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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13. 2024

평온한 오늘 이면에는

평온하지 뭔가가 있겠지

오늘, 날이 확 따뜻해졌다. 좀 덥다는 말이 어울리는 날이다. 오전 10시의 햇볕은 뜨거웠다. 검은 옷을 입고 있어서 뜨거움을 더 했다. 평일의 오전 10시에도 사람들은 강변을 거닐고 조깅을 하고 운동을 했다. 바람은 없고 아파트 단지 내 나무에서는 참새 소리가 들렸고 노인정에서 보살피는 길고양이 순이는 그늘에 늘어져 있었다. 평온한 날이다.


인간의 모든 관념이 수치로 확립되어서 숫자로 표기가 된다. 하지만 인간의 희망이나 기쁨, 불안이나 공포는 수치 그 너머에 있다. 직관적으로 통계된 표기보다 더 수치가 크거나 축소된다. 전날까지 선거 때문에 복잡하고 시끄럽고 서로가 서로에게 비방과 공격을 하던 때를 벗어나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평온하니 불안하기까지 하다.


오늘은 출근하는데 늘 다니는 도로가 막혔다. 이러면 십중팔구는 사고 때문이다. 천천히 가면서 보니 사고가 나서 자동차의 앞부분이 완전히 짓이겨져서 수습 중이었다. 사상자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구급차가 와서 실어 갔는 모양이다. 왜 하필 이런 시기에 저렇게 큰 교통사고를 당했을까. 요즘은 크게 다치면 큰일이다.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의 응급실에 치료를 할 수 있는 의사가 없을 수 있다. 의료대란 때문이다. 평온한 이면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서 균형을 맞추는 게 아닌가 싶다.


핑크 플로이드의 디비전 벨 앨범을 듣고 있으면 한창 들었던 그때로 나를 확 데리고 간다. 라디오헤드와 함께 가장 기시감을 깊게 가지게 만든다. 봄이라는 계절도 다른 계절에 비해 기시감 백배다. 봄이 떨어져 흩날릴 때가 가장 아름다운, 그래서 죽음의 계절인 봄에 핑크 플로이드를 듣고 있으면 몸이 타노스의 핑거스냅으로 몸이 조금씩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기분이다.

음악은 정말 그 시간을 옮겨다 준다. 마치 사진 속에 들어와 있는 착각마저 든다. 사진도 음악처럼 그 시간을 붙잡아 둔다. 조급함이 들 때에는 기시감을 잔뜩 느낄 수 있는 핑크 플로이드의 디비전 벨 앨범을 듣는다. 가만히 멍하게 듣고 있으면 바보 같아지지만 바보 같아져서 좋다. 세상에는 바보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별로인 게 아닐까. 봄에 수영장에 들어와 있는 물처럼 느껴지는 무력감과 불안은 벚꽃의 만개와 동시에 떨어지는 봄처럼 흩어졌으면 좋겠지만 절대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안다. 심장과 비슷하다. 태어나면서 한 번 뛰기 시작하는 심장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뛰는 것처럼 말이다.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많은 것들이 천천히 변하는데 어느 순간 보면 완전히 변해있다. 시간은 그렇게 서서히 간섭을 하여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형태가 있건 없건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만다. 천천히 조금씩 확고한 변화를 준다.


추위가 물러갈 때도 조금씩 천천히 물러간다. 추위라는 건 한 번에 확 물러가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 뜸을 들여가며 물러간다. 아직 발밑에는 작은 스팀을 켜 놓고 있을 정도로 추위가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추위라는 건 성가시다. 이제 두꺼운 옷은 입을 수 없다. 그 틈을 파고들어 피부에 닿아 신경 쓰게 만든다. 밖으로 나가 5분만 걸어 다니면 후끈할 정도로 체온은 이미 추위를 감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해가 들지 않는 곳에 가만히 있으면 머물렀던 추위가 다시 몸에 달라붙어 질척인다. 그러나 어느 순간 보면 완벽하게 추위는 물러나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오키쿠와 세계]를 봤다.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악취가 나는 똥을 뿌렸는데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깨끗한 채소가 자라는 것일까.


내 친구는 사람을 볼 때 똥이냐 아니냐로 구분했다. 넌 똥이냐?라고 물었을 때, 난 똥이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좀 더 알려고 노력을 했다.


똥을 누지 않으면 사람은 죽는다. 하지만 똥은 더럽다. 냄새도 더럽다. 떠올리기도 싫고 생각만 해도 토가 나오려 하지만 똥을 안 쌀 수는 없다. 똥은 더럽지만 본질인 거야.


그 녀석은 독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지. 넌 똥이냐, 난 똥이다. 똥보다 더 나은 놈이냐? 똥보다 못한 놈들이 많지, 그런 놈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지, 가방을 풀었다가 다시 싸면 한결 가벼워지기도 하지, 누구나 쓰러지지 중요한 건 다시 일어나는 거지, 그래서 난 똥을 좋아하지, 인생은 소중하면서도 위태로운 거지.


그 녀석은 랩인지 노래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노래를 불렀다. 그 녀석은 스티븐 킹의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라는 단편집에 실린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에 나오는 시구를 좋아했다.


타코소스를 싸기 위해 변기에 주저앉다

힘을 주고 또 주노니 폭발할까 걱정일세


앙꼬 똥꼬 꼭꼭 따꼬


똥꾸깐에 주저앉아 배때기에 힘을 주니,

커지느니 불따귀요 나오느니 왕거니라

-스티븐 킹,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중에서


똥이라고 다 같을 수 없다. 죽는 순간 항문이 열려 그곳으로 똥이 나온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나오는 똥과 언제든지 쌀 수 있는 똥은 다르다.


흑백의 똥 속에서 진정 아름답게 피어나는 컬러의 청춘의 꽃이여. 똥과 꽃, 흑백과 컬러가 공존하는 곳이 바로 세계가 아닌가.      https://youtu.be/0dvE1XFiN-k

엣나인필름ATNINEFILM

진정한 사랑은 천천히 온다, 똥은 더럽지만 땅에 뿌려지면 거름이 되어 야채를 아주 신선하게 한다. 천천히 이루어진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좋은 영화였다.


여러 가지가 천천히 변한다. 마을도 천천히 모습이 변한다. 오래된 마을에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철거가 되고 평지가 되고 새롭게 건물이 들어서는 것 역시 천천히 이뤄진다. 세상은 급변하는 거 같은데 대체로 변화는 천천히 이뤄진다. 지구도 아주 천천히, 몹시 천천히 오염이 되어 간다.

여기도 곧 천천히 변하겠지

 그 감지를 인간의 리듬으로는 알 수가 없다. 인간의 변화 역시 천천히 이뤄진다. 천천히 변하지만 확실하게 변한다. 절대적이다. 이 세상에 절대라는 건 아주 소수에 적용되지만 인간의 확실한 변화는 그 소수에 해당된다. 인간이 변하는 건 눈에 띄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면 인간은 분명하게 변해있다. 인간의 변화는 노화에 기인한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늙어간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한 20년 후에 만나면 그 사람은 분명 변해있다. 어떻게든 변하는 게 인간이다. 그 변화를 잘 받아들이면 하루하루는 평온하겠지.


어제는 조깅을 하고 오는데 저 먼 밤하늘에 눈썹달 떴다. 고즈넉하고 적막하고 적요하고. 그래서 몹시 평온한 하루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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