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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an 31. 2024

건물 속에서 1

소설



1.


이 정도로 고요할 수 있을까. 시내 한 중간에 있는 15층짜리 건물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주 조용하다. 건물은 눈썹, 네일, 휴대폰, 토스트, 카페가 있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잦다. 3층부터 꼭대기 까지는 사무실을 비롯해서 제빵 학원, 컴퓨터학원, 요가, 헬스 등 각종 학원과 클럽이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건물이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사람이 없다. 흐리고 가끔 빗방울이 내리는 스산한 겨울의 끝이다. 건물에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은 날인데 고요하고 적요하다.


로비에서 누굴 만나기로 했다. 로비에 앉아서 보는 저 밖으로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건물 안으로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다. 1, 2층의 점포는 일요일이라 문을 전부 닫았다. 예전에는 일요일은 더 장사를 했었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건물에는 주말에 학생들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들어올 만한 가게나 점포가 사라지고 나서인지 일요일에는 건물은 문을 열어 놓지만 건물 속 점포들은 쉬었다.


로비에는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노래가 너무 겨울에 어울리는 노래가 지금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앤디 윌리암스의 ‘잇츠 더 모스트 원더풀 타임 오브 더 이어’가 나오고 있었다. 2월인데 아직 로비 중간에는 트리가 있었다. 트리는 마치 어제 설치를 한 것처럼 깨끗했고 전구까지 반짝 반짝였다. 아직 약속 시간까지 한 시간이나 남았다. 좀 일찍 나왔다. 막상 일찍 도착하고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건물이라 사람들이 꽤 많이 다닐 줄 알았다.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벌써 도착했으니 좀 일찍 올 수 있으면 오라고. 하지만 답장은 없었다. 메시지를 읽지도 않았다. 나는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냥 기다리기도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 내려서 화장실로 갔다. 여자였는데 20대 같았는데 입은 옷이 20대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아파트에서 어르신들이 입는 겨울 파카를 입고 신발은 시장 표 삼디다스를 신고 있었다. 위에서 내려오는 거라면 학원에서 내려오는 건가? 하지만 3층부타 위로는 전부 일요일에 문을 닫았다. 4층에 굿즈샵이 있는데 거기에서 내려오는 걸까. 하지만 4층에도 화장실이 있다. 굳이 1층까지 내려와서 화장실에 가야 할까. 건물을 나가려는데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가려는 것일까.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계속 생각이 났다. 왜 저런 스타일의 옷을 입고 이 시내 중심가까지 나온 것일까.


하품이 나왔다. 하품을 하는데 몸속에 있는 산소가 확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기침이 한 번 나왔다. 그 한 번의 기침으로 몸속의 무엇인가가 확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앤디 윌리암스의 노래가 끝나고 머라이어 캐리의 캐럴 송이 나왔다. 오, 맙소사. 그러나 계속 듣고 있다 보니 역시 좋은 노래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가 끝나고 느닷없이 ‘여름아 부탁해’가 나왔다. 뭐야? 이 선곡의 기준은? 역시 지금과 어울리지 않는 노래지만 듣다 보니 또 좋았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화장실에 들어간 여자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벌써 나와도 나와야 할 텐데. 노래가 몇 곡이나 지났지만 여자는 나오지 않고 있다. 여자들은 화장실에 오래 있지?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손을 씻고 코를 풀고 나왔다. 3분 정도? 그 정도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로비에 나와서 앉았다. 휴대폰의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았다. 전화도 안 되고. 할 수 없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흐린 날이다. 계속 날이 흐리다. 우중충하고 권태로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전기절약 때문인지 건물의 조도도 낮아서 기기괴괴했다.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노래까지. 계단의 불은 전부 꺼져 있었다.


[불 좀 켜줘!]라고 계단에서 소리가 들렸다. 이건 무슨 소리일까. 계단으로 나가는 문을 여니 지하에서 누군가 올라오고 있었다. 어떤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계단이 어두우니 불을 좀 켜달라고 했다. 나는 계단의 스위치를 찾아서 불을 켰다. 빠드드드득 하면서 형광등에 불이 들어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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