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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04. 2024

건물 속에서 5

소설


5.


나는 순간 여자 화장실로 가서 문을 열었다. [빨리 나오세요, 할머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자 화장실에도 아무도 없었다. 화장실 안은 남자 화장실처럼 아주 깨끗했고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나는 숨이 가빴다. 화장실은 화장실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단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화장실에는 애초에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다. 화장실은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하지 않는 인간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그것이 아니라면 화장실은 화장실을 더럽히는 인간들을 제거해 버렸다. 화장실은 화장실에 들어온 사람들을 먹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어떤 말을 믿어야 할까. 화장실은 완벽했다. 이 완벽함 때문에 불완전했다. 너무나 깨끗해서 완벽한 화장실은 나까지 먹으려 들었다. 여기서 벗어나자. 문을 열었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나는 여자 화장실에 갇히고 말았다. 완벽한 화장실에 말이다. 손잡이를 아무리 돌려도 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여자 화장실이라 당연하지만 소변기는 없다. 대신 파우더 룸이 있었다. 그래봐야 거울이 남자 화장실보다 좀 더 길고 드라이기가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사용하면 화장실은 더러워지니까 화장실은 그게 싫은 것이다.


거울을 봤다. 거울에 비치는 건 나의 얼굴이 아니라 어떤 여자의 얼굴이었다. 미소를 짓고 있는데 섬뜩한 미소였다. 눈은 웃지 않고 있는데 눈꼬리가 위로 올라가 있었다. 사람 얼굴인데 사람 같지 않은 얼굴이었다. 미소를 짓고 있지만 그건 미소라도 할 수 없는 미소였다. 중요한 건 거울에 나의 얼굴이 비치는 것이 아니라 여자의 얼굴이 보인다는 것이다. 저 무서운 얼굴이 나의 본모습일까. 여자의 얼굴은 보면 볼수록 무서웠다. 꼭 어떤 위험한 사건을 일으키기 직전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런 얼굴을 하고 러시아 포로의 살가죽을 벗겨내는 고문관이 떠올랐다. 오래전 39년에 일어난 노몬한 전투에서 몽골군인과 소련군인 포로의 살가죽을 벗진 일본 고문관의 얼굴 말이다. 말라서 광대뼈가 두드러졌지만 잘 먹었는지 그 환경에서도 피부는 좋았다. 말랐지만 운동을 해서 근육은 잘 자리 잡았다. 그래야 살가죽을 벗기는데 용이하기 때문이다. 일본 고문관은 포로가 살가죽을 벗기는데 견디면 견딜수록 더 좋아했다. 더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으니까.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겨내 햇빛에 노출시키면 피부가 태양 빛에 타들어간다. 그릭 날아다니는 새들이 와서 피부를 벗겨낸 야들야들한 살가죽을 파먹는다. 그리고 팔뚝의 살가죽을 벗겨내고 허벅지의 살가죽을 벗겨낸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목숨이 붙어 있어도 겨우 숨을 내 쉰다. 숨 냄새 역시 고약해서 땅 속의 벌레들이 그 냄새를 맡고 기어 올라와 살 속으로 파고든다. 꾸물꾸물 다니며 피와 내장 기관을 파먹는다.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이다. 고문을 하는 내내 고문관은 그런 미소를 짓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패전하고 만다.


나는 머리를 감쌌다. 그러자 거울 속의 무서운 여자도 머리를 감쌌다. 화장실 안은 점점 추워졌다. 추위가 강력하게 화장실 안을 덮쳤다. 추우면 화장실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더러운 냄새는 더울수록 난다. 화장실은 그걸 알고 있는 것일까. 이것 역시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일까. 2월의 추위라고는 할 수 없는, 대한민국에서 만날 수 없는 추위다. 나는 오들오들 떨다가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나왔다. 추위가 몸을 덮치자 나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인간은 어차피 한 번은 죽으니까 죽음에 대해서 자주 생각을 했다.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해서. 무의 세계라도 어떠리. 죽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무의 세계면 어떠리. 그러나 이렇게 죽음으로 가는 이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럽다. 잠이 들었다가 깨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죽음으로의 길이라면 이렇게 추위에 목숨을 잃어가는 것은 너무나 힘겹다. 점점 가늘어져 간다. 모든 것이 작게 보이고 좁아졌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때 문이 열렸다. [이봐요? 괜찮아요?]라고 누가 나를 흔들었다. 나는 눈을 떠서 그 사람을 보았다. 킴 와일드?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요? 여기 화장실은 위험해요. 이 안에는 위험한 것이 있어요. 어서 나가요]라며 나를 부축했다. 낯설지 않은 향이 났다. [향수는 뭐 쓰죠?] 이런 상황에서 나는 왜 이런 말이 나올까. [타로 가게 안에 좋은 냄새가 번져야 하거든요]라고 킴 와일드가 말했다.


[저기, 화장실에 무엇이 있나요? 그리고 이 건물은 뭐죠?]라고 나는 물었다. 킴 와일드는 나를 로비의 소파에 앉게 했다. 로비는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그걸 말하라고 하면 잘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늘 하고 싶은 말은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여긴 인간의 마음과 흡사해요. 당신의 마음이기도 하고, 저의 마음이기도 하고요]라고 킴 와일드가 말했다.

 

[인간의 마음?] 그렇게 나는 따라서 말을 했다. 킴 와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의 마음에 들어오는 건 쉬워도 나가는 건 힘들지도 몰라요. 마음이라는 게 변덕이 심해서 시시때때로 바뀌거든요. 들어왔던 문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으로 다시 들어가야 나갈 수 있기도 해요. 정답이 없어요. 이 건물은 답이라는 게 없는 건물이에요. 엘리베이터를 타면 내가 가고자 하는 층으로 가지 않고 올라가다 다른 층으로 가버려요. 거기서 내리면 자신이 떠올리기 싫은 기억 속으로 갈지도 몰아요]라고 킴 와일드가 말했다.


내가 떠올리기 싫은 기억? 떠올리기 싫은 기억은 떠올리지 않기 때문에 그 기억은 기억 속에 없지 않을까.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당신은 정말 살아있는 존재가 맞나요?] 나는 킴 와일드에게 물었다. 그녀의 얼굴을 자세하게 보니 킴 와일드를 닮은 얼굴이었는데 정말 킴 와일드의 얼굴처럼 보였다. 킴 와일드는 아직 살아있지만 나이가 무척 많다. 그러나 내 앞에 있는 킴 와일드는 전성기 때의 그 섹시한 킴 와일드였다. 내 물음에 킴 와일드는 묘한 웃음을 보이고 [화장실에는 위험한 것이 있으니 되도록 이면 들어가지 마세요]라며 복도에 있는 타로 가게로 들어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꽤 오래된 것 같았다.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 아닌데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시간을 알 수 없으니 나는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약속이라는 게, 지키기 위해서 있는 거라면 깨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 또한 약속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렇게 약속 시간이 지났? 정말 지났을까. 시계가 없으니 시간에 대한 개념이 무너졌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저 나의 생각일 뿐이다. 그냥 가기로 했다. 집으로 가서 충전을 한 다음 그에게 메시지를 넣자. 이런 이런 일이 있었노라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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