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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07. 2024

건물 속에서 8

소설


8.


나중에 알고 보니 경비는 사무실 회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다. 세 들어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과 대립해 가면서 까지 회장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이다. 악의 평범성이었다. 아주 온화한 옆집 아저씨 같은 얼굴을 한 채 악독한 짓을 매일 무표정으로 매일 하는 것이다. 그저 일이니까 타인의 아픔이나 불편함 같은 건 없다. 그저 시키는 대로 일을 할 뿐이다. 그런 그 경비 아저씨가 화를 낼 때가 있었다. 경비는 늘 온화한 얼굴을 한 채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다. 경비가 관리실로 내려가면 우리가 다시 난방기기를 켰다. 당연한 것이다. 우리의 권리니까.


중앙식 난방기기를 크고 추워하면서 개인 난방 기구를 돌려가며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올라와서 또 꺼버리려고 할 때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경비가 끄는 걸 못하게 했다. 자신의 매일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했을 때 그는 잠시 화를 냈다. 돌아서서 관리실로 내려가면서 모두가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게 입을 찡그리고 욕을 하면서 가는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았다. 평소의 온화하고 인자한 50대 아저씨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건 마치 악마의 모습이었다.


이 노신사를 보니 그 경비가 떠올랐다. 그 경비는 분명 고용된 사람이다. 같이 고용된 사람들 중에 화장실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들도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경비는 아주머니들을 하대했다. 같은 위치와 처지인데 마치 밑의 사람을 대하듯 했다. 나는 아주머니들에게 그 소리를 들은 후 그렇게 하대할 때 그 장면을 촬영을 했다. 그리고 그런 불이익을 당하면 신고하는 기관에 신고를 했다.



노신사는 나를 엘리베이터에 태웠다. 그는 나의 뒤에 섰다. [엘리베이터가 안 되던데 무슨 일입니까? 그리고 계단은 왜 막아 놓은 겁니까?]라고 나는 앞을 보며 노신사에게 물었다. [전기 절약 때문입니다. 이 건물은 인텔리전트 빌딩이라 전기를 아주 많이 잡아먹습니다. 일요일에는 건물 전체가 쉬기 때문에 일반인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를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동을 중지하고 있습니다. 계단 역시 일반인들이 쉬는 일요일에 위로 올라갈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요즘은 건물 내 모든 곳에서 금연인데 계단에서 흡연을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계단 역시 금연입니다. 선생님]라고 하기에 나는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라고 뒤로 돌아서 노신사를 봤는데 노신사는 없었다. 순간 놀랐다. 어떻게 된 일일까. 엘리베이터 벽면을 더듬거려 보았다. 노신사는 엘리베이터 벽면으로 들어가 버린 것일까?


엘리베이터는 7층을 지나 8층, 9층, 10층을 지나고 있었다. 14층에 이르렀다. 건물은 15층까지 있다. 15층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16층을 지나 지금은 20층까지 올랐다. 나는 겁이 나서 엘리베이터 문을 두드렸다.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문은 내 앞에서 굳게 닫힌다. 나는 문을 통과하지 못한다. 그게 문이 나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문을 열려고 두드리고 발로 차고 소리 지르는 일을 포기했다. 눈을 감으면 그대로 뜨지 않기를 바랐던 나였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능력도 없고, 재미도 없는 인간 하나가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해서 울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사실이 진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진실이라는 게 늘 사실일리가 없다. 우리는 언제나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진실 따위 궁금하지 않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무려 43층이었다. 이건 꿈이야.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맞아요, 당신은 꿈을 꾸고 있는 겁니다. 당신은 꿈속에서 즐겁지 않습니까. 비록 내 뜻대로 되지 않지만 꿈속에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라고 방송이 나왔다. 문이 열리고 나는 빠르게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이곳은 건물 안이 아니라 다른 곳이었다. 킴 와일드가 말하는 다른 층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다른 층으로 간다고 킴 와일드가 말해 주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가고자 하는 층으로 가지 않고 다른 층으로 간다는 말인데. 나는 노신사를 따라 탔을 뿐이다.


이곳은 무척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곳이다. 유년시절의 동네를 닮았다. 개천이 있고 개천 위로 작은 언덕이 보였다. 연탄 집이 있고 그 집에는 개 두 마리가 있었다. 내가 지나가도 크게 짖지 않았다. 돌아서 골목을 오르면 공터가 나왔다. 개천을 이어주는 시멘트 다리를 건너면 골목길이 다시 나오고 그 위에 작은 오락실이 있다. 그 위에는 목욕탕이 있다. 이 목욕탕의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으로 사람들이 목욕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오락실 앞으로 갔다. 오락실은 그야말로 촌 동네의 작은 오락실이었다. 아이들이 모여서 오락을 하고 있었다. 갤러그나 너구리 같은 오락. 나도 앉아서 하고 싶었다. 하지만 동전이 없다.


고개를 빼서 그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누가 나와서 나의 손을 잡았다. 보니 소녀였다. 소녀는 나에게 핫도그를 주었다. [아저씨 배고프죠? 한 입만 먹고 주세요]라고 소녀가 말했다. 핫도그 같은 거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핫도그를 손에 들고 보니 그렇게 크지도 않았다. 삐융삐융 갤러그 소리가 들렸다. 아, 이건 꿈이구나. 분명 꿈이야. 이 동네의 모습은 내가 어릴 때 살던 동네의 모습이다. 용케도 건물은 나를 이런 곳으로 데리고 왔다. 이런 곳에 데리고 온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예전의 추억에 잠겨 지낼 뿐이다. 그 순간은 즐겁고 행복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나는 핫도그를 한 입 먹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밀가루 반죽의 핫도그 중간에 소시지가 들어가 있을 뿐이었는데 맛있었다. 소녀는 나의 손을 잡고 너구리 오락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너구리 몇 판까지 가요? 너구리 뛰는 모습이 귀엽지?] 같은 말을 계속했다.


[내가 핫도그 하나 더 사줄게, 이 핫도그 내가 먹으면 안 될까?]라고 나는 소녀에게 말했다. [그거 하나 더 먹으면 안 될 텐데]라고 소녀가 말했다. 소녀는 나에게 반말로 말을 했다. 더 친근감이 들었다. 나는 너무나 오랜만에 먹어보는 핫도그 맛이 매료되었다. 요즘 핫도그는 크고 맛이 다양해졌다. 감자가 박혀 있는 핫도그도 있다. 안에 치즈가 죽 늘어나는 핫도그가 인기가 있다. 하지만 옛날 하나의 맛만 있던 핫도그가 있을 때만큼 잘 먹지 않는다. 핫도그의 맛이 있는데 다양한 맛이 되고 난 후에는 핫도그에 손이 가질 않는다. 가격도 비싸다. 핫도그 하나 사 먹을 바에는,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신 어떤 사람은 핫도그 하나 먹고 한 끼를 때웠다.

이상한 세상이다. 그런 점에서 이 핫도그는 맛도 옛날 그 맛이고 작은데 배까지 불렀다. 소녀와 나는 나란히 앉아서 보글보글 오락을 했다. 소녀는 여러 번 해 봤는지 보글보글을 잘했다.


[너 잘하는구나]라고 나는 말했다. [너도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소녀는 나를 보며 웃었다. 우리가 열심히 보글보글을 하고 있는데 누가 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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