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Jan 26. 2024

초자연적인 현상 1

소설


1.


초자연적 현상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은 알겠지만 놀라거나 경이로움에 충격을 받기도 한다. 초자연적인 현상은 주로 자연에서 일어난다. 거대한 낙뢰라든가, 그 낙회 중 번개를 맞는 장면을 본다든가. 주로 해외에서 초자연적인 현상이 많이 일어난다. 태풍의 질이나 규모도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니까.


그다음에 동물들에게서 볼 수 있다. 곰이 물에 빠진 새를 구해준다거나, 개가 고양이를 구한다거나. 육식동물이 작은 동물을 구해주고 가버린다거나. 그런 모습은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상식을 거둬내고 마음의 눈으로 보면 받아들이게 된다. 이 역시 초자연적인 현상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초자연적 현상이 인간에게서 나타난다.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은 초자연적 능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가끔 접하는 장면은 몽유병에 걸린 사람들의 모습은 꼭 초자연적인 모습처럼 보인다.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은 공포에 가깝다. 무서운 모습이다. 인간에게서 초자연적인 능력이 나타나면 그건 그것대로 낭패가 될 수 있다. 아무리 옳은 일에 그 능력을 사용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존재처럼 여겨지는 사람을 두려워한다. 인간이란 아무리 옳은 일을 한다고 해도 분노하거나 화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논리적으로 판단을 할 수는 없다. 만약 초자연적인 능력을 내는 사람이 화가 나 있을 때 그 옆에 있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두려운 존재로 여길지도 모른다.


이런 두려움은 반드시 사람이 아니더라도, 꼭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더라도 주위에서 종종 느낄 수 있다. 늘 곁에 있는 것들, 방안의 불을 밝혀주는 전등이나 변기, 샤워기 같은 물품들. 어제와 별 다를 바 없는 물건이 오늘 갑자기 안 된다거나 전기 스파크가 튄다거나 가열로 인해 녹아내린다거나 하면 겁이 나고 무섭다. 늘 다니던 골목길의 계단이 내 앞에서 갑자기 무너지거나 도로가 내 앞에서 싱크홀이 생겨 앞에서 가던 사람이 빠진다거나 하면 충격을 받는다. 인간이란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며 비행기나 거대한 배도 만들지만 개개인은 지극히 연약하고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눈에 뾰족한 무엇인가가 들어갈까 봐 불안해서 길거리를 마음껏 다니지 못하지는 않는다. 모험심이 강해서 깊은 바다 밑으로 목숨을 걸고 들어가며 절벽을 기어오르기도 한다. 그만큼 무모하고 강력한 존재가 인간이기도 하다.


인간이 초자연적인 능력이 나타날 때는 무의식 중에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식을 가지고 그런 능력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요컨대 물에 빠진 자신의 어린 자식을 구하러 물에 뛰어들어 구해 오는 엄마의 경우다. 엄마는 전혀 헤엄이라고는 칠 줄 모르지만 아이가 물에 빠지는 순간 무의식의 발현으로 이루어진다. 아이가 자동차에 치이려고 할 때 번개만큼 빠른 속도로 아이를 낚아채서 자동차에 부딪히는 걸 막는다. 이런 엄마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영상으로 많이 봤다.


무의식에서는 그럴 리 없는 것들이 가능하다. 의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가 우리 뇌에 동시에 존재하며 무의식은 아직 뇌과학자들도 몇십 년 동안 연구를 해도 뇌의 몇 퍼센트밖에 파헤치지 못했다. 인간의 무의식의 세계에서 초자연적인 능력이 자연발생 할 수 있다.


나는 이런 현상을 한 번 경험했다. 초자연적인 현상. 무의식에 가까워졌을 때 초자연적인 능력을 경험을 했었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집에서 보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무더운 날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에 집에 들어와 샤워 후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시간은 저녁 10시경이었다. 부모님은 외출을 하시고 나 혼자 집에 있었다.


시원하게 티브이를 보는데 정전이 되었다. 티브이도 꺼지고 돌아가던 냉장고도 멈추고 에어컨도 그대로 스톱되었다. 아파트 방송이 나왔다. 정전인데 방송은 어떻게 나올까. 전력수요가 과다해져서 이 일대가 몽땅 정전이 되었다고 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는 자체 발전기가 있으니 곧 전기가 들어올 것이다. 어떻든 전기가 들어오기 전까지 각자 알아서 있어야 했다. 정전이라는 것도 오랜만이다. 어린 시절에는 정전이 종종 되었던 것 같은데. 어린이들은 정전이 되어도 재미있었다. 모든 곳이 똑같아져 버리니까 아이들은 그 속에서도 재미를 찾았다.


나도 어두운 거실에서 벗어나고파서 분주하게 움직여 초를 찾아서 불을 밝혔다. 촛불은 촛불 그 밑으로는 어둡다. 촛불은 바람도 없는데 공기의 흐름 때문인지 하늘하늘 움직이며 타올랐다. 그런 촛불에 그만 매료가 되었다. 촛불을 자세하게 보기는 처음이었다. 매력적이었다. 촛불의 중간을 그대로 꼼작 않고 보고 있었다. 나는 촛불의 세계로 들어갔다.


김춘수 시인의 [어둠]이 있다. [촛불을 켜면 면경의 유리알, 의롱의 나전, 어린 거들의 눈망울과 입 언저리, 이런 것들이 하나씩 살아난다 차차 촉심이 서고 불에 제자리를 정하게 되면, 불빛은 방 안에 그득히 원을 그리며 윤곽을 선명히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이 윤곽 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있다 들여다보면 한바다의 수심과 같다. 고요하다. 너무 고요할 따름이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그해 겨울 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