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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22. 2020

사랑인 것이다

수필

자다가 목이 꺼끌꺼끌한 기분이 들어서 일어났더니 저녁에 먹었던 갈치 가시가 목에 걸려있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따끔거리는 느낌. 아마도 빼지 않으면 계속 신경 쓰일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크지 않은 가시라 많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가시를 빼는 것이 더 힘들 것 같다.

다시 자려고 누운 눈으로 들어오는 천장의 기이한 벽지 무늬와 새벽을 수놓은 고요한 밤의 미립자들과 그 고요를 깨고 싶어서 가끔 들리는 자동차의 울음소리.

누워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에도 목에 갈치 뼈가 걸린 적이 있었다. 엄마는 가제에 물을 적셔 손가락에 감아서 목에 넣어서 살살 돌렸다. 그래도 빠지지 않자, 아버지는 이거 큰일이구만, 하는 표정으로 물김치를 들고 와서 먹기 싫은 물김치를 계속 먹였다. 그리고 물김치 국물도 삼키게 했다. 두 사람은 나를 중간에 두고 입을 벌리게 하고 그 안으로 보이지도 않는 갈치 가시를 빼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다.

껄끄러운 가시가 꽤 행복한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마치 내일이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 엄마와 아버지는 내 입안으로 물김치와 가제를 집어넣으며 발을 동동 굴렸다. 하얗게 변한 가시가 나오고, 시간이 조금 지나니 큰일일 것 같았던 그 일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 버렸다.

누워서 몸을 돌려 침을 한 번 삼켰다. 따끔거리는 기분. 어쩐지 목보다는 마음이 조금 아픈 것 같기도 했고. 뭐랄까 추억이라는 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행복한 기억을 불러 오지만 그와 동시에 칼로 긁은 것 같은 아픔도 같이 몰고 오기도 한다. 근육이 아프면 파스를 바르면 되지만 마음이 아프면 이상하지만 고통이 따라온다.

이성복 시인의 '남해 금산'이 떠오르기도 한다. 시인의 남해 금산은 깊은 고통의 사랑을 몇 번 한 사람의 너덜하고 처절하고 황폐한 아름다운 모습. 시는 어렵지만 참 좋다. 짧지만 서사가 있고, 함축이지만 구체적이다. 한 줄을 읽으면 열 줄을 상상하게 된다.


사람들은 사랑을 시간으로 따져서 사랑의 양을 체크하는 묘한 습성이 있다. 기간을 두고 잴 만큼 사랑은 단순하지 않다. 어쩌면 잠과 비슷하다. 잠 역시 시간보다 깊이의 문제니까.

나는 아버지와의 기억이 다른 친구들만큼 없지만 목에 걸린 생선가시 때문에 떠오른 아버지의 고군분투하던 기억은 마음 어딘가에 소중하게 웅크리고 있다가 튀어나와서 행복하게도 하고 아프게도 한다. 아마도 아버지는 나를 깊이 있게 사랑했을 것이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가 아니라, 사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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