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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02.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78

4장 1일째 저녁


78.

 [자동차가 출발한다. 천천히, 천천히. 느리게 출발하여 앞으로 나아간다. 사람이 빨리 걷는 속도로 자동차는 나가고 있다. 양옆으로 보이는 인도에는 수북이 쌓인 낙엽이 보이고 가로등은 말라버린 나뭇가지만 앙상하게 보인다. 날은 시리도록 흐리고 잿빛의 하늘은 사람들의 등에 내려앉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자동차는 천천히 움직이다가 도로에 멈췄다. 이곳은 한국의 모습이 아니다. 예술 영화에서나 볼 법한 집들이 죽 늘어선 도로에 자동차들은 썩 보이지 않고 그나마 드문드문 보이는 자동차는 아주 오래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자동차들이었다. 사람들이 인도를 지나쳤다.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고 바닥을 보며 걸어가고 있다. 룩셈부르크? 슬로바키아? 그런 나라나 그 나라의 한 도시처럼 보인다. 그런 곳에 가봤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렇게 보일뿐이다. 자동차는 계속 천천히 도로 위를 가고 있다. 급진적인 반전도 없고 자동차라고 느낄 만큼 빠르게 나가지도 않는다. 자동차 앞으로 누군가 뛰어 들어오지도 않는다]


 마동은 예전에 ‘거울잠’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공허함을 심하게 느꼈다. 겨울에 어울리는 노래지만 여름에 느끼는 공허함도 나쁘지 않다고 혼자서 생각했다. 마동은 냉장고에서 꺼낸 양파가 들어있는 통을 열었다. 엄청난 양파 냄새의 역함이 코 속으로 들어왔다. 양파 물에 목욕하고 양파로 만들어진 집에 들어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냄새는 심했다. 어찌나 양파 냄새가 역하게 느껴지는지 마동은 재빨리 통의 뚜껑을 닫았다. 마동은 양파를 거의 매일 먹어왔다. 생 양파를 잘 썰어놓고 조금씩 씹어 먹는데 지금은 양파 냄새 때문에 양파를 집어 들지도 못했다. 양파 통 뚜껑을 열 생각을 하지 못하고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맥주는 시원하게 목으로 잘 넘어갔다. 양파를 포기하고 우동을 한 젓가락 집어서 입으로 넣었다. 그리고 곧바로 뱉어냈다. 우동의 맛을 느낄 수가 없었을뿐더러 삼킬 수도 없었다. 마동은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따끈한 우동 국물은 언제나 좋아, 라며 후루룩 마셨던 국물도 삼킬 수 없었다. 우동 국물의 맛이 이전에 마셨던 맛이 나지 않고 뜨겁기만 한 썩은 물을 마시는 것 같았다. 아무 맛도 나지 않으면 덜 이상하겠지만 죽은 지 오래된 생물을 우려낸 물의 맛 같았다. 피곤하거나 신경 쓸 일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날 저녁에 우동을 직접 끓여 먹었다. 우동의 국물과 굵고 졸깃하고 탱탱한 면발의 식감을 아주 좋아했다. 자주 먹지 않아서 더욱 그 맛을 즐겼다.


 우동 면을 잘못 산 것일까.


 하지만 늘 구입해오던 식재료는 맛있게 먹었던 예전과 동일했다. 오늘 구입해온 우동 사리도 늘 구입하던 면이었다. 다만 마트는 높아지는 물가 때문에 가격은 몇 백 원씩 꾸준하게 올랐으며 우동을 만드는 재료는 국내에서 국외로 옮겨갔지만 그건 꽤 오래 전의 일이었고 마동은 줄곧 그 식재료를 구입해와서 집에서 끓여 먹었다. 마트에는 그로서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그것들은 종류별로 가지런하게 죽 서서 손을 내밀어 구입하려는 인간들을 유혹했다. 마동은 다시 한번 자신이 마트 안에서 움직인 동선과 선택한 물품에 대해서 떠올려 보았다. 그 많은 가짓수에서 하나를 고르기란 어쩌면 꽤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확고한 주관적인 성향으로 그중에서 선택이라는 것을 하고 계산 후 마트를 흡족하게 빠져나온다. 그건 어떤 면에서 보면 놀랄만한 현상이다.


 많은 가짓수에서 하나를 늘 선택하지만 제대로 나는 선택한 것일까.


 마동은 자신의 선택에 의문을 던졌다. 마트라는 거대 회사에서 음식에 장난을 치는 것일까. 하지만 자신의 이런 의문이 어딘가 겉돌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애써 인정하기 싫을 뿐이다. 지금,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이고 그 잘못은 내 쪽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마트니, 수도국이니, 그런 곳을 불온한 대상으로 여기려 해도 그들은 이전부터 그러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물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결국 마동이 걸린 감기 때문에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감기가 지독하게 들어버린 것이다. 어딘가 삐거덕거리게 된 것은 마동 자신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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