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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06. 2024

건물 속에서 7

소설


7.


소녀가 좋아하는 남자애 이야기와 담임의 이야기 그리고 초콜릿 이야기를 하는데 명희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5층까지 올라왔는데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표지판이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시오.라고 되어 있었다. [이럴 수가. 엘리베이터는 지금 안 된단 말이야] 나는 혼잣말을 했다. 소녀의 손을 잡고 5층의 엘리베이터 앞으로 왔다. 5층은 로비가 없다. 엘리베이터 맞은편에는 문이 있고 그 문을 열면 5층에 상주하는 여러 사무실과 학원으로 들어간다.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작동불능이었다. 계단은 양 옆으로 두 군데다. 이쪽 계단으로 갔지만 역시 올라가지 못한다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어떡하지?] 나는 소녀를 보며 말했다. 소녀가 나를 보는데 눈이 아주 맑았다. 소녀는 지금 배가 고프다. 나는 마치 부모의 심정으로 아이의 허기를 채워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5층 안으로 들어갔다. 5층에는 제빵학원이 있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각종 사무실이 있다. 제빵학원에 먹을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제빵학원 안으로 들어갔다. 모든 것이 멈춰 있는 제빵학원은 스산했다. 어떠한 냄새도 나지 않았다. 소녀는 나의 손을 꼭 잡았다.


소녀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동굴 속에서 기진맥진한 고양이가 가르랑 거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소녀는 더 이상 걷지 못했다. 나는 소녀에게 여기에 앉아 있으라고 했다. [먹을 걸 찾아올게]라고 나는 말했다. [아저씨? 오실 거죠?]라고 소녀는 힘없이 말했다. [그럼, 당연히지. 아저씨는 어디 갈 데도 없어. 너 힘드니까 여기에 앉아 있어. 분명 먹을 게 있을 거야] 나는 소녀의 눈을 보며 말했다. 소녀의 눈은 너무나 슬퍼 보였다. 더없이 맑아서 더 그렇게 보였다. [다른 층에 가지 않고 여기에서 먹을 걸 찾을 거야. 만약 무슨 일이 있으면 아저씨!라고 불러. 그러면 찾다가 바로 올게]라고 말하니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파에 앉아 있는 소녀를 두고 먹거리를 찾았다. 분명 먹을 게 있을 거다. 없을 리가 없다. 냉장고를 찾아서 그 안을 뒤졌다. 냉장고 안에는 음식 재료는 있었지만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아니었다. 냉동고기를 찾았다. 파, 양파도 찾았다. 나는 뒤로 돌아서 가스레인지에 불을 켰다. 불이 들어왔다. 그렇다면 조리를 해서 먹으면 된다. 냄비나 프라이팬을 찾았다. 하지만 조리기구가 하나도 없었다. 없을 리가 없다. 어딘가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청결이 제빵학원의 생명이니까. 청결? 청결하니 화장실이 떠올랐다. 화장실은 청결을 위해 화장실을 더럽히는 원인을 제거했다. 냄비가 없다면 젓가락으로 고기를 뚫어서 불에 직화로 구워 먹으면 된다. 젓가락을 찾았지만 젓가락 역시 찾을 수 없었다.


그때 소녀가 아저씨!라고 나를 불렀다. 나는 소녀에게로 뛰어갔다. 소녀가 5층의 화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안 된다. 나는 달려서 화장실 앞으로 갔지만 소녀는 화장실에 들어가고 말았다. 문을 열려고 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있는 힘을 다 했다. 죽을힘을 다 냈다. 이렇게 소녀를 잃을 수는 없다. 소녀는 엄마에게 다시 가야 한다고! 나는 눈알이 뽑힐 것처럼 힘을 줘서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한 번 굳게 닫힌 화장실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녀를 큰 소리로 몇 십 번을 불렀다. 그러나 소녀는 화장실에 들어가고 나서 조용해졌다. 나는 화장실 앞에서 주저앉았다. 나는 소중한 사람들을 늘 이렇게 허무하게 잃었다. 지금 그 벌을 받고 있는 것일까.


화장실 문을 발로 힘 있게 찼다. 그때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아까의 노신사가 나왔다. 나는 노신사를 경계했다. 그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컴퓨터에 의해 움직이는 하나의 프로그램일지도 모른다.


[저는 이 건물의 관리인입니다. 제가 화장실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했잖소]라고 노신사는 말했다. 전혀 관리인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5층의 온도를 맞춰야 해서 에어컨을 틀었습니다. 그리고 화장실 문을 발로 차서 선생님을 조사를 좀 해야 합니다. 공공장소의 기물을 발로 차면 그에 따른 처벌이 있습니다]라고 노신사가 말했다. 나는 자초지종을 말했다. 소녀가 들어갔다고, 그런데 화장실 문은 열리지 않는다고. 나는 거의 울기직전으로 관리인이라고 하는 노신사에게 말했다. 노신사는 화장실 문을 열어 주었다.


[여자 화장실에 남자는 출입이 금지입니다만]라며 문을 열었다. 나는 들어가서 소녀를 찾았다. 하지만 소녀 역시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이 먹어 버린 것이다. 나는 노신사의 멱살을 잡았다.


[도대체 우리에게 왜 그러는 거야!]라고 나는 소리를 쳤다. 노신사는 나에게 멱살을 잡히고도 온화한 표정이었다. 멱살을 잡은 나의 두 손을 살짝 풀더니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 화면을 보여 주었다. 태블릿을 보니 계단으로 걸어와서 제빵학원으로 들어갔다가 여자 화장실 앞으로 오는 건 나뿐이었다. 소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시시티브이로 보니 선생님 혼자였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소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라고 노신사는 말했다. 또다시 몹시 추웠다. 나는 몸을 덜덜 떨었다. [일단 조사도 할 겸 같이 가시죠. 에어컨을 틀어 놨습니다. 몹시 추울 수 있습니다] 노신사는 변하지 않는 온화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도대체 에어컨을 왜 트는 겁니까? 이 추운 겨울에. 지금 밖에는 폭설이 내리고 있는데 말입니다] 내가 말했지만 노신사는 [온도를 맞추는 것뿐입니다. 온도를 맞춰야 합니다. 저는 고용될 때 그렇게 교육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무슨 온도를 맞춘다는 말입니까?] 나의 말에 노신사는 [5층의 온도를 말하는 겁니다. 여기는 17도에서 18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것이 규칙이거든요. 평소에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규칙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 내가 일했던 곳도 그랬다. 그 건물도 경비가 붙박이 중앙식 난방 기기를 컨트롤했다. 경비가 올라와 난방 기기를 일부러 켜지는 않았다. 켜 있으면 시간이 되었을 때 오직 끄기만 했다. 겨울에는 오전 11시부터 저녁 7시까지는 난방을 할 수 있다. 추우니까 난방을 해야 한다. 우리는 전부 공용 전기 사용료를 세금으로 내고 있었다. 그러나 경비 아저씨는 오후 5시가 되면 와서 난방기기를 꺼버렸다. 왜 그러냐고 해도 그렇게 정해져 있다는 말만 들었다. 그 층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경비에게 따지듯이 말을 했다. 우리는 정당하게 돈을 내고 있다, 저녁 7시에는 전부 퇴근을 하니 그때까지는 켜 놓겠다. 하지만 경비는 우리가 말을 할 때에는 저 먼 곳을 그저 멍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끝났다 싶으면 뒤로 돌아서 그대로 관리실로 내려가 버렸다. 그저 일이니까 상주하는 사람들이 추워하든 말든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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