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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03.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79

4장 1일째 저녁


79.

 나는 나의 잘못을 나의 밖에서 찾으려 하고 있어.


 잠이 들어 버리고 나면 꿈속에서 마동 자신이 눈을 뜨고 보고 있음에도 누군가가 마동의 몸을 종이처럼 구깃구깃 접어서 어딘가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마동은 그대로 가만히 보고 있을 뿐이다. 마치 그런 기분이었다. 어젯밤부터 모든 것은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했다. 때 아닌 치누크가 불어왔을 때부터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인간이 불어오는 바람을 잠깐 피할 수는 있어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동은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맥주는 기이하게도 원래 그 맛으로 목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맥주는 맛을 잃지 않고 본연의 맛 그대로를 지니고 체내로 흡수되었다. 그건 다행이었다. 마동은 다시 양파의 통을 열어서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입을 벌리고 곧바로 뱉어 버렸다. 사해에서 살아가는 눈이 하나 달린 해저생물의 비늘을 씹어 먹는 맛이 났다. 양파 통 뚜껑을 재빨리 닫았다. 입안에서 저주스러운 불길한 맛이 치아에 퍼지고 혀를 통해서 뇌에 전이되는 것 같았다. 마동은 입을 헹구고 남은 맥주를 콸콸 입안으로 다 털어 넣었다. 욕이 나왔다. 조금 큰 소리로 “씹할”라고 욕을 하니 어울리지 않게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이런 모습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았지만 보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냥 눈물이 흐르는 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눈물은 굵은 방울처럼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몸이 비정상적일 때에도 이렇게 입맛이 이상한 적은 그동안 없었다. 어디서 시작된 눈물인지는 모르지만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마동 자신도 놀랐다. 눈물을 흘릴만한 감정이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에서는 보란 듯이 눈물이 뚝 떨어졌다. 울고 싶어서 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눈물이 나왔다. 마동의 곁을 죽음으로 떠나버린 사람 앞에서도 울지 않았고 여자와의 헤어짐에서도 울지 않았다. 입사 초기 뇌파 채취의 훈련 끝에 투입된 실무에서 실패를 맛보았을 때에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지금 흐르는 눈물은 어째서 의지와 생각과는 무관하게 눈에서 나오는 것일까.


 눈물이 흐르는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마동은 일어나서 우동을 물에 씻어 물기를 짜 낸 다음 아파트 밑의 음식쓰레기통에 버리고 올라왔다. 요즘은 쓰레기통을 열 수 있는 카드를 구입해야만 한다. 세상은 점점 복잡해져 간다. 이런 세상 속에서 때때로 인생이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간다. 오늘 하루 동안 자신의 의지라고는 썩어빠진 나뭇가지처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기이한 여자,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 비를 맞으며 대나무 숲의 벤치에서 교접을 한 탓이다. 그것밖에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비가 쏟아지는 야외에서 처음 만난 여자와 섹스를 즐기고 그 천형으로 호된 감기몸살을 앓고 있다고 하기에도 어딘가 어색했다. 하지만 이유를 붙이자면 그런 것이다. 감기몸살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바이러스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특히 여름의 감기는.


 마동은 몸살을 떨쳐내야겠다고 다짐했다. 몸살 때문에 눈물 따위를 흘릴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잘 해왔다. 여기까지 오면서 한 것처럼 하면 된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모습이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니 처지를 생각하며 우울하던 마음이 가라앉았고 조금씩 흥분이 되었다. 비스바와 심보르스키가 자신의 시에서 ‘단 한 번의 같은 밤은 없다’라고 한 것처럼 매일 이어지는 밤이지만 같은 밤은 없다고 마동 역시 느끼고 있었다.


 매일 같은 곳을 달리며 같은 시간 동안 조깅을 했지만 스쳐가는 사람들과 날씨와 기후에 따라서 매일매일 다르구나.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내면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서 어딘가에서 또 어딘가로 흘러가는구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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