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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06. 2024

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9

240


240.


 “그러면 블라디미르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어떻게 됐죠?”


 의사는 자신이 읽은 칼럼을 다시 재확인하듯 골똘히 생각했다. 머릿속의 수많은 정보의 서랍에서 블라디미르와 그 이외의 사람에 대한 서류를 꺼내서 분리하고 훑어보듯 생각에 몰두하는 눈치였다.


 “그들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자료는 없습니다. 애덤스 엔덜러의 부인이 애덤스가 실종이 되고 몇 년이 지난 후 애덤스가 수집해 놓은 자료를 바탕으로 미국의 군부에서 그 실험과 연구에 가담한 과학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위험을 감수하고 자료를 정리하여 다시 한번 블로그에 올리면서 조용하게 퍼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폭발력은 컸습니다. 누군가 애덤스 부인의 블로그를 본 사람이 자료의 내용을 퍼 나르기 시작했고 조용하지만 거친 파도처럼 퍼져나갔습니다. 정리해 놓은 자료를 보면 왓킨스는 5년을 더 살다가 자연스럽게 죽었다고 되어있었죠.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왓킨스징후를 가진 이들도 길게는 7년을 넘기지 못했다고 되어있었습니다.”


 인간은 아직 500년 후의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지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어쩌면 500년 후에 그렇게 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천년 이후의 능력을 지금의 인간이 지니게 되면 잃어버리는 것이 많다는 말이기도 했다. 반드시 소중한 무엇을 잃어버리게 된다. 수명이 짧아진다는 말로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서야 했다. 진화는 때와 시기가 있다. 왓킨스나 블라디미르도 치누크를 만나고 인간의 능력으로 감지해 낼 수 없는 관념을 접했을 것이다. 그들은 어린 시절에 어떤 트라우마를 겪었다.


 무엇일까. 그들도 나처럼 친구들이 핏빛으로 산산이 부서지는 모습을 본 것일까. 아니다 그건 아닐 것이다.


 “전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된 것입니까?” 마동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봤다.


 “마침 제가 그 아파트에 볼일이 있어서 갔습니다.”


 “오전에요?”


 “정확히는 새벽입니다. 새벽에 주기적으로 갑니다. 마동 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제 환자가 있어요. 노인분인데 당뇨가 심해 합병증이 여러 군데 찾아온 환자입니다. 제가 주기적으로 왕진을 가는 그런 할머니입니다. 늘 새벽에 갑니다. 그러기를 바라고 있어요. 할머니께서.”


 “새벽에 가서 할머니의 상황을 체크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가족은 없어요. 아니 자식들이 해외에 있는데 아파트와 통장을 내주고 생활비를 넉넉하게 보내는 모양입니다. 할머니는 죽어도 외국에는 나가기 싫다고 했어요.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는 당뇨합병증이 심각해서 몇 해 전에 가망이 없어 보였는데 뭐랄까, 살아야겠다는 의지 때문인지 좀 더 살 수밖에 없는 자기 연민이 강했는지 끈을 놓을 수 없었던지 아직 괜찮으십니다. 매주 제가 보살펴드리기는 하지만 어디 가족만 하겠습니까. 당뇨라는 건 참으로 무서운 병이지만 영원히 같이 갈 친구라고 생각을 한다면 그렇게 또 무섭지만은 않습니다. 잘 어르고 달래면 얌전하게 평생 고요하게 같이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러려면 노력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죠.”


 의사는 시간을 보며 주기적으로 마동의 눈꺼풀을 까뒤집어서 쳐다보았다.


 “옳지, 이제 좀 나아졌군요. 그런데 냄새에 관한 부분은 좀 어떻습니까. 아마도 이전에 맡았던 냄새보다 강하게 후각이 반응할 건데 말이죠.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후각이 그렇게 반응할 때 피하려고 해 봐야 소용이 없어요. 그냥 받아들이고 강한 냄새에 적응을 하려고 해야 합니다. 주사의 억제제가 당신과 맞는지 더 두고 봐야겠지만 동공의 반응을 보니 괜찮은 거 같군요. 앞으로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의사는 분주하게 이야기하며 차트 같은 걸 들여다보다가 다시 마동의 눈을 까뒤집어 보았다. 마동은 눈이 아파서 미간에 주름이 세줄 생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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