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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an 27. 2024

초자연적인 현상 2

소설


2.


정전이 30분이 넘어가니 덥기 시작했다. 그러나 촛불의 세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세계 안에는 한바다의 깊은 심연이 들어 있다. 한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미 땀으로 등이 다 젖었다. 관자를 타고 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그러나 나는 미동 없이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보았다.


얼마동안 들리던 아파트 밑의 소음도 이젠 들리지 않았다. 아파트는 그야말로 적요한 상태였다. 아무리 고요해도 집 안에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는 늘 도사리고 있었다. 냉장고의 모터는 인간의 심장과 비슷하다. 한 번 태어나서 숨을 쉬기 시작하면 절대 멈추지 않는다. 냉장고가 멈추는 순간 냉장고 안의 음식들이 상하기 때문이다. 쉰 음식은 먹을 수 있지만 상한 음식은 먹으면 안 된다. 냉장고는 마치 인간의 심장 같은 역할을 한다. 냉장고가 멈추는 일은 없다. 그러나 정전은 그런 냉장고를 숨죽였다. 이토록 적요함 속에서 촛불의 세계는 더욱 확장했다. 발을 바닥에서 전혀 떼지 않았다. 쥐가 났지만 나는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옷은 땀으로 전부 젖었다.


촛불의 세계는 매혹적이며 위험하다. 그 세계에서 나는 날 수 있고 심지어는 파괴력을 지닌 능력자가 될 수도 있다. 촛불의 뒤 거실 벽에 파리가 한 마리 붙었다. 파리는 더위를 타지 않을 것이다. 파리는 더워 보이지 않았다. 파리는 이렇게 높은 아파트 안으로 어떻게 들어왔을까. 파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왔던지, 날개가 있으니 날아서 왔던지 어떻게든 사람이 살고 있는 높은 아파트 안으로 들어왔다. 벽에 붙은 파리는 집파리 치고는 컸다.


파리는 정전에 반응을 하는지, 촛불에 반응을 하는지 아니면 전혀 반응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벽에 붙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파리와 나는 마치 누가 누가 더 꼼짝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나,를 내기하는 것 같은 형국이 되었다. 파리와 나는 그대로 돌이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정적이 공간을 파고들었다. 공간의 모든 곳에 적막이 채워졌다. 소리가 멈추었다는 건 마치 시산이 정지한 것 같은 느낌이다. 시간이란 언제나 흐르고 있다. 멈추거나 잠시 정지하는 일도 없다. 그러나 소리가 소거된 공간에서는 시간마저 멈춰 버리는 착각이 든다. 파리의 모습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파리는 벽에 붙어서 다리를 비비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발바닥이 마치 거실바닥에 붙어 버리는 것 같았지만 꼼지락 거리지 않았다. 파리와 나의 다른 점이라면 나는 땀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땀이 흘러서 시간이 멈추지 않고 흐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촛불의 세계에서는 빛의 굴절이 없었다. 빛은 초를 타올라 형태를 유지했다. 아주 미약한 바람에도 촛불은 흔들린다. 촛불은 나에게 변하지 않는 굳건한 진실보다 불안하지만 흔들림이 많은 가능성을 믿어보라고 말했다. 나는 촛불을 통해 반대편 벽에 붙어 있는 파리를 보고 있었다. 파리와 나와의 거리는 고작 1미터 정도였다.


촛불을 통해 파리를 보는 동안 나는 땀을 많이 흘렸다. 정전으로 인해 그야말로 집 안은 찜통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파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나의 존재가 몸에서 분리되어 우주로 떠내려가는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미동 없이.


다리에 난 쥐는 발바닥까지 내려갔지만 나는 더 이상 감각을 느끼지 않았다. 몸을 30분 이상 미동 없이 가만히 꼼짝하지 않고 있으면 몸과 정신이 분리되는 착각이 든다. 마치 내가 돌이 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심장만 미약하게 뛰었다. 그러나 나의 모든 세포는 멈추었다. 나는 눈에 힘도 주지 않고 그렇다고 눈에 힘을 빼지도 않고 무념무상의 상태로 파리를 보았다.


그때 파리에 불이 붙으면서 밑으로 툭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냄장고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순간 너무 커서 나도 모르게 두 귀를 손으로 막았다. 파리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나의 무의식이 발현되어서 나는 직접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으켰다. 파리는 냄새까지 내며 깨끗하게 탔다. 나는 경이롭다는 기분보다 무서웠다. 하지만 그 뒤로 그런 능력이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시간이 지나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지만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제는 마음이 편해져서 나는 그때 경험한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서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비밀댓글로 누군가가 내가 경험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듣고 싶다며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지금 그 자리에 나와 있다. 그 사람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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