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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21. 2024

나쁜 사람 2

소설


2.


지하 주차장은 퀴퀴한 냄새가 났지만 경비 아저씨가 온 이후로 늘 쓸고 닦고 해서인지 깨끗해졌어. 항상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는 시간은 같아. 시간을 칼같이 지켜서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매일 청소를 했지. 경비 아저씨의 말투가 기묘한 건 충정도 사투리에 경상도 사투리까지 섞여 있어서 그래. 식사시간은 언제나 같았고 늘 혼자서 밥을 먹었지. 건물을 순찰하는 시간도 컴퓨터처럼 정확했고 순찰이 끝나면 위에 보고는 확실했지. 그래서 일 잘한다는 칭찬을 듣는 모양이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잖아. 그런 칭찬을 들으면 더 칼같이 일을 하는 경비 아저씨였지.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웠지. 로비에는 중앙식 냉난방기가 달려 있거든. 일하는 사무실은 로비에 바로 붙어 있어서 문을 열어 놓고 서큘레이터를 틀어 놓으면 시원하게 지낼 수 있지. 단지 12시부터 19시까지만 에어컨을 가동해. 그래서 그전과 후에는 각자 알아서 냉난방을 해야 해. 온도는 25도. 내가 일하는 사무실만 빼고 다른 사무실에서도 문을 열어 놓고 선풍기만 틀어 놓으면 폭염 속에서도 지낼 만 해. 그러나 문을 닫아야 하는 사무실에서는 에어컨을 각자 달아야 해. 뭐 보통 대부분 그렇게 하잖아. 어디든지 말이야.


7월부터 에어컨을 가동해. 주말에 경비를 보는 아저씨는 에어컨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아. 비록 화를 잘 내고 무섭기는 하지만 말이야. 주중에는 상가번영회에서 모니터로 관리를 한다는 거야. 그러나 주말이 되면 번영회에 출근하는 사람이 없어서 에어컨을 아무 때나 틀어 놓을 수 있지. 우리의 생각은 말이야, 그 충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그 층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관리비를 통해서 낸다는 거야. 근데 어째서 번영회에서 관리를 하느냐 하는 거야. 물론 관리를 해야겠지. 전기사용료를 내지 않고 그렇게 에어컨을 사용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렇지가 않아. 그래서 그런지 주말에 일하는 경비 아저씨는 에어컨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지.


그래서 날이 너무 더우면 평일이, 주중이 걱정되는 거야. 오전이라도 폭염에는 더위에 허덕이게 돼. 7월이 시작되고 에어컨이 가동이 되었지. 로비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점령하고 나면 더위는 사라지는 거야.


순둥 순둥한 얼굴을 가진 경비 아저씨는 우리를 보면 늘 인사를 했지. 여느 때처럼 말이야. 아이구 안녕하세요라고 끝을 올리며 친근한 말투로 인사를 건넸지. 그러면 우리도 돌아서서 반갑게 인사를 해. 경비 아저씨는 언제나 비슷한 시간에 거의 오차 없이 순찰을 해. 폭염은 시작되어서 8월까지 죽 이어졌지. 여름은 해가 거듭할수록 더 뜨거워지는 것 같아. 그럴수록 집집마다, 건물마다 에어컨은 더 강하게 가동되고 실외기의 모터 역시 강력하게 돌아가면서 뜨거운 바람을 폭염의 길거리로 뿜어내지. 이런 순환이 매년 여름을 더 뜨겁게 만드는지도 몰라. 잠깐 나가서 커피를 사들고 올뿐인데 윗도리가 전부 젖을 정도로 뜨거운 날의 연속이야.


주중의 경비 아저씨는 늘 그랬던 것처럼, 에이아이 로봇처럼 그 시간에 순찰을 돌았지. 건물에 일을 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았지. 폭염으로 인해 전기세 문제는 우리가 일하는 건물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었지. 상가 번영회에서는 전기 요금 때문에 전기를 아껴 사용해야 한다는 전단지가 엘리베이터 안에 붙었어. 코로나 이전처럼 하루 종일 에어컨을 틀어 놓고 있는 사람들은 사실 거의 없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금들, 전기세라든가, 수도세 같은 건 매년 오르기 때문에 악착같이 아껴 쓰는 거야. 물론 돈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겠지. 흔히 말하는 소상공인 사람들은 모두가 마음속에 하나씩의 무언가를 안고 살아가고 있어. 아무리 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두려움과 함께 어떻든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거 말이야. 정부에서는 모두 아껴 쓰자고 하지만 사실 에너지를 아껴 쓰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 것 같아.


우리도 회사처럼 오전에 나와서 저녁이 되면, 그러니까 로비의 중앙 에어컨이 꺼지면 일괄적으로 집으로 가는 분위기였지. 저녁 7시에 말이지. 경비 아저씨가 8월의 폭염 속 평일에 순찰을 돌았지. 보통 그 시간이 5시 45분에서 6시 사이였어. 그런데 경비 아저씨가 에어컨을 꺼버리는 거야. 에어컨을 끄는 순간 시원함이 칼로 자르듯 달아나버렸지. 로비는 금방 더위에 점령당해 버렸어. 에어컨을 정당하게 켜 놓을 수 있는 시간이 저녁 7시까지야. 우리 층에서 일을 하는 세입자들이 혹시나 싶어서 상가 번영회에 연락을 했지만 거기서 저녁 7시까지는 에어컨을 틀어 놓아도 된다고 했거든.


경비 아저씨가 가고 나서 우리는 에어컨을 다시 가동했지. 그렇게 며칠이 흘렀어. 그런데 경비 아저씨는 우리가 에어컨을 켜 놓은 다음에 30분 후에 다시 순찰을 돌며 에어컨을 꺼버리는 거야. 그 시간이 대략 6시 30분 정도였어. 그때 한 세입자가 경비 아저씨에게 왜 에어컨을 끄는지 물었지. 번영회 상가 회장하고도 다 이야기가 끝났는데 어째서 아저씨가 독단적으로 에어컨을 끄는 거냐며 물었지. 여기 세입자들은 에어컨을 끄고 나면 몹시 더운데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물었지. 그런데 말이야, 경비 아저씨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가버린 거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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