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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03. 2024

회색도시 4

소설


4.


회색도시로 온 지 고작 몇 시간밖에 되지 않았을 텐데 마치 몇 세기가 흐른 것처럼 느껴졌다. 머리가 아팠다. 움직이고 있는 곳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느껴지는 건, 몸의 호르몬 체계에 불균형을 초래한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무한히 순환하는 원과 같다. 하강하는 원호는 상승하는 원호와 같다. 하강하는 원호는 과거이며 상승하는 원호는 미래다. 회색도시에서는 그 누구도 고통을 받으며 살지 않아도 된다. 감정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과거나 미래에서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엘리베이터는 내가 어디로 들어왔는지 알 수도 없었다. 문이라고 하는 것이 없다. 그저 이 안에서는 무한한 정적만이 존재했다. 회색도시에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 왜?라는 걸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된다. ~때문에, 만 있을 뿐이다. 회색도시의 당국에서 나를 엘리베이터에 가둔 이유는 내가 그 녀석을 잡기 위해 감정을 숨기고 회색도시로 들어왔다고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에서 고립되어 공포를 느끼는 순간 나를 잡아가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하얀 방에서 훈련을 거쳤다.


회색도시에서는 끊임없이 논리가 연산되고 있다. 그 논리에서 벗어나면 당국은 의심을 한다. 그리고 회색인간들을 파견한다. 다리가 길고 말라빠진 회색인간들이다. 회색인간을 보고 생김새가 우습다고 웃으면 안 된다. 나의 한 손은 코스모드래건에 가 있다. 총은 불운을 대항하기 위한 나의 유일한 무기다. 나는 총을 꺼냈다. 엘리베이터의 어느 곳을 향해 발포했다.


그러자 어딘가에서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로 “7번 모듈 이상”라는 말을 했다. 이후 목소리는 계속 말을 했다.

"하나의 간단한 명령으로는 알파 60이 일련의 작업을 실행하도록 하기에는 일반적으로 불충분하다. 내가, 또는 내 계획을 수용한 과학자들이 이 파멸의 원인이라고 여기지 말라. 보통의 사람들은 세상 속에서 별 가치 없는 지위를 점유하고 있다. 그들의 과거를 분석하면 자연히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파괴’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변환’되어야 한다. 누가 나 대신 결론을 끌어낼 필요는 없다"라고 했다.


회색도시는 인간의 존재를 비틀어서 연산 속에 집어넣어서 회색도시와 일체화시킨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가장 약점인 감정을 다시는 느낄 필요가 없다. 완전무결한 엘리베이터는 나에게 계속 회색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회색도시와 일체화된 사람들은 전부 통제번호를 부여받고 머리통이나 이마, 목 언저리에 통제번호가 찍혀 있다. 나의 몸에는 아직 통제번호가 없다.


우리는 변형의 공허함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종일을 달리는 그 반향은 시간을 초월하고 번민 또는 위로를, 우린 우리의 의식에 가까이 있는가? 아니면 멀리 떨어져 있는가? 의식,,, 그리고 ‘대화 안에서의 죽음’ 당신의 시선은 눈짓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곳. 전제의 땅에서 귀화하였다 – 엘뤼아르 [고뇌의 수도] 중


회색도시는 엘뤼아르의 고뇌의 수도의 영향을 받았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고뇌의 수도가 되었을까. 나타샤 폰브라운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지난번에 나는 나타샤 폰브라운에게 회색도시 몰래 고뇌의 수도를 주고 나왔다.


회색도시가 말하는 논리에 의해 나의 의식이 모듈화 되려고 할 때 누군가 나타나서 [고뇌의 수도]에 대해서 말을 했다. “벌거벗은 자들은 진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절망에는 날개가 없다. 사랑도 없다. 얼굴도 없고 말도 없다. 나는 그것들을 쳐다보지도, 말을 건네지도 않는다. 나는 내 사랑과 절망의 크기만큼 생동하는 존재일 뿐이다.”


엘리베이터에는 문도 없는데 내 앞에는 나타샤 폰브라운 박사가 있었다. 그녀는 회색도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단계의 사람이다. 그녀는 나에게 의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이곳에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당국에서 내가 이곳으로 왔을 때 나를 의식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 나타샤 폰브라운박사를 보냈다고 했다.


나타샤 폰브라운은 나의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회색도시 속에서 줄곧 나의 곁에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내가 준 엘뤼아르의 고뇌의 수도를 당국 몰래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회색도시에서 태어난 사람들과는 다르게 없었던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나에게서 두려움을 보았다고 했다. 나는 왜 그렇지?라고 물었다.


“당신에게서 처음 단어들 때문이에요.”


“처음 듣는 단어? 어떤 단어?”


“의식과 양심 그리고 바다“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 사람을 찾는 걸 도와줄게요. 대신 저의 부탁을 들어주세요. 회색도시에는 바다가 없어요. 저를 바다에 데리고 가실 수 있나요?”


“왜?”


“오, 회색도시에서 ‘왜’라는 말을 하면 안 돼요.”


나타샤 폰브라운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은 일반 사람들에게서 못 보는 눈동자다. 은하계를 받아 놓은 것처럼 신비로웠다.


“회색도시를 왜 빠져나가려 하지? 경계 안 쪽에 있으면 불행하지는 않잖아. 아웃랜드에 가면 바다를 보고 사랑을 하는 대신 증오와 분노도 같이 느끼게 돼. 도시를 배화라며 감정을 소모하게 된다고.”


“회색도시는 바소프레신의 생성을 억제하고 있어요. 특히 감정의 동요가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6으로 시작하는 번호를 새기고 그들을 특별 감독하고 있어요. 뇌에서 흘러나오는 바소프레신이 전부 사라지고 나면 저는 아웃렌드에 나가서 바다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어요.”


나타샤 폰브라운은 이 기묘한 엘리베이터에 접합되면서도 분리된 인간처럼 보였다.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닌, 회색인간이지만 아웃랜드의 피를 지닌 사람이었다. 회색도시에서 그녀 같은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다. 회색도시는 나타샤 폰브라운을 놓치기 싫은 것이다. 그녀가 감정을 가졌다고 해서 바로 처형해서 죽이기보다 연구를 하려고 한다.


그녀는 나와 함께 있으면 두려움을 느낀다. 그 두려움을 무릅쓰고 나에게 바다를 보여 달라고 했다. 그녀는 회색도시가 만들어낸 사람이지만 회색도시에 어울리지 않았다. 바다를 보여주는 조건으로 그녀는 지금 나를 그 녀석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고 있다. 나는 그 녀석을 척살하고 나 역시 회색도시를 빠져나갈 수 없기에 여기에서 사라지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바다를 보기 위해서는 계획이 틀어져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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