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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an 18. 2024

그해 겨울 6

1


1.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놀기에는 여름보다 겨울이 좋았다. 아이들이 모이면 뛰어다니며 놀았는데 여름에는 더운 데다 뛰어다니면 땀이 나서 집에 들어가면 몇몇 아이들은 등짝 스메싱을 맞기 일쑤다. 도대체 빨래를 몇 번 해야 하느냐고. 그러나 겨울에는 추워서 뛰어다니면 추위가 물러갔기 때문에 놀기에 그만이었다.


그날은 옆 동네 아이들과 군인놀이를 하는 날이다. 아이들이 다 모이면 거의 15명? 16명 정도가 된다. 옆 동네 아이들과는 사이가 좋지는 않다.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다. 부딪힐 일이 없으니까 서로 동네에서 논다. 그러나 놀이터 같은 공터가 우리 동네에 있어서 이쪽으로 옆 동네 아이들이 와서 놀 때가 있다. 아이들 세계에서는 정리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군대놀이는 계급이 적힌 종이를 한 장씩 가진다. 물론 상대편도 그렇게 한다. 서로 누가 어떤 계급인지 모른다. 그래서 게임이 시작되면 전부 샤샤샤삭 흩어지는데 성큼성큼 거리낌 없이 상대방을 잡으러 다가오는 녀석이 대체로 계급이 가장 높다. 비교적 낮은 계급을 물려받은 녀석들은 어떻든 도망을 다녀야 한다. 여하튼 게임이 시작되면 쫓고 쫓기는, 격렬하게 달려야 한다. 겨울에 안성맞춤이다.


옆 동네 아이들이 오기 전까지 전부 벽에 붙어서 해를 쬔다. 따뜻한 햇빛이 얼굴과 몸으로 떨어진다. 바람이 없어서 햇볕은 한없이 따뜻하기만 하다. 아이들은 벽에 등을 대고 일렬로 붙어서 옆 동네 아이들이 오면 어떻게 어떤 식으로 몰아붙일지 계획을 짠다. 그러나 계획이라고 해도 상대방이 잡으러 오면 어디로 달려가고 어디에 숨어야 한다는 이야기뿐이다. 따뜻한 햇빛에 잠식되어 갈 때 옆 동네 아이들이 왔다.


[이런저런 협상이 오고 간 후]


게임이 시작되었다. 나는 병장이다. 상대방 대부분이 나보다 계급이 위다. 잡히면 나는 죽는다. 그러나 만약 상대방과 둘이 붙어서 서로 낮은 계급이라 패를 까지 않고 그냥 지나가면 그대로 지나칠 수 있다. 그래서 서로 계급이 높은 사람이 기를 쓰고 상대방을 잡으러 다닌다.


도망을 다니되 마을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마을 하나는 그렇게 크지 않지만 옆 동네와 합치면 숨을 곳도 많고 그 안에 교회도 있어서 제대로 도망 다니면 게임이 끝날 때까지 붙잡히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방송국으로 올라가는 골목의 도사견이 있는 집의 옆에 몸을 웅크리고 숨었다. 누군가 오면 저 도사견이 크게 짖을 것이다. 그러면 옆의 구멍으로 나가면 된다. 가끔 여자애들도 낄 때가 있다. 드물지만 여자애들이 군인 게임에 끼게 되면 거의 계급이 중간 계급인 경우가 많다.


옆 동네의 여자애들은 그러지 않는데 꼭 우리 동네 여자애들은 같이 놀기를 바라고 있었다. 사실 어떤 놀이를 하던 다 같이 놀면 재미있었다. 밖에서 하는 놀이는 대부분 남자애들이 잘했다. 공기 받기도 남자애들이 잘했다. 심지어는 고무줄 띄기도 남자애가 더 잘했다. 여자애들이 군대놀이에 끼면 군대놀이에만 집중을 하지 않는다. 숨어 있다가도 재잘재잘 거리고, 남자애들만큼 놀이에 몸과 마음을 던지지는 않는다.


[너 뭐야! 너 나보다 낮은 계급이지!] 같은 소리가 들리며, 두 사람이 후다다닥 달려가는 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멀어졌다. 해가 들지 않으니 웅크리고 숨어 있는 곳이 추웠다.


나는 어떤 쪽이냐면 돌아다니며 옆 마을 아이가 나타나면 계급이 뭔지 떠보고 거래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저 조용하게 웅크리고 모든 게 지나가길 기다리는 스타일이다. 다 끝나면 나와서 나는 남았다!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좋았다. 같이 어울리고는 싶지만 깊게 관여하기는 싫다.


이렇게 조용하게 아무도 모르는 곳에 웅크리고 있다가 지지고 볶는 시끄러운 게임이 끝나면 나가야지. 그러나 그늘 속에서는 추위가 굉장했다. 바람이 없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게임을 하기 전 햇볕을 받았던 그 따뜻함이 금방 빠지더니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그러더니 이내 추위가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그곳에서 나왔다. 누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 허리를 굽히고 살금살금 골목의 모퉁이를 돌았다. 이 정도 왔으면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야 할 텐데 조용했다. 나는 최대한 기도비닉으로 살금살금 놀이터가 있는 공터로 나갔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 아직 잡힌 아이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동네 곳곳, 구석구석에서 추격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갔다. 내가 웅크리고 있던 곳은 그늘이 이미 추위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나는 다른 숨을 곳을 찾아서 골목의 끝으로 갔다.


골목의 끝으로 가면 모퉁이의 집을 돌면 옆 마을로 이어진다. 나는 옆 마을에는 자주 가지 않았다. 옆 마을에는 입구를 막아 놓은 우물이 마을의 한 편에 있다. 그 우물을 막은 이유가 아이가 빠졌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소문은 바람을 타고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말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소문을 전달하면 이야기는 부풀 대로 부풀어서 아주 무서워졌다.


그 소문이 그저 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옆 동네에도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우물은 그저 우물로서, 우물이라는 이름만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한가한 시간인지 옆 마을은 조용했다.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때 군인 놀이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 서, 달려라 같은 소리가 들렸다. 점점 크게 들렸다. 내 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몸을 굽히고 빨리 우물 뒤에 몸을 숨겼다.


동진이 녀석이 옆 마을, 즉 이 동네 아이를 뒤쫓고 있었다. 동진이 녀석은 싸움꾼이다. 지치는 법이 없고 언제나 우리 동네 아이들을 지켜주려고 하는 녀석이다. 단지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말 한마디 못하는 그런 녀석이다. 두 녀석이 후다다닥 하며 우물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여기에 웅크리고 있으니 등이 따뜻했다. 해가 나의 등에 떨어졌다.


추운데 있다가 내 몽에 떨어지는 햇볕은 그야말로 나를 치즈처럼 녹아내리게 만들었다. 나는 우물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고 햇빛을 얼굴로 받았다. 추운 겨울의 틈을 벌리고 햇빛은 악착같이 따뜻했다. 노래가 생각나는데 언뜻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이런 기시감 같은 기분을 말하는 노래가 있는데. 노래를 생각하는데 우물 안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 무슨 소리가 들렸다. 이히히히 하며 아이의 노는 소리였다. 나는 귀를 우물의 벽에 바짝 대고 소리를 들었다. 분명 어린아이의 소리다. 우물의 입구는 무겁고 딱딱한 쇠로 만든 뚜껑으로 덮여 있고 쇠사슬로 우물을 둘러놨다. 우물 속에서는 히히히하며 웃는 소리와 물장구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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