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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06.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82

4장 1일째 저녁


82.

 엄청난 기분이었다. 물이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끓어오를 수 없어서 포인트를 지나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근육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마동은 속력을 더 냈다.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조금은 걱정이 되었지만 그것도 잠시, 다리에 힘을 주었다. 육상선수가 되어 버렸다. 바람이 볼을 힘 있게 스치고 지나갔다. 무릎에 많은 무리가 가지 않았다. 숨이 차지도 않았다. 마동은 더 세게 달렸다. 바람은 많이 없었지만 달리면서 공기가 얼굴을 할퀴면서 터뷸런스를 만들었다. 비가 오던 어제의 강변과는 달리, 오늘의 해안 근처 조깅코스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마동이 빠른 속력으로 달려 나가니 조깅을 하던 사람들이 쳐다보았다. 누군가는 박수를 보냈고 어떤 중년의 배가 나온 남자는 “멋있다”라고 외쳤다. 마라토너 복장을 한 어떤 남자는 마동을 따라서 달려오다가 1분 뒤에 뒤쳐지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멀어지는 마동의 등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모든 풍경이 마동의 옆으로 휙휙 지나쳤다. 그 모습이 망막으로 세세하게 들어왔다. 조깅코스에는 걷는 사람이 많았고 달리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마동은 더욱 속력을 내며 달렸다. 장마기간이고 마른번개 때문인지 아주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어제 강변의 조깅코스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아주 무더운, 본격적인 더위가 세상을 덮어버리는 나날들이 지속될 것이다. 그런 날이 지속되면 마동은 지금 달리는 거리보다 더 긴 거리를 달리게 된다. 조깅을 하면서 느낀 점은 몸살 기운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감기로 인한 어떤 증상도 없었고 몸의 반응도 최고조의 상태였다. 삼십 분을 같은 속도를 유지하며 빠르게 달렸는데도 땀이 흐르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마동은 잠시 멈춰 서서 팔과 어깨와 가슴을 보았다. 주먹에 힘을 주고 팔을 들어 올렸다. 바위를 때리면 바위도 부셔버릴 착각이 들었다. 팔과 어깨에 땀이 나지 않았다. 여름에 달리면 흐르는 땀을 주체하지 못했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땀과 비가 섞여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끌어안고 섹스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땀구멍 밖으로 송송 올라와야 할 땀이 미세하게 배어있을 뿐이었다. 그마저의 땀이 조깅을 멈추자 피부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이내 매끈하고 보송한 피부로 돌아왔다. 마치 겨울의 중간에 조깅을 하는 것 같았다. 땀이 식어버리는 겨울처럼 말이다. 마동은 팔뚝을 보면서 경이로움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두려웠다. 이 놀라움은 이전에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불안함이 오소소 쌓이기 시작했다.


 땀이 나지 않는 인간이 있을 수 있을까.


 달리면서 이미 클라이언트에게 받은 꿈의 리모델링 작업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클라이언트는 예상보다 일찍 회사를 찾았다. 오너에게 양해를 구하고 오늘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2시에 회사를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바로 오후에 뇌파 채취 작업에 돌입했다. 고객의 꿈은 시대상을 반영했다. 클라이언트는 74년에 우라늄 광석을 플루토늄으로 변환시키는 연구를 하여 핵연료의 일부를 만들어 내는 실험에 몰두했지만 감시가 삼엄했고 당시 대통령은 미국의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었다. 대통령의 신임을 얻고 연구를 할 당시의 나이가 20대 중반으로 한국에는 몇 없는 천재 물리학자였다. 하지만 결국 대통령은 미국의 압력에 뜻을 굽히고 그 연구를 중단시켰다. 하지만 클라이언트는 연구를 혼자서라도 진행하려 했다. 그것은 대이변을 가져올 수 있었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재가 심했고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이 없어서 연구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꿈을 숨긴 채 살아오다가 이번에 마동이 다니는 회사에 의뢰를 하게 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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