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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04. 2024

회색도시 5

소설


5.


나타샤 폰브라운이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감정을 좀 더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는 움직이고 있지만 움직이고 있지 않는다. 그렇게 느껴졌다. 이런 공간에서는 누구나 공포를 가진다. 하지만 나는 하얀 방의 훈련 덕분에 두려움이 없다. 오히려 회색도시에서 만들어진, 목 언저리에 번호가 찍혀 있는 나타샤 폰브라운이 두려워하고 있다. 나는 그녀를 나의 곁으로 당겼다. 그녀가 떨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다에 대해서는 할머니에게 이야기만 들었어요. 바다에 가고 싶어요. 바다는 정말 파란색인가요?”


바다는 사실 파란색이 아니다. 그렇게 보일 뿐이다. 하지만 나타샤 폰브라운에게는 거짓말을 했다. “그렇다. 바다는 파란색이지. 아주 신비로운 파란색이야. 마치 너의 눈을 들여다보는 것 같지.” 나의 말에 그녀는 또 한 번 미소를 지었다.


“제 몸속에는 공허가 있어요. 이 알 수 없는 공허. 공허는 계속 변형하고 있는 걸요. 공허가 나의 의식을 몽땅 잡아먹기 전에 바다에 데려가줘요.”


어쩌면 그녀는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죽음은 나타샤 폰브라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죽음일지도 모른다.


엘리베이터의 문은 어디에 있을까. 왜 엘리베이터에 문이라는 것이 없을까. 아, 회색도시에서 왜?라고 해서는 안 된다. 8번 모듈 이상, 8번 모듈이상.라는 말이 들렸다. 쇠를 긁는 듯 기묘한 목소리다. 이런 목소리가 회색도시가 내뱉는, 회색도시의 목소리인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통해 나에게 경고를 하고 있다. 그녀를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하는 것 같다. 나타샤 폰브라운이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어서 나는 그녀를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녀는 어디에 있지?”라고 나는 물었다.


 “43층에 있어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엘리베이터는 43층으로 가는 중이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지 사실은 알 수가 없다. 알파빌은 원래 6층짜리 모텔이다. 그러나 6층이라는 사실도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가 없다. 회색도시에서 정확함이라는 궤도에서 벗어나면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만다. 회색도시는 아웃랜드와는 전혀 다른 세계다.


그러나 아웃랜드가 정녕 살만한 세계인가라고 묻는 다면 그것 역시 대답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회색도시에서는 출입을 통제하는 곳이 많지만 아웃랜드에서는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러나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고 그 경계를 넘어서 들어가면 수난을 겪는다. 경고를 하고 넘어오면 처형을 시키는 곳과 경고 없이 넘어오면 잡아두고 괴롭히는 곳, 어느 곳이 더 나쁜 곳인가.


“당신과 함께 있으면 안 된다는 명령을 받았어요.”


나타샤 폰브라운은 나에게 말했다. 분명 알파 60 엔지니어들이 그랬을 것이다. 그들은 회색도시에서 계급을 나눠 윗 단계 회색도시인들에게 당에서 지시하는 명령을 내린다. 반드시 따라야 하지만 나타샤 폰브라운은 바다를 보기 위해 그 명령을 어기고 있다.


“그렇다면 당의 명령을 들어, 바다 따위는 잊고.”


“당신은 왜 저에게 못되게 굴죠?”라며 나타샤는 슬픈 얼굴을 했다.


“폰브라운 박사, 당신은 ‘왜’가 아니라 ‘~때문에’를 사용해야 할 텐데.”


“내가 ‘왜’라고 했나요?”


“그럼, 회색도시에서 이 모든 대화를 듣고 있을 거야.”


“그렇다면 내가 실수를 했군요.”


과연 그녀가 실수를 한 것일까. 그녀는 아마 금지된 단어를 사용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야 두려움을 잊을 수 있다. 나타샤 폰브라운은 나에게 그 녀석이 회색도시에서 모듈화 되어서 조금씩 이상해지고 있다고 했다. 43층에 도착했을 때 내가 척살하지 못할 정도로 이상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코스모드래건을 사용해도 죽지 않을 수 있다.


“나를 데리고 나가줘요. 아웃랜드로. 회색도시에서 저는 당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쥐의 역할을 하다가 나중에 연구대상으로 모듈화 되어서 사라질 거예요. 사랑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사랑은 뭐죠? 당신은 지난번에 왜 저를 사랑한다고 했나요?”


그렇다. 나는 지난번에 나타샤에게 사랑한다고 했다. 나타샤에게서 사랑을 느꼈다. 나타샤는 회색도시 사람이지만 어울리지 않았다. 악착같이 감정을 숨기려는 나타샤에게 점점 사랑을 느꼈다. 그리고 고백을 했다. 하지만 나는 아웃랜드로 나와야 했고 나타샤에게 바로 돌아온다고 약속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그 순간, 회색도시의 회색인간들이 알파빌로 출동을 하여 우리를 잡으러 왔다. 나타샤 폰브라운이 그렇게 말했다. 엘리베이터에 있었지만 나 역시 그걸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나의 품에 안겨 얼굴을 들어 나를 보았다. 그녀의 눈을 통해 그녀의 생각이 들렸다.


‘당신의 음성,

당신의 눈동자,

당신의 손,

당신의 입술,

우리의 침묵,

우리의 언어,

나아가는 빛,

되돌아오는 빛,

우리 사이의 한 번의 미소,

지식을 찾아다니며 우리는 변하지 않는 동안에 밤이 낮을 창조하는 걸 보았다.

오,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한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당신의 입술은 묵묵히 행복을 약속했다.

멀리, 멀리서 증오를 말하고 가까이, 가까이 사랑을 말한다.

쓰다듬은 우리를 유년에서 이끌어 줄 것이니 점점 나는 연인의 대화로 인간의 형상을 알아간다.

심장엔 입이 하나뿐이며 모든 것은 우연으로 정돈되니 생각 없이 내뱉는 모든 말, 감정은 표류한다.

인간은 도시를 배회하고 한 번의 눈 짓,

한 마디의 말,

내가 그대를 사랑하기에 만물이 생동하는 것,

삶을 위해선 나아가는 수밖에.

당신이 사랑하는 것들만을 바라보며 당신에게로 갔고 한 없이 빛을 향했다.

그대가 미소 짓는다면 더없이 좋으리라.

그대 팔의 광채는 안개를 꿇고 나아간다’라고 고뇌의 수도를 말하는 그녀의 생각이 들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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