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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9

167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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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어떤 식으로 잠의 세계에 빠져들어 갔는지 구분도 없이 꿈의 세계에서 마동은 사정을 했다. 흔적은 속옷에도 바지에도 없었다. 그대로 꿈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동통이 느껴졌고 바지가 벗겨졌다는 의심만 있었지만 사정을 한 기억은 확실했다. 이제 마동은 논리에서 점점 벗어나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수면실의 어둠은 마동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꿈에서 격렬한 섹스를 했지만 잠에서 깨어나니 몸은 상쾌했다. 편안한 몸의 상태를 수면실의 어둠은 유지시켜 주었다. 수면실을 채우고 있는 검은 어둠은 보통 해가 떨어지고 우리 곁으로 내려앉은 어둠과 비슷한 안온감이 있는 어둠이었다. 질척하고 축축하고 기분 나쁜 어둠은 더더욱 아니었다. 흉가에서 봤던 암흑에 어울리는 어둠, 태고에 탄생된 우주의 블랙홀처럼 잔인한 어둠이 아니었다. 거대한 고래 뱃속에서 맞이하는 어둠이 아니라는 것이다. 방안의 어둠은 공포스럽지 않았고 군대시절 야간 근무에서 달을 하염없이 바라볼 때 달이 어깨를 두드려주듯 수면실의 어둠은 마동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질퍽한 어둠 속에서는 자신의 한 손을 들여다봐도 손이 보이지 않는다. 공포의 어둠은 손을 삼켜 버린다. 수면실에 깔린 어둠은 질이 다른, 연약하고 부드러운 어둠이었다. 어찌 되었던 수면실 안의 어둠은 흉가에서 만났던 어둠과는 다른 어둠이었다. 비논리적이지만 마동은 그것을 경험한 것이다. 싫었지만 마동은 세미나의 담력시험에서 만난 어둠을 떠올렸다. 그동안 애써 피하려고만 했던 어둠, 그것을 생각했다. 가끔씩 보이는 어떠한 상상 속에서 그 기분 나쁜 어둠은 세상을 먹어 삼켰다. 냄새나고 더럽고 질척거리는 어둠은 마동의 등을, 손을 집어삼켜서 바늘처럼 손바닥과 몸을 찔렀다.


바늘의 촉이 어디에서 날아올지 몰라 두려운 어둠에 대해서.


세상에는 그런 어둠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마동의 몸은 낡아서 뭉툭하고 잘 들지 않는 칼에 몸이 잘리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서운 어둠을 경험했던 기억의 확신이 모호해졌다. 마동을 제외한 네 명의 직원은 그날의 기억을 점점 잊어갔고 열심히 경청하던 몇몇의 다른 직원들도 앞으로 시간이 나아가면서 그 일에 대해서 시큰둥해졌다. 네 명중 세 명은 복통의 시달림으로 회사를 차례대로 그만두었고 한 명은 아직도 원인 모를 복통을 호소하고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은 마동의 눈으로 투사한 어둠이 한 짓이었다.


어디서 기생하다가 나타난 어둠일까.


만약 앞으로 질척하고 소름 끼치는 어둠을 만난다면 뇌 속에 포비아로 가득 차서 점점 부풀어 올라 머릿속의 생각들을 전부 하나씩 야금야금 먹어 치울 것이다. 그다음 공포로 차곡차곡 속을 채워 놓는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질퍽하고 기분 나쁜 어둠의 공포가 서서히 무섭게 마동을 향해 엄습해 온다는 것이 느껴졌다. 마동은 이제 공포를 지닌 어둠이 마동의 앞에 온다면 정녕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야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해야 모든 것이 균형이 잡힐 것만 같았다.





[3일째 저녁]


병원에서는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보자고 했지만 여자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을 지닌 의사는 알고 있었다. 굳이 검사를 거치지 않아도 마동의 신체적인 변이와 무의식적 변이에 대해서 짐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종합병원에서 특수적으로 복잡하게 이뤄지는 어떠한 검사도 마동의 변이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마동은 알고 있었다. 병원의 기이한 수면실에서 유리병에 든 음료를 마시고 몇 시간 꿈같은 잠을 자고 집으로 왔다. 꿈속에 분홍간호사와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 소피가 나왔다. 현실이 장막처럼 내려오고 꿈에서 깨어났지만 동통을 느끼는 페니스는 그녀들을 놓지 않으려 했다. 수면실에서 나오기 전 마동은 옆에 놓인 병을 집어 들었다. 병 밑에 소량의 음료가 침잠되어 있었다. 마동은 그것을 들고 입에 탈탈 털어 넣었다. 지구상에 이런 맛을 내는 음료가 있다는 게 놀랄 따름이었다. 음료가 혀에 닿는 순간 척추에서 찌릿하며 자극이 왔다.


이 음료는 무엇일까.


수면실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물은 아니었다. 이온음료 같은 것도 아니었다. 과즙의 맛과도 달랐고 탄산은 더더욱 아니었다. 처음 마셔보는 음료였고 음료는 진한 맛이 났다. 철분이 가득한 약수처럼 진했다.


아마도 약이었을까.


음료의 맛은 낯선 그리움 같은 것이었다. 소피의 동그란 얼굴이 생경하게 떠올랐다. 어색했다. 소피는 거짓가슴을 달고 꿈에 나타났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가슴골도 분홍간호사의 길쭉한 손가락의 감촉도 떠올랐지만 모두가 어딘가 일그러져있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이 마동의 눈앞에 그림처럼 나타나더니 몇 분 전에 본 것처럼 뚜렷하게 보였다. 그리곤 상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내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은 포식의 본능을 지닌 너구리의 얼굴로 변했다. 너구리의 얼굴이었지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잇몸을 드러내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얼굴이 되었다. 마동은 자신의 뺨을 있는 힘껏 때렸다. 찌릿하며 아파야 하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다. 머리를 흔들었다. 혼란스러웠다. 혼란스러운 것이 정상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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