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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03. 2024

건물 속에서 4

소설


4.


몇 명이 건물 안으로 들어와서 옷을 털었다. 비가 오나? 하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 들어온 사람들이 욕을 하며 비가 와서 어쩌지? 왜 하필 지금이야? 같은 말들을 했다.


[저기 밖에 비가 오지 않는데요?]라고 내가 말했다. 그러자 그들이 나에게 욕을 마구 퍼부었다. 이렇게 젖은 우리는 뭐냐면서. 지금 하늘에서 내리는 저건 뭐냐면서. 그렇지만 내가 아무리 봐도 밖에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잔뜩 흐리고 거뭇거뭇해서 곧 비가 떨어질 것 같지만 비가 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러 명이서 몰아세우니까 나는 자리로 돌아와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여러 명이 건물에 들어와서 떠드니 건물에 생명력이 느껴졌다. 그들은 문 앞에 서서 밖을 보며 계속 떠들었는데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뭔가 이상했다. 어제 고기회식을 해서 맛있게 먹은 이야기를 하는데 회식한 고기가 고양이 고기라는 것이다. 저 사람들 뭔가 이상하다. 사장님이 고양이 쓸개 주를 만들어서 줬다는 이야기를 마구 했다. 저 사람들이 건물 입구에서 하는 말들이 겉도는 게 이상하고 또 이상했다.


사람들은 남녀들로 30대 직장인들 같았다. 하지만 곁눈질로 보면 볼수록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꼭 80년대 서울의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스타일 같았다. 그들은 총 5명인데 한 명 정도는 휴대전화를 사용할 법도 한데 휴대폰을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폰을 약간 세우면 화면이 들어온다. 하지만 들어오지 않았다. 버튼을 눌렀다.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버튼을 꾹 눌렀다. 충전을 하라는 표시가 떴다. 이런 젠장, 분명 방금 전에 휴대폰을 봤을 때에는 배터리가 90% 정도 있었다. 이 건물에는 배터리를 방전시키는 어떤 전류가 흐르는 것일까. 콘센트도 보이지 않고 중요한 건 충전기로 없다.


떠들던 남녀들은 옷을 다 털었는지 [그럼 우리 이제 갈까]라고 하더니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위에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르르 가는 것일까. 위에는 대부분 쉬는 날이고 학원들이 가득할 뿐이다. 학원생들인가? 일요일에도, 까지 생각했지만 아니다. 뭔가 이상하다. 위에 몇 층에 내릴까.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숫자가 멈추는 걸 보려고 서 있었다. 그때 화장실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 할머니, 킴 와일드, 20대 여성? 나는 화장실이 있는 곳으로 왔다. 그런데 남자 화장실의 문이 열리고 남자가 나왔다.


뭐지? 도대체 이 상황은?


남자는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절모를 쓴 신사였다. 그는 나에게 [당분간은 화장실에는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했다. [왜 그러시죠?] 나는 물었다.


[화장실에 고약한 것이 있소. 아마 들어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오] 그는 젖은 손을 손수건을 꺼내 닦더니 계단으로 내려가는 문으로 나갔다. 다리가 빠른 것 같은데 또 움직이지 않고 가는 것 같기도 했다. 생각하느라 노신사가 나가는 모습을 정확하게 보지 못했다. 화장실에 고약한 것이 있다고? 무슨 화장실에 그런 것이?라는 생각에 문을 열려고 했는데 화장실 안에서 크악크악 하는 괴물이 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놀라서 손잡이를 꽉 잡고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안 될 거 같았다. 정말 화장실 안에 뭔가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그 뭔가가 궁금했다. 소리를 들어보니 괴물의 소리다. 크아아악 하며 포효하는 소리다. 으르렁 크아아악 하는 소리가 화장실 문틈으로 마구 새어 나왔다. 나는 보고 싶었다. 저 괴물이 어떤 모습인지. 하지만 겁이 났다. 노신사의 말대로 들어가면 안 될 것 같다. 그러나 보고 싶다. 나는 그동안 겁이 나는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이 망설였나.


그녀가 편지를 보내기 전에 내가 만나러 갈 수도 있었다. 그때 그녀가 너무 보고 싶었다.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 남았지만 그녀가 보고 싶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럴 때는 보러 가면 된다. 하지만 약속한 날에 만나려는 마음이 가로막았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 수는 없잖아. 이런 바보 같은 생각에 망설이다 그녀를 결국 영영 보지 못하게 되었다.


평소에도 그렇다. 겁이 나서 뭔가를 하려는 것도 그냥 뒤로 돌아서고 말았다. 그런 것 따위 그저 해버려도 후회니 어쩌니 할 것 없이 그냥 그대로 넘어갔을 텐데. 불안해서 그런 꿈을 꾸는 것도 이런 나의 미운 성질 때문이다. 하루라도 불안하지 않은 날이 없다. 불안하지 않을 때에는 왜 불안하지 않지? 하며 더 불안하다. 그러면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심박수가 올라간다. 나는 그렇게 태어난 놈인 것이다. 이런 내가 싫다고 느껴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좋다고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은 사랑해야 하는 존재라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화장실 안에는 위험한 무엇인가가 있다. 괴물에게 먹히거나 찔리거나 하면 나는 죽을지도 모른다. 다리가 잘려 그곳에서 피가 분수처럼 나올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하지만 나는 괴물이 궁금했다. 이런 엄청난 호기심은 처음이다. 나는 화장실 문을 확 열었다. 화장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무]였다.


화장실은 불이 꺼져 있어서 깜깜했다. 나는 화장실의 불을 켰다. 지지직 하더니 형광등에 불이 들어왔다. 화장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괴물도, 어떤 누구도 없었다. 화장실 안은 건물의 로비보다 백 배는 고요했다. 마치 심해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소변을 봤다. 졸졸졸 오줌이 나오는 소리가 정적을 깼고 물을 내리자 콰르르르 하며 소변기의 물이 내려갔다. 화장실은 깨끗했다. 화장실 거울도 깨끗했다. 물이 튄 흔적이나 물방울 자국도 없었다. 변기도 깨끗했고 바닥이나 천장도 너무나 깨끗했다.


그게 문제였다. 화장실은 생각이상으로 깨끗했다. 마치 인간의 흔적이 없는 것 같았다. 청결해도 이렇게까지 청결할 필요가 없다. 문제가 없는 게 문제다. 사람도 그렇다. 품격이라는 건 그 사람의 약점에서 나온다. 약점이 없는 사람은 품격이란 게 있을 수 없다. 미질만이 가득한 사람은 결국 미질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거나 없어지게 된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심심찮게 봤다. 포장으로 가득한 사람. 이 화장실이 그런 사람과 닮았다.


화장실의 센서는 AI다. 프로그램으로 입력된 단어는 청결이다. AI는 안드로이드를 만들어 화장실 청결에 힘썼다. 하지만 사람들은 화장실을 더럽히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고 느낀 안드로이드는 이런저런 방법으로 화장실을 청소해도 AI에게 입력된 청결은 할 수 없어서 화장실을 더럽히는 요소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아까 나간 노신사는 어쩌면 안드로이드가 아닐까. 그렇다면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 여자들은 전부 제거된 것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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