 했고 배꼽도 진지하게 씻어냈다. 귀 안도 씻어냈고 겨드랑이와 무릎 안쪽도 진지하게 비누칠을 했다. 비누칠이 끝나고 숨을 참으며 약품 냄새가 심한 수돗물로 헹궈 냈다. 마동은 샤워를 하면서 페니스를 쳐다보았다. 격동의 밤을 보낸 것을 아는지 페니스는 축 늘어져 있었다. 페니스를 보니 어제의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숨 막히는 가슴골과 다정하지 않은, 그렇지만 부드럽고 냉랭한 긴 손가락과 투명한 손톱, 미스터리한 눈빛의 눈동자를 지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모습을 생각하니 페니스가 또 고개를 들었다.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던 감각은 가물가물했다.


 마동은 머리를 흔들며 샤워에 집중했다. 페니스는 그렇게 쉽게 물먹은 스펀지처럼 되지 않았다. 발기를 하니 어제 벤치에서 사라 발렌샤 얀시엔에게 사정을 한 뒤 느꼈었던 동통이 페니스에서 느껴졌다. 샤워를 끝내고 몸에 베이비오일을 침착하게 구석구석 발랐다. 인간이 만들어 낸 발명품 중에 굉장한 물품들이 여럿 있겠지만 마동은 그중에 베이비오일을 순위에 넣었다. 사시사철 베이비오일을 가지고 다니며 샤워 후에는 몸에 꾸준하게 발랐다. 공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한 후에도(대중목욕탕에 가지 않은 지 몇 년째다) 집에서 샤워를 한 후에도 여름의 한낮에 태양 밑에서 조깅을 할 때에도 그리고 밤에 강변을 달릴 때에도(달리기 전에 한차례 오일을 바르고 달렸다) 노출이 된 피부에 발랐다. 쉬는 날, 낮 동안 몸이 자외선에 드러나는 부분에는 어김없이 베이비오일을 바르고 달렸다. 당연하다는 듯 해변에서 선탠을 할 때에도 마동은 베이비오일을 발랐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낮의 여름에 해변에서 베이비오일을 잔뜩 바르고 몸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삼십 분만 태양에 노출을 시켜도 몸의 빛깔이 캐러멜 색과 비슷하게 보기 좋은 구릿빛으로 변한다. 쉬는 날 여름의 태양이 있는 낮에 해변에 누워서 몸을 태우는 일은 그 어떤 여유보다 즐거운 일이다. 타인이 보면 아무 재미도 없을 것 같은 일에 마동에게는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오일을 발라가며 몸을 제대로 태운다면 여름날의 평소에는 에어컨 바람이 없이도 더위를 심하게 타지 않고 잘 견디며 보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여름에 더위를 피하려고만 하고 시원한 음료만 찾는다. 그래 봐야 더 더울 뿐이다. 베이비오일은 몸을 알맞게 태우는 것에 시간 대비 효과가 좋았다. 마동은 그 발견이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 같았다.


 마동은 고등학교 때 어딘가에서 누군가들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하고(구타를 당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병원에 입원 후 깨어났을 때 여러 가지의 기억이 사라졌고 훼손이 되었다. 압제에 의해서 삽으로 구덩이를 파내듯 부분적인 부재라는 기억의 구덩이가 있었다. 그 후, 비교적 마르고 희멀건 자신의 신체가 싫었다. 그런 육체를 지니고 있어서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이들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한 기분이 들어 억울했다. 마르고 희멀건 자신의 육체는 뚱뚱하고 까무잡잡한 몸에 비해 나약해 보였으며 뚱뚱하고 희멀건 몸에 비해서도 못나보였다.


 마동은 베이비오일을 바르고 팬티를 입고 욕실을 나왔다. 에어컨을 26도로 맞춰놓고 선풍기를 틀어 놓으니 시원했다. 냉랭하고 차가운 에어컨의 느낌이 아니라 초가을 속의 산들바람을 맞으며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몸에 남아있는 물기를 바짝 말린 다음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우동 생면을 끓고 있는 냄비 안에 넣었다. 도마 위에서는 깨끗하게 씻긴 채소들이 ‘날 잘라 달란 말이야’라며 널브러져 있었고 마동은 칼질을 하려 했다. 도마 위의 채소를 칼로 써는 순간, 서걱서걱하는 소리가 듣기 싫은 소리만큼 유난히 크게 들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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