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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05. 2024

건물 속에서 6

소설


6.


일어나서 정문으로 가니 오 맙소사. 폭설로 인해 정문 앞에 눈이 1미터 50센티미터는 쌓여 있었다. 거리에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제설차가 다니고 있었고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폭설로 모든 교통편이 멈추었고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집으로 갈 수 있을 거야. 나는 유리로 된 정문을 밀었다. 하지만 눈이 쌓일 대로 쌓여 밀리지 않았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여기 사람이 있어요! 집에 가야 합니다! 꺼내 주세요!] 나는 큰 소리로 살려 달라고 했다.


하지만 제설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제설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쉬지 않고 같은 동작을 칼 같이 반복하고 있었다. 자세하게 보니 사람 같이 보였는데 안드로이드였다. 뉴스에서 이렇게 폭설 속에서 작업하는 로봇을 발명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로비의 스피커에서 다시 노래가 나왔다. 나미와 머슴아들의 '행복'이었다. 나미가 솔로로 노래를 부르기 전에 외국인들과 함께 밴드를 결성해서 노래를 불렀다. 신나고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폭설에 건물에 갇혔는데 이렇게 신나는 노래가 나오다니.


띠링하는 소리가 나더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 시끄러운 남녀들이었다. 나는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그들은 여전히 떠들면서 나를 봤다. 1층에 내리지 않고 그들은 다시 올라갔다. [맞아, 우리 잊은 거 있지?] 라며. 그리고 깔깔깔 하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나는 다시 그들이 몇 층에 정지하는지 지켜보았다. 6, 7, 8.

그래그래 몇 층에 내리는지 보자.


그때 계단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고 한 소녀가 들어왔다. 소녀는 얇은 옷을 입고 있었고 무척 추워 보였다. 소녀를 보느라 엘리베이터 숫자를 보지 못했다. 다시 보니 숫자판이 꺼져 있었다. 이런 제길, 몇 층에 내리면 그 충의 숫자가 나타나야 하지만 이 엘리베이터는 숫자판이 꺼졌다. 전기절약인가. 그래도 로비가 춥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나는 떨고 있는 소녀에게로 갔다. 소녀는 대략 11살 정도였다. [부모님과 쇼핑을 하다가 폭설에 부모님과 떨어졌어요]라며 곧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어깨를 잡으니 추위가 손바닥으로 이전되었다. 나는 외투를 벗어서 소녀의 몸을 덮었다. 소녀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소녀는 꿈이 많았다. 소녀는 초콜릿을 좋아하는데 부모님이 설탕이 많이 들어가서 자주 먹지 못하게 했다. [우리 집안사람들은 유전적으로 설탕을 분해하지 못하는 몸이래요]라고 소녀가 말했다. 매일매일 초콜릿을 먹고 싶은데 부모님 때문에 그럴 수 없어서 설탕이 들어가지 않지만 단 맛이 나는 초콜릿을 만들고 싶어 했다. 소녀의 꿈이 소박하면서도 거대해 보였다. 소녀는 초콜릿 이야기를 하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이었다.


소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 애가 떠올랐다. 명희. 명희는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아주 자존심이 강한 여자애였다. 명희는 내가 쓰는 샤프를 쓰고 싶어 했다. 샤프는 용돈을 모아 모아서 구입했다. 나는 그 샤프를 정말 쓰고 싶었다. 손 잡는 부분에 스쿠류바처럼 베베 꼬여 있어서 쥐면 편안한 샤프였다. 명희는 샤프가 많아서 아버지가 샤프를 더 이상 사주지 않았다. 샤프는 한 자루만 있으면 되는데 명희는 샤프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나는 나의 샤프를 빌려주기 싫었지만 대신 명희는 고급 초콜릿을 나에게 주었다. 그 맛은 뭐든 다 주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아빠가 유럽에 갔다 오면서 사 온 초콜릿이야. 이게 귀한 거란 말이야. 너 한 조각 줄게. 나 샤프 좀 쓰게 해 줘] 그렇게 명희에게 수업시간 내내 나의 샤프를 빌려 주고 하루에 한 조각씩 초콜릿을 먹었다. 단맛인데 달지 않은 맛. 슈퍼에서 파는 그런 초콜릿이 아닌 맛이었다. 월리 웡카가 있다면 이런 초콜릿을 만들었겠지.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어서 만난 명희는 너무나 살이 찐 모습이었다. 나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먼저 와서 나를 아는 체 하기에 보니 명희라고 했다.



[그러려면 이 건물을 한 시라도 빨리 나가야 하겠구나] 나는 소녀에게 말했다. 소녀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배가 고프다고 나에게 말을 한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킴 와일드! 나는 소녀와 함께 타로 카드 집 앞으로 와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역시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구멍으로 안을 보니 썰렁했고 싸늘한 주검처럼 냉랭한 기운만이 가득했다. 아무도 없었다.


[어떡하지? 먹을 게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소녀에게 말했다.


[위에 닭갈비 타운이 있어요. 아까 불이 켜진 걸 봤어요]라고 소녀가 말했다. 일요일에는 전부 쉬는 날인데 불이 켜진 건 소녀의 착각이 아닐까. 그래도 올라가 보자. 우리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작동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눌러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고 엘리베이터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건물의 엘리베이터는 총 세 대다. 두 대는 붙어 있고 한 대는 옆에 전망대처럼 보이게 통유리로 된 엘리베이터로 되어 있었다. 세 대가 전부 먹통이었다. 우리는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나는 소녀의 손을 잡고 계단으로 나왔다. 계단일 뿐인데 로비와 너무나 달랐다. 계단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계단의 통로에 불이 전부 꺼져 있어서 인텔리전트 빌딩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역시 계단의 한 편에 붙어 있는 스위치를 눌러도 계단의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전기절약을 너무 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걸어 올라갔다. 소녀는 힘들 법도 한데 지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소녀가 이야기를 할수록 명희와 있었던 일들이 자꾸 떠올랐다.



명희는 10살 때까지, 3학년까지 같은 반을 하다가 11살에 반이 갈라졌다. 명희는 반이 갈라져서 울었다. [섭섭해서 그러는 줄 알았지, 반이 갈라졌다고. 하지만 고작 옆 반에다가, 점심시간에 같이 도시락을 먹을 수 있어]


명희는 자신의 엄마도 그렇게 조금씩 멀어지다가 영영 멀어지게 된다며 많이 울었다. 처음에는 늘 미미하게 시작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게 동력을 받으면 크고 걷잡을 수 없게 된다고 했다. 아직 어린 녀석이 별 말을 다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에서 멀어지는 그 순간이 명희는 너무나 싫었던 거다. 매일 보고 싶은 사람과 떨어져서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명희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명희는 이틀이나 울었다. 나는 명희를 꼭 안아 주었다. 그때의 감촉이 되살아났다.


그래, 명희는 그렇게 나와 떨어지면서 고등학생이 되어서 자신을 놓아 버렸다. 살이 급격하게 쪘다. 누구도 명희를 알아봐 주지 않았다. 심지어 명희의 아버지까지. 나는 뚱뚱해진 명희를 다시 만났지만 반가워서 우리는 그날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눴다. 명희는 아직까지 샤프를 좋아했고 샤프 연구를 하고 싶어 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이야기를 하며 즐거웠다. 그리고 헤어질 때 명희를 안아 주었다. 통통한 그녀의 등이 불행하지 않기를 바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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