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Jan 16. 2024

골목의 뷰를 바라보는 게 좋다

축축한 뷰




매일 여기 앉아서 보는 골목의 하찮은 뷰가 좋다. 이렇게 앉아서 보면 영화를 보는 것보다 재미있다. 재미가 없는데 재미있다. 건물이 뒤를 막고 있어서 골목에 해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하루 중 잠시 동안 해가 비치는 시간이 있다. 그때 보는 골목 안의 풍경이 좋다. 해가 잠시 동안 비치는 부분은 마치 신의 계시를 받은 것처럼 반짝인다. 더럽고 추한 곳으로 비쳐드는 햇빛은 운명처럼 만난 사람 같다.


앉은 소파가 푹신하지 않다. 앉아서 골목의 풍경을 보면서 소파의 솜을 자꾸 뜯었기 때문이다. 골목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은 멈춘 것 같다. 아무도 이런 좁고 춥고 더러운 골목 안으로 오지 않는다. 고양이조차 오지 않는다. 골목에 오는 건 하루 한 번 비치는 '해'뿐이다. 그 잠시 동안 골목 안은 마치 다른 세상이 된 것만 같다. 먼지가 햇빛에 따라 춤을 추는 모습도 보인다. 벽돌과 벽돌 사이 벌어진 틈으로 해가 내려앉으면 그곳에서만 봄에 꽃이 올라온다. 아주 서글프고 안타깝게 올라온다. 곧 죽을 것 같은 그 꽃의 모습이 매혹적이다.


하루 중 잠시 해가 비치는 그 순간을 놓치기 싫어서 여기 앉아서 골목의 뷰를 본다. 이처럼 적요하고 평화로운 뷰가 또 있을까. 경치가 좋고 아름다운 곳은 골목 안의 이 뷰를 따라오지 못한다. 하루 종일 축축하고 그림자로 가득한 곳이지만 잠깐 드는 햇빛 때문일까. 해가 비치지 않는 곳에도 이끼들은 짙 녹색을 띠며 자라고 있었다. 어둡고 축축한 녹색은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이토록 아름다운 지옥이 있을까. 이런 지옥이라면 재미없는 천국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지옥이란 건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다. 시끄럽고 물어뜯고 증오하고 환멸에 가득한 눈으로 멸시하고 괴롭히는 세상. 그곳이 지옥이다.


이 골목을 빠져나가는 순간 정말 지옥이 펼쳐진다. 지옥을 왜 지옥이라고 하느냐면 사람들은 점점 지옥에 물들어서 자신이 지옥에 있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계절에 따라 좀 다르지만 오후 3시가 되면 해가 골목을 지나간다. 긴긴 겨울 내내 흐린 날도 가득하여 이 골목에 해가 들어오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 그 순간이 내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골목에 해가 비칠 때 나는 소파의 솜을 조금 뜯어낸다. 이제 소파는 소파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소파를 사랑한다. 소파는 나에게 있어 하나의 상징이다. 이 소파에 앉아야만 골목의 뷰를 편안하게 볼 수 있다.


여름에는 오히려 서늘하고 겨울에는 온화한 곳이다. 겨울의 나른하고 포근한 날의 골목의 뷰는 다른 날보다 감격스럽다. 해가 들어오지 않아서 차갑지만 겨울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뷰가 펼쳐지는 모습을 오늘도 보고 있다.




오늘의 선곡은 포지션의 봄에게 바라는 것 https://youtu.be/6N9csW10GFU?si=3I729tOffX3KCk_Q

1theK (원더케이)


매거진의 이전글 그해 겨울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