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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05.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81

4장 1일째 저녁


81.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마동의 몸은 이미 비현실적인 세계에 뛰어들기 위해서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었다. 민소매 러닝셔츠를 입고 허리에 작은 냅색을 찼다. 그 속에 열쇠 꾸러미, 약간의 현금을 넣고 휴대전화는 러닝 밴드에 넣어서 팔뚝에 찼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현관에서 조깅용 운동화를 신고 신발의 끈을 제. 대. 로. 묶었다. 오늘 하루 마동의 의식은 바다 위로 떠올라 플로트가 되어버렸다.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선의 참수 기관의 한 부분이었지만 운동화의 끈을 묶는 순간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압도적인 소리를 내는 질 좋은 스포츠카로 돌아와 있었다. 아파트를 나서니 밤의 기운이 상쾌했다. 습하고 후텁지근해야 했지만 마동은 열기가 가득한 여름밤의 공기가 유쾌했다.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저 멀리 서는 마른번개가 번쩍거렸다. 한 번씩 번쩍일 때마다 굉장히 밝은 빛을 발했다. 아주 밝은 빛의 번개는 불안한 정감을 불러일으켰다. 저 마른번개에 맞으면 무엇이든 간에 산산조각이 날 것 같았다. 번개 밑에서 번개를 맞고 번개 인간이 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번개 인간이 된다면 자기장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을까.


 마동은 번개를 다시 한번 보았다. 하늘을 가르며 어딘가의 지점에서 밑으로 무섭게 떨어졌다. 세라믹처럼 단단한 물질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고 다이아몬드도 산산이 부셔버릴 것만 같은 번개의 빛이었다. 어제, 오늘 제우스가 어떤 일로 노하고 격분하여 강한 번개를 세계 곳곳에 집어던지고 있었다. 인간사회의 법률이나 도덕, 윤리 등이 너무나 터무니없고 엉망진창이어서 제우스가 다시 한번 인간들에게 마지막 경고를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신이라 해도 인간사회의 여름밤의 열기를 잠재우지는 못했고 태양의 발광을 저지시키지는 못했다. 해는 마침내 내일을 위해 충전을 하러 저 먼 산 너머로 꺼져버렸다. 마동은 이미 집으로 왔으므로 회사 근처에 있는 강변의 조깅코스를 달릴 수는 없었다. 오늘은 집 근처의 바닷가의 조깅코스를 달릴 것이다. 마동은 천천히 그리고 역시 진지하게 몸을 풀었다. 샤워할 때와 다르게 생각 외로 몸의 반응이 빠르고 날렵했다. 마동은 자신이 마치 들판의 야생마가 된 기분이 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전율이 느껴졌다. 감각의 평행과 현실적인 육체적 상태가 최적화되어 있는 프로그램 같았다. 지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머리를 엄습했고 몸은 꿩의 깃털처럼 가벼웠다. 준비운동을 하는 지금의 육체는 낮의 몸 상태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을 지니고 있었다. 오늘 하루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팔, 다리의 근육이 강하게 텐션을 원하고 있었다. 마동은 근육이 원활하게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근육의 움직임이었다. 자세를 낮추고 천천히 몸을 뒤틀어 보았다.


 오른쪽으로 크게 한번, 왼쪽으로 강하게 한번. 온몸의 관절은 될 수 있으면 전부 이리저리 돌리고 풀어주는 것이다. 발목을 잘 틀었고 어깨를 여러 번 돌렸다. 밤 시간의 연속성이 지속될수록 의식의 중심은 이미 바다를 벗어나 하늘 위로 떠올라 달에게로 달려갈 기세다. 이런 기분을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 같았다. 이제 마동에게 몸살 기운이라는 것은 그저 먼 이야기였다. 마동은 천천히 스타트를 했다. 왼발에 날숨을 쉬고 슉슉 하는 소리를 뿜어냈다. 초반에 스타트를 해서 천천히 달렸지만 조금 더 빠르게 달려주라고 뇌에서 신호를 보냈다. 여전히 마른번개는 아주 밝은 빛으로 저 먼 세계에서 번쩍거렸다.


 제우스의 화.


 마동은 달렸다. 달리니 기분이 십상 했다. 언제나 그것을 느끼며 달렸지만 오늘은 좀 특별히 시원하고 산뜻함이 들었다. 누군가 뇌를 주무르는 기분이 들었다. 손이 새하얗고 깨끗한 어떤 존재가 몸속에 들어와서 더러운 것들을 떼어 버려 버리고 지난 것은 쓸어버리는 기분이 노골적으로 들었다. 천천히 달리다가 1킬로미터를 넘어서면 속도를 내는 편인데 오늘은 초반부터 속도를 가했다. 바다의 수평면은 멀리서 뿜어대고 번쩍이는 번개를 반사라도 하는 듯 빛을 퉁겨 내고 있었다. 마동의 근육은 근력운동을 많이 하지 않아서 슬림한 편이었다. 그런데 오늘 마동의 근육은 슬림한 근육들이 살아서 뱀처럼 똬리를 트는 것 같았다. 잠에서 깨어난 뱀은 마동의 몸속에서 각각의 꿈틀거림으로 진동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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