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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01. 2024

건물 속에서 2

소설


2.


왜 할머니가 지하에서 올라올까? 할머니는 힘겹게 올라오면서 지하주차장에는 화장실이 없다면서 1층으로 올라와서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는 할머니를 부축해서 계단을 오르고 화장실까지 안내를 했다. 할머니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화장실에 급히 쏙 들어갔다. 인간은 왜 생리작용을 해야 할까.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어도 대변이 나오려고 하고 소변이 마려우면 생리작용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사랑하는 이가 죽어서 힘들지만 배는 또 고프다. 먹었으니 대변은 나오려고 한다. 소변도 놔야 한다. 며칠은 씻지 않을 수 있지만 일주일 넘게 씻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씻어야만 한다. 운전을 하는데 대변 소식이 올라오면 운전이 정말 힘겹다. 조금만 참아야지, 참고 가서 늘 사용하는 화장실에서 해결해야지 하면서 좀 더 버티지만 극에 달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자주 생각한다. 왜 인간은 똥오줌을 눠야 할까. 왜 인간은 그렇게 존재할까. 누군가 생물학자가 느런 쪽으로 연구를 한다면.


 느닷없이 화재비상벨이 울렸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이게 무슨 일이지? 문 밖으로 나가려는데 벨이 꺼졌다. 오작동인가? 아니면 위층에 불이 났나? 사실 고층건물에 비상벨이 울려도 사람들은 훈련을 받지 않아서 재빠르게 행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훈련받은 인간이다. 문밖으로 나가려는데 딱 벨이 꺼졌다. 만약 위에서 불이 난 거라면? 그렇다면 화장실에 들어간 20대 여자와 할머니는? 도대체 여자는 화장실에서 왜 그렇게 오랫동안 있을까. 내가 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때 나갔을까? 20대 여자는 그럴 수 있지만 할머니는?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벨이 오작동이 났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여자화장실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할머니를 불렀다. 그랬더니 그 안에서 시끄럽다고 했다. 나에게 시끄럽다고 좀 조용히 하라고 하는 할머니에게 여자는요?라고 또 물었다. 하지만 대꾸도 하지 않았다. 로비에 다시 와서 앉았다.


로비에 앉아 있는데 저쪽 천장에 뭔가가 붙어 있었다. 붙어있는 무언가는 움직이는 것 같았다. 종이가 붙었나? 나는 그쪽으로 가보았다. 천천히, 움직이는 걸 보면서 그쪽으로 다가갔다. 다가가니 움직이는 그것이 천장에서 떨어져서 내 쪽으로 왔다. 어어, 나는 놀라서 뒤로 몇 걸음 물러났는데 그건 나비였다. 나비가 천장에 붙어 있다가 떨어진 것이다. 나비의 날개는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나비는 생각하는 나비보다 훨씬 컸다. 나비는 나의 머리 위에서 뱅뱅 돌며 날아다녔다. 마치 헤일로처럼.


나비는 너무나 신비로웠다. 저 나비를 따라가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비를 따라가면 그녀가 있는 곳에도 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녀에게 받은 마지막 편지를 가지고 있다. 편지를 주머니에 넣어 다니면서 읽다 보니 테이프로 찢어진 부분을 바르고 또 발랐다. 그녀는 마지막 편지에 지금 감기가 걸려 나갈 수 없지만 이번 주말에는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비야 나 그녀가 보고 싶어, 그녀가 있는 곳에 데려다 줄래? 이곳은 사실 재미도 없고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인간관계 때문에 매일매일 힘들다. 그녀가 있는 곳에 가면 그녀가 곁에 있어서 아무리 힘들어도 어떻게든 견딜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나는 읊조리듯 말했다. 하지만 나비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머리 위에서 원을 그리며 날아다녔다.


나비는 방향성을 무시하고 날아다니는 게 매력인데 저 나비는, 까지 생각하다가 도대체 지금 계절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게 정상적인 상황일까. 나비는 보통 늦은 봄에 나타나서 가을에 전부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나비가 2월에 나타나서 날아다니는 게 올바른 일일까. 하지만 옳고 그르고를 따지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았다. 옳고 그름이 올바르게 선고되고 있을까. 아니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판결이 이뤄지고 있다. 겨울에 모기도 날아다니는데 나비가 날아다닌다 한들 이상한 일도 아니다. 건물 안이니까 나비가 날아다닐 수도 있다. 나비는 난생처음 보는 아름다운 나비였다. 너는 아름다운 나비라고 나는 노래도 불러봤다.


내가 노래를 부르니 로비에 흘러나오던 노래가 꺼졌다. 일순 내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크게 들려서 놀랐다. 나는 입을 다물고 조용하게 있었다. 그때 나의 동작도 그대로 멈춰라,였다. 가만히 있었다. 건물은 마치 그래, 어디 한 번 불러봐.라고 하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온다는 사람은 왜 아직 안 나타는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일찍 온 것이다. 왜 굳이 이 건물 로비에서 만나자고 했을까. 건물도 마치 숨을 죽이고 조용히 나의 반응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는 얼음 땡 하는 것처럼 어정쩡한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1분 정도 있었을까. 로비에 달린 스피커로 노래가 나왔다.


킴 와일드의 노래가 난데없이 나왔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노래다. 이 노래 정말 신나는 노래다. 킴 와일드가 가장 섹시할 때다. 초기 수수하고 와일드한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킴 와일드의 섹시함이 마구 뿜어 나오는 노래다. 그녀의 노래와 춤은 전 세계로 암처럼 번져 나가서 모든 나라의 밤 문화에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 노래를 부를 때 그녀의 몸은 그야말로 섹시섹시였다. 인간이 내뿜을 수 있는 섹시함을 다 발산한다. 머리를 휘어잡을 때 퇴폐미, 어깨를 살짝 튕길 때 큐티 섹시와 자유분방의 섹시 그 속에 절제된 섹시까지 온통 섹시덩어리다. 춤사위가 마구 뻗어 나갈 것 같지만 확실한 절제가 있다. 킴 와일드의 콜라병 몸매와 완성된 얼굴은 여러 나라에서 따라 했다. 아무튼 초기에는 데이빗 보위를 닮은 듯한 생 날것의 여성이었다. 초기 히트곡 ‘키드 인 아메리카’도 노래가 좋아서 이역만리 떨어진 우리나라의 혜은이도 번안해서 부르기도 했다. 혜은이의 얼굴도 초기에는 너무 소녀여서 요즘 리틀 혜은이라 불리는 요요미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혜은이가 킴 와일드의 노래를 번안해서 ‘질투’라는 제목으로 불렀다. 그때는 표정이니, 허락받고 가져오고 하는 개념이 없어서 그냥 막 갖다 쓰면 되는 그런 시기였다. 킴 와일드의 영상을 찾아보고 싶은데 와이파이, 데이터도 터지지 않았다. 하지만 음악만 들어도 킴 와일드의 모습이 눈에 확 그려지는 게 신났다. 금발의 머리를 꽉 잡았다가 몸에 달라붙은 옷 위로 가슴이 흔들리는 모습과 힐과 검은 스타킹 그리고 짧은 치마는 춤을 추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노래에 고개를 까닥거리고 있었다.


로비의 중간에 시커먼 잠자리 눈처럼 달린 저건 카메라일 것이다. 카메라로 나의 모든 동작이 녹화되고 있다. 나는 까닥거리던 고개도 가만히 있었다. 나의 이런 어리숙한 동작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그런데 화장실에 들어간 할머니가 나오지 않았다. 최초에 들어간 20대 여자도 나오지 않았다. 어째서 모두들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는 것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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