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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02. 2024

건물 속에서 3

소설


3.


그때 문이 닫혀 있던 저 안쪽의 점포에서 누군가 나와서 로비에 쓰레기 더미를 버렸다. 왜 쓰레기를 여기에 버릴까. 쓰레기는 음식 쓰레기 같은데. 나는 로비에 버리는 그 사람에게로 가서 뭐라고 한 마디 하려고 했다. 음식 냄새가 나는데 밖에다 버리는 게 옳은 일이지요.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여기서도 올바른 일이 또 나왔다. 나는 옳고 그름에 대해서 부정하면서도 자꾸 틀에 짜 놓은 것에 맞춰가려고 했다. 에이 썅, 이런 말이나 해서 뭐 하나. 그러나 음식 찌꺼기 냄새가 자꾸 났다. 그 사람은 뒤로 돌아서 쓰레기를 로비의 한 구석에 놓고 있었다. 냄새만 나지 않게 해 달라고 다가가니 내쪽으로 몸을 돌렸다.


킴 와일드였다. 아니 킴 와일드를 닮은 여자였다. 눈매며 입수이며 머리가 검은 색인 것만 빼면 킴 와일드와 너무나 흡사했다. 이렇게 섹시한 얼굴이라니. 그 여자는 [여기 타로 카드 가게에서 일하고 있어요. 오늘은 쉬는 날인데 안에 정리하려고 나왔어요. 쓰레기는 잠시 둘게요. 지금 화장실이 급해서요. 우리 가게에 타로 한 번 보러 오세요]라며 웃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웃는 모습은 완벽한 킴 와일드였다. 나는 얼떨결에 네,라고 대답을 했다. 연예인을 보다니. 아니 연예인과 똑같은 사람을 보다니. 그게 더 신기했다. 타로는 본 적이 없지만 이참에 나도 타로 점이나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신을 믿고 점을 많이 본다고 하지만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사람들은 수퍼스티션에 겁을 먹기도 한다. 재채기를 하면 영혼이 빠져나간다고 믿기 때문에 옆에서 [갓블레스 유]라든가 [블레스 유]라고 말해준다. 교외 주택단지에서 사다리가 세워져 있으면 그 사이로는 절대 지나가지 않는다. 그 외 미신을 많이 믿는다. 뭐 옆 나라 일본도 마찬가지다. 이 건물의 타로 점 가게에는 학생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학생들은 타로 보는 것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부모와 선생님에게 말 못 할 고민은 친구에게 하지만 친구에게도 말 못 할 고민은 타로에게 기댄다. 남학생들보다 주로 여학생들이 타로 점을 본다. 그들은 추위에도 더위에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미신이 사실이라면 나는 이 현실의 세계 그 너머의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지 알고 싶다. 의도적으로 그 세계에 발을 들이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세계에는 어떤 메커니즘으로 흘러가는지, 하루의 개념이 여기 세계의 하루와 다른지 알고 싶다. 나는 그 세계에 가고 싶으니까.


킴 와일드의 노래가 끝이 났다. 한 번 더 나왔으면 좋겠다. 노래가 끝나는 순간 머리에 맴도는 킴 와일드의 모습 역시 사라졌다. 어떻게 생겼더라? 할 정도로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을 해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상하다.


요즘은 불안해서 그런지 매일 꿈을 꾼다. 꿈을 꾼다는 건 불안하다는 의미다. 어제는 꿈에 여러 나라 사람들이 나왔다. 전부 동남아시아 쪽 사람들이었다. 실컷 영어를 섞어서 더듬더듬 말을 하니 그 사람이 한국말로 이렇게 해 달라고 했다. 나는 꿈이지만 화가 났다. 내가 애써 세팅해 놓은 가판대가 전부 바뀌어 있었고 여기에 앉아야 하는데 저기에 앉아 있고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꿈속이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면 앞에는 강이 흐르고 있고 강에 떨어지면 죽을지도 모른다. 꿈이지만 너무했다. 인도 여자도 나와서 한국말로 나에게 이렇게 해 달라고 했다. 그런 꿈을 계속 꾼다. 나는 불안하면 꿈을 꾼다.


이상하다. 킴 와일드를 닮은 여자도, 할머니도, 20대 여자도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이 상황이 내가 꾸는 꿈속 같다. 여자 화장실 앞으로 가서 문을 또 두드리려고 해도 로비에 달린 저 시커먼 카메라가 보고 있다. 변태로 오해받을 수 있다. 더 이상 노래는 나오지 않았다. 고요했다. 저 문 밖으로도 사람들이 드문두문 다녔다. 날은 너무나 흐려서 아주 어두웠다. 전기 절약으로 건물 안도 조도가 낮아서 어두컴컴한 축에 속했다.


약속 시간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 만나면 뭘 좀 먹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남자 둘이 어딘가 분위기를 따지는 곳으로 가는 건 뭔가 이상하다. 그렇다고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먹고 싶지는 않았다. 요즘은 뭘 먹으며 지내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도대체 나는 밥을 먹으며 지내고 있기는 한 걸까. 그녀가 마지막 편지를 두고 떠난 지 일 년이 좀 지났다. 지금은 그녀가 없다는 사실을 좀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저 덤덤했다. 감정의 요동이 오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도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이나 사람들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 슬프면 눈물이 나와야 하는데 나는 분명 슬픈데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럴 수 있냐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말에도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잘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슬펐다. 단지 상황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나와 그녀는 사이가 좋았다. 우리는 만났다가 헤어지면 곧바로 만나기를 바랐고 만나면 붙어 있었다. [왜]라든가 [어째서] 같은 말은 중간에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같이 있으면 좋았다. 그녀는 자주 잔기침을 했다. 그게 그녀를 그렇게 어두운 곳으로 데리고 갈지는 몰랐다. 그녀가 떠나가고 난 후 그다음 날부터는 하루가 지날수록 나는 내부의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균열을 틈 타 불안과 결락이 파고들었다. 나는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만나서 하는 이야기는 전부 말 안 되거나, 말을 해도 안 되는 이야기들뿐이었다. 나는 그 지역을 떠났다. 그리고 연락처도 바꾸고 연락도 하지 않았다.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친구라는 게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그렇게 필요한 존재는 아니었다. 나 역시 친구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약속한 사람은 오늘 얼굴은 처음 보는 사람이다. 나는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렸는데 지역 신문사에서 블로그 글을 보고 연락을 해 왔다. 꾸준하게 일 년 동안 댓글을 달고 대댓글을 보내고 하다가 그는 나의 글을 신문사 홈페이지 칼럼에 싣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 사람과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나의 신변이나 어디 사는지, 출신 학교 같은 건 일절 묻지 않았다. 그저 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그는 자신을 이 지역 토박이로 고등학교까지 이 지역에서 나오고 대학교는 서울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고향으로 와서 지방 신문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거기서 만난 여자와 결혼을 했고 지금은 아들이 한 명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소개했지만 나에게 대해서 묻지 않았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으면 이야기를 듣는다,라는 주의였다.


그는 내가 쓰는 글을 좋아했다. 왜냐고 물었다. 꼭 자신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 답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 어떻든 일 년 만에 실제로 만나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이 건물의 로비에서 만나자고 했다. 처음에는 북적북적한 시내라서 나는 나가기 싫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이 건물은 일요일에는 사람이 빠져나가서 아마 고요할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믿지 않았는데 실제로 와 보니 고요보다는 적요하고 적막했다.


나는 비관주의자는 아니나 매일 맞이하는 내일이 썩 반갑지 않았다. 사실 내가 정녕 바라는 건 오늘 밤에 눈 감고 잠 들어서 그대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고요하고 떠들썩하지 않게 그대로 잠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경찰들이 나의 집과 나의 몸을 헤집어 놓을 것이다. 옷을 몽땅 벗겨 무엇 때문인가 하며 여기저기 찔러보고 벌려보고 할 것이다. 오규원 시인의 죽고 난 뒤의 팬티가 떠올랐다. 죽고 난 뒤의 팬티 따위를 걱정해서 뭐 할까 싶지만 더럽거나 추잡하면 그것대로 별로다. 그래서 집에 아직 뜯지 않은 새 팬티가 열 벌이나 있다. 잠들 때 깨끗하게 빨아 놓은 팬티를 입고 잔다. 이 세상이 힘든 것보다 내가 힘든 것이다. 나는 이런 글을 블로그에 썼다. 몇 편이나 섰다. 나의 글은 지방 신문사의 칼럼을 통해 사람들에게 퍼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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